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나를 이길 수 없다”

철학여행까페[21]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2.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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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로마 콜로세움
스토아 학파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시대부터 기원후 2세기 로마시대까지 지속되었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스토아학파를 세운 제논을 지난 번에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중요한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클레안테스는 스토아학파의 2대 지도자이다. 그는 파니아스의 아들로 기원전 313년 경에 아소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학자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게 원래 권투 선수였다. 그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는 제논에게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그는 밤에 일을 해야 했다. 정원사에게 가서 정원에 물을 주는 일을 하거나 밀가루 반죽을 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기원전 262년경 제논이 세상을 뜨자 그는 60세의 나이에 스토아학파의 교장이 되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

그에게는 스스로를 꾸짖는 기이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그가 대로에서 혼자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누구와 얘기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이 멍청한 늙은이를 꾸짖고 있는 중일세. 흰 머리는 가득한 데 머리에는 든 것이 없는 이 늙은이를.”

그는 100살 가까운 나이까지 그렇게 자신을 꾸짖으며 살았다. 그는 스토아 학파 사랍답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말년에 그는 치통을 앓다가 의사의 권유로 단식(斷食)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식을 해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식을 하는 김에 아예 먹는 것을 중단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그가 쓴 ‘제우스 송가’는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송가에서 그는 제우스를 세계 영혼이자 세계이성으로 찬양하고, 스토아 신학을 정초하였다. 그는 유덕한 행위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철학을 변증학(辨證學), 수사학(修辭學),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 신학(神學)의 6부문으로 나누었다.

클레안테스의 뒤를 이어 스토아학파의 3대 지도자는 크리시포스였다. ‘크리시포스가 없었더라면 스토아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있을 정도로 그는 스토아 철학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학자였다.

그는 기원전 281년 솔로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테네에 간 것은 마라톤 선수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곳에서 제논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제논이 죽은 뒤에는 클레안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금세 문제를 파악하고 알아듣는 머리가 뛰어 난 수재였다.

그는 자주 스승 클레안테스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체계화하면서 그는 논리학을 중심으로 자연학, 윤리학 등 705권의 작품을 다작했다. 그러나 그가 다작한 것을 두고 아폴로도로스는 이렇게 빈정거렸다.

“크리시포스의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빼고 나면 구두점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705권의 책에서 썼던 이론은 이후의 세대에게 스토아학파의 모범으로 여겨졌다. 그는 스토아학파의 3대 지도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스토아 철학을 재정립한 사람이다. 그는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물리학, 윤리학, 논리학으로 나누어 체계화하였다. 그는 모든 자연은 하나의 이성적 원리에서 산출된 것으로 보았다. 제논과 더불어 그는 우리의 경험에 기반한 물질주의적 인식이론을 창안해 냈다.

크리시포스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73세의 나이에, 지나치게 많이 웃은 탓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집에 있던 노새가 무화과 한 바구니를 먹어 버린 것을 보고, 그는 노예에게 시켜 노새에게 포도주까지 주라고 했다. 포도주를 거나하게 마신 노새가 비틀거렸다. 그는 그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웃어 댔던지 그만 몸이 빳빳하게 굳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웃다가 죽은 철학자

중기의 스토아 철학을 대표했던 사람은 로도스 출신의 파나이티오스와 그의 제자 포세이도니오스였다. 파나이티오스는 기원전 185년 경 로도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로 건너 가 여러 학파를 전전하다가 스토아학파에 정착했다. 그는 당시 떠오르는 세계 도시 로마로 건너 가 스토아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72세의 나이에 죽었는데, 작품으로는 단편 몇 가지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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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로마의 모습

그의 제자 포세이도니오스는 시리아의 아파메이아에서 태어 난 아시아 사람이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공부했고, 파나이티오스의 제자였다. 그는 스승과 더불어 로마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눈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저 쪽, 대서양으로 지는 해를 보았고, 아프리카의 해안에서 원숭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도 보았다.”

그는 여행을 통해서 얻은 대단히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로도스에 학교를 세웠는데, 이내 유명해져서 로마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올 정도였다. 유학생 중에는 폼페이우스와 키케로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었다.

파나이티오스와 포세이도니오스는 로마에서 생활하면서 스토아의 도덕철학을 소개해 스토아 철학이 로마에서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데 기여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절제되지 못한 아테네인들과 달리 아직 검소하고도 투철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었고, 실용주의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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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시포스
이러한 로마인들의 기질과 그들이 소개했던 스토아 철학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로마인들의 실용주의적인 생활방식에 큰 감명을 받은 그들은 스토아 철학에 실용적인 감각을 지니게 했다.

내면의 성찰 통한 치유

포세이도니오스는 거의 아흔 살이 되어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덕이 없으면 선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통은 악이 아니라 우리의 덕성으로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관절염을 앓고 있던 그는 고통을 느낄 때 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통이여, 그대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가 없네. 그대가 아무리 성가시게 군다 해도, 나는 그대를 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테니까!”

포세이도니오스의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로마 시대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인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내면의 성찰을 통한 삶의 치유 방식으로 전승된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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