거지 부부 철학자-히파르키아와 크라테스

철학여행까페[18]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1.21 10:5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이동희
테베로 가는 길의 그리스의 전형적 해안가

키니코스학파에는 신기하게도 히파르키아와 크라테스라는 거지 부부 철학자가 있었다. ‘개 같은' 철학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여자를 소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부인했다. 그의 제자 크라테스도 늙을 때 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는 처녀 히파르키아의 열렬한 구애(?) 앞에 삶의 방식을 약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파르키아는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 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하는 생활 모습을 보고 이 늙고 볼품없는 철학자에 반해 버렸다. 그녀의 집은 트라키아만에 인접한 마로네이아의 명문가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대왕이 머물 정도로 그녀의 집은 대단히 부유했고, 평판이 높은 집이었다. 당연히 마로네이아의 잘 생기고 돈 많은 청년들이 부유한 명문가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히파르키아에게 장가를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늙은 스승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가 말리면, 그녀는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오히려 부모를 위협했다. 보다 못한 부모가 크라테스를 찾아가 딸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히려 설득당한 철학자

크라테스는 부모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설득하기로 했다. 그녀를 앉혀 놓고 아무리 설득해 봐도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크라테스는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그녀 앞에서 누더기 옷을 훌러덩 벗어 버렸다. 늙어 빠진 벌거숭이 몸을 보여 주면서 크라테스는 이렇게 말을 했다.

“이게, 네가 결혼하고 싶은 신랑이란다.”

그리고 그는 누더기 옷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이게 내가 가진 전 재산이란다. 앞으로 나와 살려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단다.”

이런 크라테스를 보고 히파르키아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크라테스가 보여 준 게 그녀가 바라는 삶의 양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견유학파 철학자답게 늙어 빠지고 볼품없는 철학자를 남편으로 삼아버렸다. 설득하러 간 크라테스가 오히려 설득 당한 셈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늙은 철학자 크라테스와 결혼을 했다.

이동희
알렉산드로스 대왕

히파르키아라는 이름은 원래 ‘말을 제어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이름 뜻만 보아도 보통 기개가 있는 여자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말’ 대신 ‘개’를 제어하는 여자가 된 것이다.

히파르키아는 결혼한 후 남편과 같이 트리봉이라는 간소한 옷 한 벌을 입고 도시를 돌아 다녔고, 공공연히 거리에서 남편과 교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고 하는데, 아들 이름이 파시클레스였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집 안에만 갇혀 아이들 교육과 부엌일만 하던 그리스 여인들에게는 기상천외한 일이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모든 관습을 폐기하는 그녀의 행동은 동시대인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비판과 적대감에 대해 그녀는 냉소적인 잠언 형태로 응대하곤 했다.

히파르키아가 남편과 함께 리시마코스라는 사람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화다. 그 자리에는 테오도로스라는 사람도 와 있었다. 그는 ‘무신론자’에다 키니코스 학파와 달리 ‘쾌락주의자’였다. 서로 여러 가지 논쟁이 오고 갔다. 테오도로스는 히파르키아를 보고, “집안에서 베틀하고 담을 쌓고 지내는 여자”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히파르키아는 이렇게 응수했다.

“맞아요. 테오도로스. 하지만 내가 베틀 앞에 앉아 낭비했을 시간을 나 자신의 중요한 정신활동에 써 온 것이 틀렸나요?”

“나 자신의 정신 활동”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히파르키아의 남편 크라테스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히파르키아의 집에 필리포스 2세 대왕이 묵은 것처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의 집에 묵은 일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부유하게 살던 크라테스에게 디오게네스는 청천벽력이었다. 디오게네스와 만난 다음 그는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에게 설득당한 크라테스는 자기 논밭을 양치는 목장으로 개방하고, 가진 돈을 모두 바닷물 속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그는 “크라테스는, 나 크라테스를 해방하노라!” 소리치면서 테베 시민들에게 가진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크라테스에게는 문을 열어 제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튤레파노이게테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가 불쑥 아무 집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충고를 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래도 테베 시민들은 이 거지 철학자를 위해 집집마다‘선신(善神) 크라테스의 입구’라고 쓰고 그를 맞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충고를 기꺼이 들어 주었다.

이동희
테베출신의 크라테스, 도메니코 페티 작품, 개인소장, 런던 크리스티
이 별난 키니코스학파의 부부는 자녀 교육에도 남달랐다. 아들 파시클레스 성년이 되자 아들을 창녀의 집으로 데리고 가 직접 결혼에 대해 가르쳤다. 간통을 하는 자의 결혼은 그 대가로 추방이나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비극적이고, 창녀의 집을 드나드는 자의 결혼은 그 대가로 낭비와 숙취로 인해 광기에 이르기 때문에 희극적이라고.

크라테스는 욕망의 절제를 아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다. 키니코스 학파는 금욕을 강조했지만,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금욕이 그들에게 속박이 된다면 그들은 그것마저도 내 던질 수 있는 자유인이었다. 피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그들은 보다 작은 속박을 초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

‘시장 바닥에서 자위를 했던’ 디오게네스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접을 했던 크라테스와 히파르키아는 그러한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그들은 일단 자신의 욕구를 벗어버린 다음에는 결혼 제도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제도 등 모든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크라테스에게 그의 조국 테바이를 다시 재건해 주길 원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크라테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소. 어차피 건설해 봤자 또 다른 알렉산드로스가 와서 파괴해 버릴 테니까.”
그들은 디오게네스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집도, 도시도, 조국도 없는 코스모폴리탄, 즉 세계 시민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유했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