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완성 등 지배사회 이데올로기 작동 가능성
10년내 대규모 반작용... 보수 흐름 퇴조 전망

이명박 당선자의 친기업 행보로 차기정부 하에서 노동진영의 활동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해 실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고 김진균 교수를 기리는 학술서 ‘민주노조운동 20년: 쟁점과 과제’가 한국산업학회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공동기획으로 발간됐다.

이 책을 엮은 조돈문 민주주의를위한교수협의회 상임의장(가톨릭대 교수)를 지난 21일 만나 이명박 정부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들었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 체제에서 진보학계 입장을 전달한 바 있는 조 교수에게 진보정당의 재구성에 대한 입장도 물었다.


-차기 정권에서 노동정책의 후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권은 경제위기를 빙자해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가져갔다. 은행 지분 매각, 민영화 등은 자유시장경제를 추진하는 하나의 정책수단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것을 완성하려고 할 것이다.

기업 경영진 입장에선 단기 업적 등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발언권을 유지하고 있으면 이것이 어렵다. 노동조합 배제, 무력화가 더욱 가시화 될 것이다. 이전 정권들은 시장자유화 방향으로 나가긴 했지만 민주노총 등의 강한 저항이 있었다. 차기정부는 이런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려 할 것이다.

국가기구의 상당부분도 민영화 대상이 될 수 있다. 행정서비스, 학교 등에 대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나타날 것이고,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부가 우선 개혁대상으로 지목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전교조 쪽을 먼저 손을 보지 않을까. 보수층은 전교조 교사들이 교과과정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반기업, 반시장적인 정서를 의식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6차 교과과정 경제교과서를 보면 노동관련 내용들이 많이 빠졌는데도 전경련 등은 여전히 반시장, 반기업적인 부분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기업들이 불법, 탈법을 저지르고 국민적인 합의와 상식을 위배한데 기인하는 것인데도 보수진영은 교과서가 이를 부추긴다고 본다. 이러한 정서에서 전교조의 역할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전교조 소속 공립학교 교사들부터 어떠한 형식으로든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경제위기론을 들어 노동자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면서 노조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다. 그 내용들을 보면 자본의 이익과 논리를 대변했던 것인데도 전경련 쪽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평했다. 전교조에 대한 개입과 교과과정 개편은 우리 사회에 전개될 이데올로기 싸움의 전초전이 될 것이다.

"친기업 대친노동, 국민여론주도권 둘러싼 싸움 전개될 것"

-노사, 노정 간 역학 관계에서 힘이 균형이 깨진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계 대응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반노동적인 사회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려는 시도다. 현재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대안적인 내용을 유포할 매체를 가진 것도 아니다. 이전 정권이 기득권층의 대행자 역할을 했다면 이젠 기득권층이 직접 나서 신자유주의적 시장과 사회를 완성할 것이다. 지배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여과 없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권은 자본의 이익이 곧 사회정의이자 국민여론이 되게 하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여론을 둘러싼 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대안적인 매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난 정권의 첫 번째 구조조정보다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비정규직 문제에 노동운동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차기 정부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보나.

▲노무현 정권 때 민주노총이 주도한 총파업은 거의 비정규직과 관련 있었다. 과거의 총파업 투쟁에 비해 힘없이 치러진 측면도 있지만 민주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투쟁을 전개해온 것이 사실이다. 서비스직의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비정규직은 늘어날 것이다. 개별기업과 산업 부문에서는 비정규직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사유제한 등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는 후보시절 사유제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통합민주당 측도 마찬가지였다. 차기정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제한과 현행 기업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산업 수준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는 권리입법은 불가능하다. 차기 정부의 친자본 코드 하에서는 개별 기업들도 차별 완화 등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할 곳은 산업, 기업 단위 민주노조다. 비정규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저항할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많았지만 가시적인 움직임은 적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를 직접적인 자기문제로 여기기 힘들다. 정규직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후 임금수준의 정체, 자기 고용의 불안 등이 나타날 것을 우려한다. 이기적으로 보기보다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연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의식을 보면 일반조합원보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의원 등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이보다 수준이 더 높다. 긍정적인 신호다. 비정규직 조직화 성과를 냈던 곳은 정규직 노조가 주도를 했거나 적극적으로 연대를 했던 경우다. 반노동적인 이명박 시대엔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랜드 사태 등을 보면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했는데.

