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부드러움을 키우는 힘"

남효선

강은 낱개의 그리움들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고향입니다. 사진은 남한강의 들목인 단양 장회나루

간디학교는 대안학교입니다. 이른바 제도교육이 포장하고 있는 반인간적 교육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교육공동체입니다. 간디학교는 충북 제천과 경남 산청, 충남 금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간디학교는 ‘사랑과 자발성’을 교육철학의 실천 좌표로 지난 1997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제도교육에 적응치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간중심 교육의 장’을 자그맣게, 그러나 당당하게 첫걸음을 디뎠습니다. 이렇게 내디딘 걸음이 올해로 11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간디교육공동체는 이보다 한 해 먼저 ‘간디농장’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간디농장은 먹을거리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몹쓸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요즈음, 사람과 자연을 더불어 살리는 ‘생명농업’을 복원하고 이를 뿌리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사람들이 만든 ‘생명농업 공동체’입니다. 간디교육공동체는 바로 이들 생명농업실천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함께 살리려는 이들이 모여 만든 교육공동체인 셈이지요.

“배운다는 것은꿈을 꾸는것,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간디교육공동체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면 누구나 제일 먼저 만나는 실천덕목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배우고 가르침의 깊고 깊은 참뜻을 이토록 간결한 어휘로 정의하다니. 간디학교를 드나들며 비로소 배움과 가르침의 참뜻을 어렴풋이 깨우쳤습니다.

남효선

“배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간디학교는 생명농업공동체가 가꾸는 교육공동체입니다.

제천간디학교는 미인가 6년 통합제 대안학교입니다. 제천간디학교가 자리한 곳은 월악산이 올려다 보이는 산간마을입니다. 행정 구역상 제천시에 속해 있지만, 생활권은 단양과 충주에 속해 있습니다.

간디학교가 자리한 곳의 행정주소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입니다. 선고리의 옛 이름은 ‘선림(仙林)’입니다. 그대로 풀이하면 ‘신들의 숲’입니다. 지명처럼 산세가 웅울하고 풍광이 맑아 처음 오는 이들로 하여금 신비로움마저 들게 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특히 간디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낮은 산 구릉에 자리한 화전의 모습은 이곳에서 수 천 년 삶의 보금자리를 꾸려 온 선인들이 빚어낸한 폭의 진경산수화입니다. 얼핏 제멋대로 밭둑을 쌓은 듯 크고 작은 비탈 밭이 널려있는 것 같으나, 이는 정작 조선의 심성인 ‘곡선의 미학’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자 오랜 노동이 가져다 준 지혜의 산물입니다. 그렇다고 자연물만 오롯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사람살이의 숱한 곡절을 펼쳐 온 사람들의 드라마가 강처럼 유장하게 펼쳐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작년에 아이를 이곳에 보내면서 이태 째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때문에 두 달에 한 번 쯤은 이곳 간디학교를 찾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간디학교를 오가며 이제는 영 떨쳐 버릴 수 없는 세 가지의 즐거움과 소중함이 가슴 속에 자리했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자발성을 제 스스로 익히는 간디아이들의 해맑은 몸짓과 이들 곁에서 올곧은 대안교육을 뿌리내리려는 어머니, 아버지들과 간디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이며, 또 하나는 간디학교를 품고 있는 선림마을의 품세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간디학교를 오가며 세 시간 남짓 만나는 남한강의 유장하면서 부드러운 흐름을 가슴에 담는 일입니다.

동해 변방 갯마을인 울진서 불영계곡을 따라 봉화를 거쳐 풍기를 지나 단양마을초입인 단성고을에 닿으면 가슴 밑바닥부터 푸른 물이 출렁이며 차오릅니다.

남효선

남효선

아시다시피 남한강은 서울의 젖줄인 한강의 본류입니다. 태백시 창죽동 대덕산 금대봉에 자리한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하여 정선의 골지천과 조양강,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충주·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뜨겁게 만나 한강을 일군 뒤 서해로 모여듭니다.

한반도의 중부를 에돌아 서울을 살찌우고 서해로 흘러들지요.

남한강은 그저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구석구석을 적시며 사람들에게 비옥한 농토를 안기고 모둠살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면적만도 2만 6018㎢에 달합니다. 한반도의 중동부 태백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들기까지 그의 발길이 닿는 길이만 405.5km입니다.

한강은 그 들머리에 크고 비옥한 침식분지를 만들어 춘천 ·영월 ·여주 ·화천 등 사람살기 좋은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또 한강은 서해로 들어가면서 양질의 쌀 생산지로 이름 높은 김포평야를 가꾸었습니다.

