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

철학여행까페[19]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1.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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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에피쿠로스가 처음으로 학교를 열었던 레스보스섬

진정한 쾌락은 무엇인가? 음주가무와 섹스? 쾌락하면, 이렇게 질펀하고 방탕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에게도 항상 그러한 오해가 따라 다녔다.

당시에 에피쿠로스를 적대시했던 학파, 특히 ‘금욕주의’를 표방한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를 가장 심하게 모략했다. 그들의 비방은 대개 이런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사치스런 생활 때문에 너무 많이 먹어 하루에 두 번씩 토했다.”

“에피쿠로스는 많은 창녀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특히 레온티온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레온티온은 메트로도로스와도 사랑에 빠졌다.”

“여러 창녀들(맘마리온, 헤데이아, 에로티온, 니키디온)이 에피쿠로스와 메트로도로스와 함께 살았다.”

쾌락의 상징?

금욕주의를 표방하며 쾌락을 금기시했던 스토아학파와 달리 에피쿠로스는 어떠한 쾌락도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에피쿠로스의 두상은 ‘쾌락’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스를 여행할 때인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인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무튼 박물관에서 호사스럽고 화려한 식탁 하나를 본 적 있었다. 그 탁자 다리 중간에 에피쿠로스의 두상이 붙어 있었는데,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쾌락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스토아학파가 생각하는 쾌락과는 먼 삶을 살았다. 그는 많은 경우에 쾌락들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쾌락 보다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숙취로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술의 양을 조절할 줄 알았고, 대부분의 경우는 아예 술 대신 물을 마셨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방탕한 삶이나 호사스런 삶을 살지 않았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고 말한 사람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언젠가 제자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내가 빵과 물로 만족하며, 호사스런 삶의 쾌락을 멀리할 때, 나의 몸은 상쾌하기 그지없다네. 호사스런 삶을 멀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런 생활 때문에 오는 불편 때문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

이동희
에피쿠로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사는 그가 제자들과 파티 한 번 없이 경건하고 재미없게 삶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는 가끔 제자들과 성찬을 벌이며 즐길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제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가끔 성찬을 벌여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항아리에 저장해 둔 치즈나 보내 주게나.”

에피쿠로스(B.C. 341~270) 는 기원전 341년 아테네가 아니라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사모스에서 태어났지만 사모스인이 아니라 아테네인으로 분류된다. 아버지 네오클레스와 어머니 카이레스트라테가 모두 아테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나기 얼마 전 약 2천명의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네 당국의 허가를 받아 사모스에 식민도시를 건설했을 때, 그 속에 에피쿠로스의 부모도 껴 있었다.

그는 소아시아 연안에 거주하던 플라톤주의자들과 데모크리토스의 추종자들에게 철학을 배웠다. 서른 살이 넘자 그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에서 처음으로 에피쿠로스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먼저 자리 잡은 플라톤 계통의 학교들의 견제로 그는 람사코스로 옮겨 가 다시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모았다. 이곳에서 5년 정도 생활을 한 다음, 그는 306년에 드디어 철학의 본거지인 아테네로 입성을 하게 된다. 그때 이미 그의 사상은 그리스 전 지역은 물론 소아시아, 이집트, 이탈리아 등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로 퍼져 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80미나를 주고 집 한 채와 거기에 딸린 정원을 사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런 것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정원 학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원’ 공동체의 구성원에는 외국인과 여자는 물론 노예도 있었다. 심지어 정원공동체를 드나들던 여자들 중에는 창녀들도 있었다. 이런 파격적인 구성원들 때문에 에피쿠로스학파는 온갖 비방에 시달리고 박해를 당한다.

평등한 인간사회를 꿈꾸다

스토아학파 사람 디오티모스는 50편의 음탕한 편지를 쓰고 그것을 에피쿠로스가 쓴 것이라고 뒤집어 씌우기도 하였다. 키케로조차 이 학파를 “온갖 향략 속에서 초췌해져 가는 쾌락의 정원”이라고 정의하기까지 했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이 퍼뜨린 비방 때문에 에피쿠로스 학파는 종교적인 박해에 버금가는 박해를 받았다. 메세네에서는 도시의 권력자가 군인들을 동원해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그들이 살던 집을 불태우기도 했고, 크레타에서는 신들의 적이라는 죄목을 붙여 고문을 한 다음 추방하기도 하였다.

에피쿠로스학파가 이렇게 박해를 당한 까닭은 에피쿠로스가 노예와 같은 하층계급의 사람들이나 여자들과 이방인들을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제도를 필요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에피쿠로스는 노예들을 ‘철학자’로 대접했던 사람이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크게 보면 자연학, 인식론, 윤리학으로 나누어진다. 그에 의하면, 자연현상의 원인을 알아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번개 치는 원인을 모를 때 우리는 두려움에 떨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면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는 신이 자연현상의 원인이라는 대중들의 견해를 거부하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의 입장에서 ‘자연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공허한 이론이나 회의주의를 거부하고 감각과 감각경험과 부합하는 이론만을 진리의 시금석으로 삼았다.

윤리학은 에피쿠로스의 설의 중심이다. 그에 의하면 윤리학의 원리는 쾌락이다. 모든 생물은 당연히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한다. 따라서 삶의 목적은 쾌락이다. 쾌락은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없앨 때 얻을 수 있다. 그는 육체적 고통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불안과 혼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아타락시아(부동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동희
에피쿠로스 정원을 가리키는 지도
그러면 어떻게 아타락시아를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욕구를 다스리는 것으로 출발한다. 에피쿠로스는 욕구를 세 부류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이면서 필요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연적이긴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세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이다. 첫 번째 욕구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이다. 두 번째 욕구는 좀 더 좋은 요리를 먹고 싶거나 술을 먹고 싶은 그러한 욕망이다. 세 번째는 사치품이나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첫 번째 욕구는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욕구를 채우려 할 때는 만족보다 더 큰 고통이 발생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부유하게 하려면 더 많은 재물을 주기 보다는 그의 욕심을 줄여주어라.”

내가 항상 궁금해 한 것은 쾌락주의자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고통이 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는가? 차라리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살아 있을 때 삶을 즐겨라. 메멘토 모리.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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