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저 큰 교과서 서둘러 덮지 말라

고춘식 연재 칼럼[2]_어둠을 파다, 꿈을 캐다 고춘식l승인2008.02.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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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그러고 보니 그 이름 참 낯설다. 한성의 남쪽 큰 문, 남대문으로만 불리던 그 문이 ‘예(禮)를 숭상하라’는 큰 뜻이 있었음을 사라져 가면서 소리치고 있구나. 아아, 없음으로 더 크게 존재하는 역설을 보라.

숭례문, 그 현장을 12일에 갔다. 이미 쳐진 가림막 위로 간신히 보이는 시커먼 잔해,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화마에 못 이기어 처참하게 무너지는 영상을 보면서 몇 번 질겁을 했던 탓인지 그 초라한 시신을 확인하는 게 자꾸 송구스럽기만 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 그 망연한 표정이 오히려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을 듯한 얼굴에도 하나같이 깊은 통한이 새겨져 있었다. 젊은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는데, 나이가 많은 몇몇 분들은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여가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울분, 그렇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중앙청 청사로 사용해 왔던 그 엄청난 석조 건물을 폭파시켰던 우리다. 멀쩡한 광화문도 뜯어내고 다시 복원하는 나라이다. 우리의 진정한 자존심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국보 1호를 송두리째 불살라 버렸으니 오죽하겠는가. 아, 나라와 민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만 정확하게 골라 칼질을 해댄 저 주도면밀한 증오여, 폭력이여!

‘국보 1호’가 쓰러지고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국보 1호’에 대해 무례(無禮)를 저질렀는가를 아는 것도 고통스럽다. 노숙인들이 누각 안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고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볼일까지 봤다는 기사는 차마 읽기가 민망했다. 숭례문은 그러고 보니 이건 방화(放火)가 아니라, 숭례문 스스로가 분신(焚身)한 것이다. 600살 된 노인도 참을성을 잃을 정도로 노여웠고,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2월 12일, 이명박 당선인은 취임하게 되면 국민 성금으로 복원을 하겠다고 했고, 이경숙 위원장은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쳤다. 하루도 못 가 다시 슬그머니 거두어 들였지만,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서울 시장으로 있을 때 숭례문 개방을 밀어붙였던 장본인으로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개방 자체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개방을 했다면 철저한 관리가 전제가 되어야 함에도 방치에 가까웠다니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성금 문제는 며칠 지나면 누군가의 입에선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굳이 당선인이 누구에게 빼앗길세라 재빠르게 선수를 치는 것 같아 차라리 웃고 싶다. 대통령이 제안을 한다면 그것은 성금이 아니라 분담금이요 징수금이다. 국민의 자존심을 또다시 짓밟는 그 발상에 기가 질린다.

가림막 공사를 저렇게 서두르는 것도 수상했다. 처참한 모습을 시급히 감추어 버림으로써 어떤 기억과 연상들을 지워버리려는 것은 아닐까? 이 현장을 찾아온 국민들의 부끄러워할 자유, 슬퍼할 자유, 분노할 자유, 삿대질할 자유마저 빼앗겠다는 것 아닌가? 이건 아니다. 저 처참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림막을 걷어내야 한다.

복원 문제를 서두르는 것도 역시 수상하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정치꾼들의 저급한 속셈이 보인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 처참한 현장은 아주 훌륭한 교과서가 되었다. 국민 모두가 읽어야 할 커다란 교과서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끄러운 구석이 많은가를 가르치고, 문화와 문화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참으로 소중한 교과서가 되었다. 처참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로 서 있을 때보다 불길 속에서 숭례문은 더욱 찬란한 역사로, 교과서로 부활을 한 것이다. 복원을 서두르지 말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교과서를 충분히 배우고 뗀 다음에 복원을 해도 늦지 않다.

그 교과서는 한 개인의 분노와 증오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남대문이 서울 시민만의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북에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고 하니 북녘 동포들도 남대문의 주인이라는 사실까지 일깨워 준 것이다. 그 교과서가 크나큰 글씨로 우리를 꾸짖는다. 못난 우리들에게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과서를 시급히 덮지 말라. 그 매라도 혹독하게 맞아야 무너지고 뚫린 우리의 가슴도 복원이 될 것이다.


고춘식 한성여중 교사·본지 편집위원

고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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