남한강의 너른 가슴은 단양의 초입에 자리한 단성마을에서부터 만날 수 있습니다. 단성마을은 남한강이 구비내(曲川)를 이루며 만든 강마을입니다. 단성마을을 지나면 퇴계선생과 관기인 두향의 애절한 연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단양팔경 중 하나인 ‘강선대’가 그 것입니다. 퇴계선생이 평양감사도 마다하고 관직을 받은 단양군수 시절, 관기인 두향(杜香)과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의 향내는 장회나루를 구비 돌아 뭇 세간의 가슴을 적시며 흐릅니다.

남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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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향의 애절한 연심이 강이 되어 흐르는 장회나루 초입에 ‘시인의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와 참교육을 위해 갖은 고초를 겪은 뒤, 마침내 그리운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 사람살이 가르침을 실천하다가 세상을 버린 고 정영상 시인의 고향마을입니다. 시인은 여전히 남한강 시퍼런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강을 자맥질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던진 ‘대운하 건설 계획’이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또 취임하자 대운하 건설 계획은 날개를 단 듯 한반도를 종횡무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수계에 연접한 지자체는 앞다투어 대운하건설에 따른 개발정책을 세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경북도와 대구시는 발빠르게 청사 내에 ‘대운하개발 TF팀’까지 설치하고 나섰습니다.

대운하개발 예정지는 진작부터 투기꾼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일 ‘대운하 개발 특집’기사를 실으면서 ‘대운하 개발로 영남의 새 시대가 열린다’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흡사 언론이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든 형국입니다.

대운하 건설 반대 투쟁 닻 오르다
"거짓말과 곡학아세, 그리고 대재앙"... 서울대. 안동대 교수단 반대 성명

그렇다고 이 땅의 자존이 깡그리 이들에게 함몰된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와 안동대학교 등 대학사회의 지식인들이 대거 ‘대운하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며 이명박 정부의 부박하고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에 저항하고 나섰습니다. 학계뿐만 아닙니다. 종교계, 작가, 시민사회단체, 국민 대중들이 대운하 건설 반대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는 ‘대운하 건설 반대 연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100인 리얼리스트 그룹’은 임진강을 깃점으로 국토지키기 전투에 나섰습니다. 무기는 여전히 자연과 국토에 대한 순명(順命)과 펜과 발품입니다. 반도를 적시는 강줄기를 따라 이들 작가들은 시시각각 자연이 피워 올리는 생명의 고결함을 적어 세상에 던집니다. 이들의 기록은 훗날 ‘국토 사수의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거짓말과 곡학아세, 그리고 대재앙"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개발에 던진 화두입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23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지난 달 11일 임진강 유역의 김포 애기봉에서 ‘대운하 개발 반대 국토 장정’을 시작하면서 대운하 개발이 가져 올 결과를 ‘대재앙’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들 모임의 대표인 김정욱 교수가 15일 가진 ‘대운하 개발의 허구’라는 주제의 공개강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남효선

김정욱 교수는 “서울대에서 이런 정도의 규모로 모임이 꾸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는 공개강의와 토론회를 열고 만화책도 만들 겁니다. 그리고 전국교수모임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라고 말해 대운하 개발 반대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교수들은 용감하지 못해 자리에 앉아서 말만하고 있는데,종교인들의 실천적 행동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운하를 반대합니다. 많은 교수들이 절차와 토론없이 진행되는 운하사업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토가 대통령 소유가 아니지 않습니까.”고 반문하고 “이명박 운하는 자연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고, 물 오염도 피할 수 없고, 생태계의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교수는 “미국 플로리다의 경우, 운하를 만든 후 조류의 90%가 소멸했다”고 지적하고 “플로리다는 운하 개발로 입은 피해를 해소키 위해 '운하 복원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우리는 '운하 추진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운하 반대는 생명 존중의 출발점이자 목적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출발점이자 최종 목적지는 ‘생명 가치 존중’입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건설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 박석순 교수(이화여대)가 이례적으로 대운하 건설을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끕니다.

박석순 교수는 “경부운하에 배를 띄우면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물이 깨끗해진다.” “운하는 갇힌 물이기에 수질이 오염된다고? 바이칼호도 갇혀있는 물인데 깨끗하다.” “경부운하에서 사고 날 확률은 63빌딩에 비행기 부딪칠 확률과 같다.”는 황당한 명언(?)을 남긴 사람입니다.

