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평화공동체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공동체의 평화'[5] 김승국l승인2008.02.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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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노자·장자)은 임금도 관리도 없는 문명 이전의 무위자연(無爲)을 선망한다. ‘무위’는 ‘무인위’(無人爲) 또는 ‘무치’(無治)를 뜻하며, ‘자연’은 문명 이전을 의미한다. 노장이 살았던 당시의 민중들은 수백 년간 지속된 전쟁과 착취로 유랑민이 되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처자식을 노예로 팔아먹는 난세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천하에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고 잊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자유와 해방이었다. 이것은 ‘격양가’(擊壤歌)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들의 소망이란 지극히 소박하여 임금이 누구인지, 관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아무 간섭 없이 농사를 짓고 우물을 파서 등 따뜻하게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다.(기세춘, 2006)

이러한 ‘무위의 평화상태’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실현하면 ‘무위의 평화공동체’가 이룩되며, 이게 잘사는 것의 요체이다.

노장의 무위의 평화공동체는, 유가, 법가의 ‘유위’(有爲, 부국강병)에 의한 평화공동체와 큰 차이가 있다. 무위의 평화공동체는 무치를 기본 덕목으로 삼는다. 노장이 말하는 무치의 평화 공동체는 공동 소유제를 필수조건으로 삼는다. 국유제나 사유제는 공동체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공동체론에서 소유의 문제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소유 문제와 관련된 노장의 아래와 같은 논술을 통하여, 무위의 평화공동체가 갖춰야할 평화경제 체제를 모색한다.

무위자연의 성인은 재물을 사유하지 않는다. 남을 위할수록 자기는 더욱 부유하고, 남에게 덜어줄수록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노자, 81장)

순 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丞)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 임금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승이 말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놓은 형체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순리이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허물이다.”(장자 외편 지북유)

남월(南越)에 한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건덕(健德)이라고 했다. 건덕의 백성은 어리석고 순박하며,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었으며, 경작할 줄은 알지만 사유할 줄은 모르며, 남에게 주는 것은 알지만 보답을 구하지 않고, 의에 따르는 것도, 예에 순종하는 것도 모른다. 제멋대로 함부로 해도 결국은 대도(大道)로 나아갔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으면 장사 지냈다. 원컨대 군주께서도 나라를 버리고 세속을 털어버리고 무위자연의 대도와 더불어 서로 손잡고 나아가기 바란다.(장자 외편 산목)

대동세계에서는 사사로운 자기가 없다. 자기가 없는데 어찌 소유를 얻으려 하겠는가? 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옛 군자요 무소유를 가르치는 자는 천지의 벗이다.(장자 외편 재유)

위의 논술을 읽고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노장의 무소유·무위 평화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는데, 이를 집단적(공동체적)으로 실현하는 경제체제가 가능한가? 무위의 평화공동체를 지탱하는 평화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대답 즉 ‘무위의 평화공동체를 위한 평화경제의 길’이 노자 80장에 제시되어 있는데, 그 전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시민사회신문 DB
소국과민의 규모 ‘소국’(小國)이라고 할 때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단서는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小國寡民(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야 한다) 使有什伯之器而不用(백성들이 갖가지 기계를 가졌다 한들 사용하지 않으며) 使民重死 而不遠徙(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서 멀리 쫓겨나지 않는다) 雖有舟輿無所乘之(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탈 일이 없고) 雖有甲兵無所陳之(비록 무기와 병사가 있다 한들 배치할 곳이 없다) 使人復結繩而用之(사람들이 옛날처럼 새끼줄로 의사표시를 하게 하고)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거치를 안락하게 하며) 樂其俗(법이 아니라 옛 풍속대로 즐거워한다) 隣國相望(이웃 나라를 서로 바라보며) 鷄犬之聲相聞(개와 닭의 울음소리를 서로 듣지만) 民至老死 不相往來(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홍성화는 노자 80장을 네 가지로 분류하며 설명한다. ‘使民重死而不遠徙...民至老死 不相往來’는 농업공동체 사회를 지향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遠徙’(이주를 멀리한다)가 의미하는 것, ‘不相往來’가 의미하는 것이다. ‘使民重死而不遠徙’라는 구절은 전국시대에 횡행했던 이주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된다. 전국시대의 사민(徙民) 정책은 ‘작’(爵)과 ‘복’(服)을 통한 새로운 읍제적(邑制的) 질서의 확립, 병농(兵農) 분리 등을 목적한 ‘부국강병책’이었다. 결국 ‘遠徙’(이주를 멀리 한다)의 의미는 백성들이 ‘사’(徙)하지 않을 정도로 생산의 안정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당시에 횡행하던 사민 정책, 즉 전국시대 각국 부국강병책에 의해 백성의 거주지를 이리 저리로 옮기거나,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재편되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다음으로 ‘民至老死 不相往來’의 의미이다. 이 구절은 거주지를 빈번하게 옮기는 상업 종사를 지양하고, 바로 백성이 정주함으로써, 농업을 영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民)은 공(工)·상(商)을 포함한 일반 피지배자 전체를 막연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적으로 농민 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 80장의 ‘雖有舟輿,無所乘之’는 거주지를 빈번하게 변동시키는 상업의 종사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民至老死 不相往來’라는 구절은 상업의 종사로 인한 주곡(主穀)생산에 대한 방해와 향촌 공동체의 유대의 파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이고 주곡생산에 집중함으로써 농업생산력의 안정을 도모하였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민’(寡民)의 의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재생산 단위가 축소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구성원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당대에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사민 정책과 같은 인위적인 거주지 재편을 반대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빈번한 사민 정책의 실시와 백성들의 상업 종사로 인한 거주지 변동을 지양하고, 정주를 통해 소규모 농업 공동체로의 복귀를 지향한 것이다.

