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겠다고? 제발 상처나 없길

고춘식 연재 칼럼[4]_어둠을 파다, 꿈을 캐다 고춘식l승인2008.03.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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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가 작심을 한 것이다. 작심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도 수많은 국민의 마음에 난도질을 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의 나라가 된 지 불과 3개월도 안 되었는데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라 안에 차고 넘친다.

특히 새 내각의 장관 후보자들의 명단이 발표되자 적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재산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머니가 상대적으로 너무 비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가를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짧았다. 우리가 ‘국민’이 아니라 실은 ‘궁민’(窮民)이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는데도 문제가 있는 당사자들이 해명이랍시고 한 말들이 더욱 국민의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질러댔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다가 기가 막힌 명답을 듣게 되었다.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 주었다’는 해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저런 답변을 천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과 국민과의 거리는 대체 몇 만 리나 될까.

통일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퇴하자 또한번 상처난 국민을 자극했다. 두 사람은 대통령과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사퇴를 한다고만 했다. 두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과 박탈감과 배반감을 느꼈던가. 그런데 왜 국민에 대한 사죄가 빠졌는가.

또 청와대 대변인은 너무도 당연한 사퇴를 ‘용퇴’(勇退)라는 말로 표현했다. 용퇴라니? ‘용기’ 있게 물러났다는 뜻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국민을 섬긴다는 생각은커녕 부글거리는 국민의 정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새 정권이 출발을 하는데 스타일이 구겼다는 것이고 집권 초 국정이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계산과, 4월에 있을 총선에서 200석 이상을 차지해야 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판질만 있을 뿐, 상처 난 국민을 위무하는 어떤 언사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불쌍하게도 국민은 아직도 목을 빼고 무언가 엄청난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고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 작심을 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국민을 정신적으로 고문할 수는 없다. 5천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만 뽑았다는 말엔 할 말을 잃는다. 한편 생각하면 그런대로 깊은 의도를 읽을 수도 있기는 하다. 이렇게 부도덕하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을 대규모로 등장시킴으로써 이명박 ‘당선인’의 부도덕함을 희석시키는 효과는 자못 클 것이니 말이다.

이번 만신창이 조각 사태를 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왕조가 바뀐 것도 아니고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장관을 모조리 다 교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기존의 장관들 중에는 성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풍부한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장관도 많이 있을 것인데, 그 훌륭한 인력을 다 내치고 굳이 검증도 안 된 새로운 사람들로 판갈이를 하는 게 과연 옳은가.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인적 자원 손실이요, 결과적으로 국력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공무원들이 거의 그대로 있고, 행정조직도 거의 그대로라면 국정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30% 정도는 그대로 유지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겠다면 국민이 무엇에 상처받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 이명박 ‘당선인’은 청와대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 ‘눈이 참 많이 왔다. 참 경치가 좋다’고 했다 한다.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나는 대통령의 말로는 부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정말 섬기는 대통령이라면 눈 덮인 아름다운 청와대만 볼 것이 아니라 온 나라의 구석구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이 내린 눈 때문에 고생하는 국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수 있다면 대통령은 그 눈 풍경을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 없는 것이다. 우산 장수 아들과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하루 한 시도 행복한 시간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요,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의 마음가짐이다.

첫 소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눈이 참 많이 왔다. 그런데 눈 피해를 입은 곳은 어디 없는가?’


고춘식 한성여중 교사·본지 편집위원

고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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