한나라당 운하정책 환경자문교수단 단장이었던 박석순 교수는 지난 달 26일 〈중앙일보〉에'대운하 정책, 국민 합의 구해야'란 제목의 시론을 통해 “조령에 터널을 뚫는 것보다 속리산 계곡에 인공 수로를 만드는 스카이라인 안을 선택해야 한다. 터널을 뚫으면 산림훼손 및 생태계 단절 방지, 동절기 수로 결빙 방지 등 몇 가지 장점은 있으나, 대형 광폭 터널은 그 자체가 너무나 큰 환경파괴를 야기한다”며 ‘조령 터널안’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더구나 반박 이유로 ‘환경파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평소 이들 자문 교수단이 입버릇처럼 애기해 온 “10년동안 연구했다”는 학자들의 수준이라고 하니 영 씁쓰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터널을 뚫으면 산림훼손 및 생태계 단절이 우려된다며 터널 안을 포기하자면서 국립공원에 인공수로를 만들자”는 논리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전히 대운하 건설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낱개의 그리움들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고향”

남효선

남한강 곁을 지나며 '부드러운 힘'을 새기다 이윽고 간디학교에 닿으면 또 한줄기의 맑은 강을 만납니다. 간디아이들입니다.

간디학교를 오가며 가슴 가득 밀려오는 그리움을 봅니다. 그리움은 온 산천을 에돌아 강으로 흐릅니다. 에돌면서 강은 골짜기를 적시고 편편한 어귀에 이르러서는 사람을 키우고 마을을 가꿉니다.
강물이 키우는 건 사람과 마을뿐만이 아닙니다.

산을 만들고 풀과 나무를 키워 숲을 가꾸고 마침내 이름없는 벌레와 새들을 불러 모아 생명밭을 일굽니다. 밤이면 별을 모으고 달빛을 보듬으며 마침내 사람들을 고운 심성으로 가꿉니다.

숲 해설가 정미경 선생은 “낱개의 그리움들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또 정 선생은 “흐름을 타고 혹은 그것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 그들을 찾아 숲에서 내려온 짐승들의 어슬렁거림, 강위를 나르는 새들과 수변 풀섶의 곤충들은 그래서 모두가 친족”이자 “은하는 밤마다 몸 맞춤을 하는 강의 연인”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참으로 감칠 맛 나는 노래이자 사람들이함께사수해야할 가치입니다.

정 선생은 “벌판의 ‘온생명’을 깔아뭉개 강을 단하나의 기능, 부력의 기능으로 환치시키겠다는 전대미문의 토건개발세력들이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다.”며“생명을 몰살시키려하는 대작전, 전쟁보다도 더 참혹하고 더 잔인한 대재앙을 불러들이는 악귀들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남한강 들목을 지나며 강이 풀어 놓은 사연들을 듣습니다. 은밀하고도 질펀한 사연들을 헤아리는 동안 어느듯 간디학교에 닿았습니다. 그곳, 또 한줄기의 맑고 고운 강이 흐릅니다. 한 무리의 간디아이들이 강을 닮은 웃음으로 달려옵니다.

권순자 시인의 시 한편 올립니다.

경상북도 낙동강 삼랑진의 저녁 낙동강 연가 권순자 운하를 파서 너, 내 꿈 수몰시키려는 거지 밤마다 별 담고 흐르는 내 노래 빼앗으려는 거지 흘러 내 품에 고이 안기려는 계곡의 꿈 앗으려는 거지 황금맛에 눈도 귀도 노래져 이 청정 물도 노란 금으로 보이는 거지 흰 마음 열어 새들 앉히던 나무, 꺾이고 꺾여 푸르게 흔들던 손 사라지고 발목 꺾인 자리 나는 자꾸 가라앉고 바닥에 처박히는 산천어들 내 젖줄 물고 사는 물고기들 유영하다 아가미에 구름이 들지도 몰라 늪을 잃은 물새들 방황도 노을 속으로 묻혀가고 착한 사람들 정처 없이 기름처럼 운하를 따라 떠돌는지도 몰라 유람선이 뱉어내는 기름과 오수를 내가 견뎌낼 수 있을는지 몰라 내장이 오그라들고 빛도 닿지 않는 몸 깊숙이 울렁이는 구토증으로 밤마다 하얗게 혼절할지도 몰라 넋들이 수면에 풀어놓은 흔적이 천천히 비늘 벗고 하늘로 올라가는 어두운 밤, 산 넘고 넘어 수 백리 물길 고단하게 돌며 가슴팍 누르는 화물선 힘겹게 들어 올릴 수 있을는지 몰라 내가 이렇게 하소연해도 넌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지도 몰라 《권순자 시인의 「낙동강 연가」전문》 *권순자 시인은 1958년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3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다로 간 사내』가 있다.

남효선 기자

남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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