'使有什伯之器而不用...雖有舟輿無所乘之,雖有甲兵無所陳之,使人復結繩而用之'는 이기(利器)와 문자에 대한 성찰을 나타낸다

전국시대 이후의 경우 이기(利器)의 사회적 기능은 생산력의 증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단위에 보급을 통하여 향촌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보다 풍요한 삶의 보장을 통해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여기에 다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문자 역시 그 사회적 기능은 의사표현과 그 소통의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물의 질서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러한 문자의 보급은 지식의 보급으로 연결되었고, 지식에 의해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의 구분을 성립시켰다. 문자와 마찬가지로 지식 역시 사회경제적 재생산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필수적인 기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노자』에서는 이미 문자와 ‘什伯之器’ 그 자체의 폐기는 이미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인식하였으며, 그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축소-의사소통의 경우 ‘結繩’-함으로써, ‘자연’으로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은 이상(理想)사회론을 반영한다.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은, ‘(王이 백성들에게) 그 고을(其)의 음식을 달게 여기게 하고(甘其食), 자기 고을(其)의 복장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며(美其服), 그 풍속에 편안하게 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즐기도록 해 줘야하는 이상사회’를 지향한다.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은 모두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其’를 넣고 있다. 이 ‘其’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다시 말해서 개별적인 자연 향촌의 고유한 ‘그 지역의 음식’ ‘그 지역의 복식’,‘그 지역의 주거형태’, ‘그 지역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소국과민’(小國寡民)을 통해 인간의 고유한 감각 등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변형된 제국(帝國)의 통일정책에 따른 파괴에서 벗어나서 자연촌락의 각각의 개별적 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 ‘其’됨의 회복이야말로 ‘자연’의 회복인 것이다. 통치자의 사민 정책과 사회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스스로 그러한’(自然) 인간의 제 감각과 향촌의 고유한 질서가 사라졌는데, ‘소국과민’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시대의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사민분업’(四民分業)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조정하고 매개하는 것을 통해 그 정당성을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소국과민을 통한 백성들의 농업으로의 집중은 이 모든 차이를 무화(無化)시킴으로써, 기존 국가 지배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향촌 지배의 정당성이 사라질 때, 비로소 원래의 향촌이 지녔던 ‘자연’을 회복할 수 있다.

소국과민의 규모

‘소국’(小國)이라고 할 때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단서는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거리는 현실적으로 ‘인읍(隣邑)이 상망(相望)’할 정도의 거리, 즉 읍 정도의 규모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시대에 들어와 읍과 ‘국’의 규모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지라도 노자에서 상정하였던 ‘국’의 규모는 실제로는 읍 정도의 규모였던 것이다. 읍의 구조는 예전의 촌락보다 우월한 것이어서 백성들이 즐겨 이주할 수 있는, 그 당시로서는 모범적인 촌락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읍 내에 리(里) 단위로 부락이 편성되어 있고, ‘천맥’(阡陌)으로 경지가 바르게 구획되어 있으며 가옥과 생활용구가 잘 구비된 형태가 전국시대의 모범적인 읍의 구조였던 것이다. 이처럼 재생산 단위가 읍 정도로 축소된다면 국가라는 상급 공동체에 대한 공납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며 단지 읍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도 즉, 읍 단위의 공동작업에 대한 정도로 필요노동 부분의 잠식은 그치게 될 것이다. 그 나머지 부분은 백성들의 재생산 부분으로 투하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 단위가 축소되면서 상급 단위에 대한 공납이 줄어드는 효과뿐만 아니라 국내의 노동력 재분배와 지휘를 둘러싼 여러 행정처리 역시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행정 처리의 양 때문에 분리될 수밖에 없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가 분리될 여지를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서주(西周) 이래 지배층으로 군림해 온 관료층의 존립 근거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의미는 국가라는 형태를 완전히 배제한 아나키스트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 공동체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만 재생산 규모를 가능한 한 최소한 규모로 축소하는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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