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지금 무슨 죄 값을 받고 있는가

고춘식 연재 칼럼[1]_어둠을 파다, 꿈을 캐다 고춘식l승인2008.02.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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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결정된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도 미식거리는 뱃속과 아린 가슴은 조금도 다스려지지 않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바쁘게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발표하는 모습들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는 의욕들이 보이고, 주눅 든 대한민국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보려는 의지를 보는 듯 하여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선거 직전에 공개된 BBK 동영상이 자꾸 재방송되면서 나를 자꾸 깊은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 보아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도대체 우리 국민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명명백백한 아니, ‘명명박박’(明明博博)한 거짓말임을 확인하고도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했던가?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권력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무슨 죄가 그리 크기에 국민들은 오히려 이명박 특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조마조마 간을 졸이면서 불안해해야 한단 말인가? 번연히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찌하여 당선인은 대통령직 인수 절차를 아무 일 없다는 듯 밟고 있으며, 특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통령직에 취임할 수밖에 없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거침없이 만들어가고 있는가?

지난 12월, 선거 바로 며칠 전에 공개된 BBK 동영상은 그 사실이 너무 분명하고 충격적이어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의 당사자는 침묵을 지키면서 시간을 끌었고, 대선 결과는 그 거짓말쟁이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나 스스로에게 가혹하지만 BBK 동영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 이명박 당선인 자신이 그리도 단호하게 부인했던 그 사실, ‘나는 BBK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잡아떼었는데 너무도 놀랍게도 그 BBK를 스스로 설립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았던가?

몇 가지 위장 사건은 좋다. 왜냐하면 그런대로 시인을 하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인정을 했다는 것은 국민의 자존심을 그런대로 살려준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에 대해서는 당선인 자신의 해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주어 ‘내가’가 빠져 있어 그 설립 주체가 이명박 후보가 아니라는 해괴한 해명을 했다. 그 당시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기가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창자가 뒤집히고 억장이 무너졌다.

국민을 이처럼 처참하게 바보로 만들고 능멸해도 되는 것이었는가. 나는 그 말을 하는 대변인의 입술을 뚫어지게 보았다. 입술이 떨리지 않았다. 그 대변인의 눈빛도 뚫어지게 보았다. 떨림이 없었다. 아, 나는 참 우울하였다. 슬펐다. 절망했다. 이명박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여자 대변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절망을 했다. 정말이지 깊은 절망을 했다. 인간에 대해서 말이다. 같은 인간인 나 자신에 대해서 절망을 했다.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정권을 거머쥐는 것이 정말 절실하고, 정권을 바꾸는 것이 정말 소중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이명박 당선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국정을 혁신한다면서 노무현 정권이 공들였던 정책들을 시시콜콜히 뜯어고치자니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국민들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BBK 동영상의 기억을 지우려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이 가장 시급하게 먼저 할 일은 국민들을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잘살게 해 주겠다는 말 한 마디에 자존심도 접고 당선인에게 매달리는 국민들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바라건대 지금이라도 당장 대국민 사죄를 하라는 것이다. 특검의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하는 사과나 해명은 국민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일 것이다. 또 하나. 혹시 당선인이 믿는 하나님에게만 고백하고 먼저 용서를 받지는 말라는 것이다. ‘밀양’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이 하나님에게 먼저 용서를 받고 평온을 되찾은 모습을 보고, 그 아이의 엄마가 처절하게 절규하던 모습이 생각나서다. 그 절규를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이다.


고춘식 한성여중 교사·본지 편집위원

고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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