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기준, 현장상황·매뉴얼 등 ‘애매모호’

올해 들어 야외 기자회견 형식의 의견개진에 대한 경찰의 간섭과 통제가 늘었다는 것은 시민사회가 크게 체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는 대선 이후 대응수위가 높아진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기자회견과 집회에 대한 일괄적인 대처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허용했는데 지난해 기자회견을 빙자해 허용치를 초과한 집회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자회견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행정지도를 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 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거의 판례 기준에 의해서 판단한다. 예를 들어 연설만해야 하는데 구호를 제창하는 경우엔 집회로 보고 있다”며 “청에서 나오는 책자에 보면 기자회견 범위가 매뉴얼화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호, 피켓 등 형식보다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순수한 의사표현이고 언론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피켓을 들 수도 있지 않겠냐”며 “그러나 집회가 위력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전제에서 참가자들의 감정적으로 경찰서나 검찰청을 항의방문 것까지 기자회견으로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제각각 규제에도 불구하고 정책 및 기획 업무를 총괄하는 경찰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수사과 시위담당자는 “현장상황이 판단기준이 된다. 누가 하느냐, 어떤 목적으로 하냐가 중요하다”며 “경찰청 차원에서 따로 제시하는 판례집은 없다. 노조 관계자들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는데 경찰청 앞에서 데모를 한다면 기자회견 이름을 붙였더라도 현장에서 검거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교체됐다고 기자회견에 대한 대응이 강화됐다는 것은 억측”이라면서 “기자회견이 집회로 변질된 사례가 나타난 2005년 이후 관련 논의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에 대응하는 내부규정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규정집에 내용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일부 경찰서에서 말하는 메뉴얼화 된 기준도 실제로는 법적인 근거는 미미하거나 없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개최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기자회견을 집회로 규정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자회견을 집회로 확대해석해 재판까지 간 경우는 대부분 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국한됐다.

경찰은 특정인 석방 요구 등을 하는 기자회견의 경우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법원청사로부터 100m 이내에선 집회와 시위를 해선 안 된다는 집시법 11조를 인용해왔다. 지난해 11월 춘천지법은 법원 경내서 고속 동료 석방 등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오 모 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바 있고, 6월에도 한미FTA저지 대전충남운동본부가 대전법원 청사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대해 검경이 참석자 18명 모두를 처벌해 ‘과잉대응'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은 특정한 사례를 일반으로 확대하기 어렵고, 법원 앞 기자회견 이외엔 판례가 거의 없는만큼경찰이 통상적인 야외 기자회견을 방해하거나 통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현행 집시법 2조에는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 여는 집회를 옥외 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같은 조항에 시위는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현행 집시법 하에서는 경찰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 기자회견을 집회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피켓을 들었다고 해도 단순히 언론을 상대로 시민단체 등이 특정현안에 대해 밝히는 기자회견까지 집시법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표현권 침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도 “구호를 외치는 것도 기자회견의 범주에 들어간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 감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기자회견문만 읽으라는 것은 기자회견의 범위를 너무 좁히는 것”이라며 “현행 집시법 상 예외조항인 문화행사나 종교행사 등에서 구호를 외칠 수도 있다. 기자회견만 유독 구호를 외치지 말라고는 하는 것은 경찰이 규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법조인들은 집시법 2조의 집회와 시위의 정의 부분부터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박주민 민변 변호사는 “외국에서 통념화된 것처럼 3인 이상 모여 위력을 보이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을 집회개념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현행 집시법의 틀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헌법상의 표현권 보장이 현실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공감을 얻고 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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