▲기업은 미래의 전망을 보고 의사결정을 한다. 지난해 8월에 문제가 부각된 이후 진보개혁적 성격의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았다면 타협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집권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명박 정권 하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수세적인 투쟁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출범, 노동운동 연대 본격화 계기 될 수도

-수세적인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현안이 실종될 수 있지 않나.

▲경제위기 전에는 노동기본권 향상, 임금 인상 등으로 공세적인 운동이었다면 이젠 더욱 수세적인 투쟁을 하게 된 것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진영 입장에서 편하게 된 측면도 있다. 이전엔 정권의 성격을 가지고 혼돈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노동당원조차도 노무현을 찍을지 권영길을 찍을지 고민할 정도였다.

이젠 투명한 친자본, 친시장 정권이다. 성격이 분명하다. 노동자들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젠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 줄 것이다. 시장의 문제가 투명하게 보여진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5~10년 안에 굉장한 반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유럽과 특히 중남미에서 좌파정권의 붐이 일어났듯 보수적 흐름이 퇴조할 수 있다.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활로 모색을 위해 국민에 대한 ‘설득의 논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에게 국민들과 대화하는 자세가 요구되었는데, 조합원들을 교육을 시키고 어떻게 동원을 할까에 집중한 부분이 있었다. 정리해고처럼 극단적인 정책을 수용할 순 없지만 국민여론이 타당하고 공익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해관계를 떠나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노동진영에서는 지난 1997년 노동법 개정, 국유기업 민영화, 대우자동차 매각 등에서 국민여론의 중요성이 확인했다. 평소엔 국민여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측면이 있다. 노조원을 조직화하는 ‘동원의 논리’만큼이나 국민들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설득의 논리’를 중시해야 한다.

-얼마 전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대위 체제에서 당 평가혁신 작업 등이 시도됐었다. 민주노동당의 분화흐름을 어떻게 보나.

▲심상정 비대위에서 비대위원과 당평가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당 혁신에 관심이 있지만 민교협 의장으로서 적극적인 정치운동을 할 수 없다고 하자 평가혁신보고서 만드는 작업을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했다.

어쨌든 지난 3일 당 대회로 당은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고 판정이 됐다.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갈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민주노동당의 위기 원인은.

▲진보정당이라는 틀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자기 나름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다.노동, 통일, 생태, 소수자 문제 등 각각의 가치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기 힘들다. 이러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게임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이를 담보할 구조가 없었다. 또 진보정당은 운동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성원들이 판단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을 자주계열이 제대로 못했다.

자주, 평등계열이 의회진출 등을 통해 대중 정당으로써 경험을 쌓은 후에 결합을 했어야 했다. 지향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그 정책 지향을 패키지화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진보정당이 운동단체와 뭐가 다른지 불분명했다. 양쪽 다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문제로 서로를 비판했다. 결국 자기성찰이 없는 정당이 됐다.

민노당 분열, ‘따로 또 같이’ 전술 가능

-비정규직 문제 등 현안에 대응하는데 민주노동당의 분당 움직임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단기적으로 보면 세력이 축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의원 몇 명이 큰 변수는 아니다. 의회가 교섭과 타협의 장이라면 소수 의원들의 중요성과 의미가 크다.

하지만 총선 이후 한나라당 주도 국회에서는 대화, 교섭보다는 패권적인 운영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원 몇몇에 연연하기보다 민주노총 등 진보세력이 조직력과 대중성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운동방향을 잡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일정 정도 경험을 쌓고 성공한 이후 다시 통합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양극화 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평등파, 자주파 의원들 서로가 상대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심재훈 기자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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