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食事)의 ‘인문학’

틀린 글자(文)로도 人文學은 된다?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8.08.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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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지난 6월 역사적인 만남은 세계의 주목(注目)을 끌었다. 그 한가운데 행사인 업무회의 겸한 점심식사 장면을 중계하던 큰 방송사의 한 기자는 “두 정상이 곧 업무 만찬을 가지게 됩니다”라고 했다.

‘만찬’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더 언급됐다. 더 실수하지 않을까 싶어 안타깝고 초조하게 지켜봤다. 트럼프의 이름을 오바마라고 부르면 안 되듯, 식사도 제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만찬(晩餐)은 저녁밥이고, 점심밥은 오찬(午餐)이다. 아침밥은 조찬(朝餐).

조찬 오찬 만찬은 아침 조(朝), 낮 오(午), 저녁 만(晩)에 먹을 찬(餐)을 각각 합친 말이다. 오시(午時)는 11시~13시의 정오(正午) 전후 2시간이다. 묘한 정서(情緖) 때문에 ‘어떤 점심밥’은 한자어인 오찬으로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조찬, 만찬도 비슷하다.

밥자리나 식사모임을 좀 있어 보이게, 폼 나게 부르고자 하는 의도가 만든 이름이겠다. 그 기자가 ‘점심밥’이라고 했더라면 뭐라고들 했을까? ‘무식하게 오찬을 만찬이라고 했다네’ 하는 비아냥 대신, ‘정상들의 정찬(正餐)을 무식하게 밥이라 하면 되겠느냐?’는 지적 받지 않았을지.

그 이름(낱말)을 이루는 각각의 말들이 다른 뜻(속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속뜻이 말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휘의 분별(分別)에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다.

오(午)와 만(晩)을 구별하지 않는(못 하는) 이런 식의 한자어 문맹(文盲)은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가갸거겨...’만 읽으면 한국어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 기자는 당시에 “두 정상이 곧 업무 오찬을 가지게 됩니다”라고 말했어야 옳다.

영어에도 밥의 이름은 여럿이다. 점심만 해도 런치(lunch)와 런천(luncheon)이 있다. 그 말들의 계급성(?) 등 차이는 우리말의 점심밥과 오찬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런천이 런치보다 약간 공식적인(포멀한) 느낌을 주는 정도다.

포멀 디너(formal dinner)쯤 되면 확실히 폼(form)이 난다. 때때로 파티의 요소까지, 격식 갖춘 저녁밥을 지칭하는 공식만찬이다. 서퍼(supper)는 디너보다는 아랫길인, (보통) 저녁식사다. 밀(meal)은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이르는 식사다. 위계(位階)나 ‘정치적’ 함의는 없다.

고풍스런 폼이 나는 repast(리패스트)라는 말이 있으나 셰익스피어나 옛날이야기 쯤에 등장하는 용어처럼 느껴진다. 또 좋은 식사, 식습관 등과 관련해 쓰이는 다이어트(diet)라는 식사의 한 이름은, 요즘 국제적으로 ‘살 빼려고 밥 굶는 것’의 뜻으로 변질됐으니 큰 아이러니다.

아침(breakfast 브렉퍼스트)과 점심(lunch)의 합성어인 brunch(브런치)가 이젠 일반적인 단어의 반열(班列)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주5일제에 휴가를 많이 쓸 수 있게 된 시대의 영향으로 보인다. 식당에선 대개 손님들이 몸소 가져다 먹는 간단한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우리 역사에는 수라(水剌)라는 이름도 있다. 임금께 올리던 밥을 (높여) 부르던 말이다. 임금님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수라를 젓수시는 것’이다. 식사의 ‘계급성’이 확실한 어휘다.

‘밥’은 우리 생명과 매우 가깝다. 생존(生存)을 위한 밥부터 지존(至尊 임금님)의 수라까지 식사의 여러 이름이 가지는 다양한 함의(含意)는, 그래서 문화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인 ‘젊은 언론인’이 오찬과 만찬을 구분하지 않는 이 상황, ‘(언어의) 정신줄’이 흔들리고 있다는 상징 또는 징조(徵兆)는 아닐지? 문화를 부정하는 듯한, 이와 흡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우리 시대의 말귀와 글귀가 혼미해진 것이다. ‘수많은 최순실과 그 아류(亞流)들’이 여전히 세상 도처를 날뛰어도 그 무서운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이 상황이 문득 새삼스럽다.

▲ 갑골문은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다. 문명의 새벽, ‘그들’이 세상의 일(事)과 물건(物件) 즉 사물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원본으로 저장하고 있다. 이런 모양이다.

<토막새김>

하루 두 끼면 충분하지 않는가?

하루 몇 끼가 적당한가? (한국의) 현대인들은 아침 점심 저녁의 세 끼니를 기본 틀로 삼는다. ‘배꼽시계’도 그 틀을 따른다.

박지원의 ‘연암일기’ 한 대목에는 그 시기(조선 정조 때)에 일반 사람들이 두 끼를 먹은 것으로 적혀있다. 밥이 없어(식량이 적어) 그랬으리라. 지금도 건강을 위해, 종교 수행(修行)의 일환(一環) 등으로 끼니의 수를 줄이고 사는 이들을 종종 본다.

3500년 전 갑골문 사람들은 몇 끼를 먹었을까? 그들의 식사가 본디에 더 가깝지 않을까? 거북 배딱지(갑골 甲骨)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근면(勤勉)했고, 두 끼를 먹었다. 우리의 점심(點心)은 ‘마음에 점 하나’의 뜻 가벼운 식사인데, 그것도 없었다. ‘대식’과 ‘소식’ 두 끼였다.

아침 일 마치고 맞는 시간(이름)이 대식이다. 오전 10시쯤인 아침식사 시간이다. 새 날이 오고, 신(晨) 단(旦) 명(明) 매(妹) 조(朝) 대채(大采 아침 일)를 지나면 대식(大食)이다. 采는 손톱이나 손 모양 조(爫)와 (과일)나무 그림 목(木)의 합체로, 캐거나 따는 (일하는) 동작이다.

대식 다음 낮 시간인 중일(中日) 측(昃)을 지나면 저녁식사인 소식(小食) 시간이 된다. 오후 4시경, 오전의 대식과 대조적인 (식사)시간으로, 말 그대로 (대식보다) 적게 먹었던 것 같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가까워지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요즘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소식 이후 오후 6시쯤의 노동 시간 소채(小采)가 지나 모(暮) 곽(郭) 혼(昏)이 오고, 황혼 이후에는 석(夕)이란 이름의 밤 시간이 잠을 재촉했다.

정리하면 그 때의 하루는 신(晨) 단(旦) 명(明) 매(妹) 조(朝) 대채(大采) 대식(大食) 중일(中日) 측(昃) 소식(小食) 소채(小采) 모(暮) 곽(郭) 혼(昏) 석(夕)의 시간들로 이어졌다.

세 끼가 우리에게 과잉(過剩) 아닐까? 갑골문 사람들의 두 끼가 옳은 것 아닌가? 고혈압 당뇨 비만 같은 고질적 현대병환을 단박에 해결할 묘방(妙方) 아니겠는가? 저 많은 병원들 먹여 살리려고 하릴없이 우리는 세 끼씩을 먹고 있는 것인가? 풍요의 모순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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