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내일’은 없다?

‘내일’의 언어학(상)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8.11.08 17:0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왕년의 영화,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총탄에 벌집이 되는 아련한 라스트 신, 팬들은 잊을 수 없다. 1960년대 남녀 갱 이야기 할리우드 필름이다. 둘의 이름 쓴 원제 ‘보니 앤드 클라이드’ 대신 우리 극장에 걸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잘 지은 이 제목, 늘 회자된다.

절망의 상징쯤으로 느낄 법한 제목이지만, 뜻밖에 우리말에 관한 논의에서도 화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다. 어제와 오늘은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내일은 한자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말에 내일은 없다’는 표현이다.

새 아침, 내일의 그 벅찬 희망을 이르는 우리 전래(傳來)의 말이 없다는 것은 한겨레 언중(言衆)에게 의당 서운한 일이겠다. 그러나, 왜 없을까. 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을 뿐이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 어감(語感)에 따라 분위기나 뜻이 달라진다는 식으로 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연상시킨다. 허나 그런 뜻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어’는 지난 시간, ‘이’는 지금, ‘아’는 다가올 시간을 얘기하는 우리말이다. 어렴풋하거나 거의 잊었지만, 언젠가 농부철학자 윤구병 교수가 신문기고 글에서 재야국어학자 정경해 선생(1911~1995)과 최한룡 선생(1926~2015)의 학설을 인용하며 제시한 이야기다.

윤 교수는 ‘어제 이제 아제’ 중 이제가 오늘이고, 아제가 내일이라고 했다. ‘이제’는 ‘지금’의 뜻으로 남았지만, ‘아제’는 흔적마저 없어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의 뜻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다만, 아제의 ‘아’는 ‘아직’이란 말에서 ‘다가올 미래’의 뜻을 겨우 보듬고 있다고 했다.

‘아제’처럼 ‘내일’에 밀린 말이 또 있다. 문자학자 진태하 교수가 옛 문헌 ‘계림유사’(鷄林類事)를 읽어내 1974년 세상에 알린 ‘하제’라는 말이다. 이 문헌은 고려 때(1103년) 북송(北宋)에서 파견한 외교관 손목(孫穆)이 고려의 이모저모를 적은 견문록이자 번역 단어장이다.

그 문헌의 명일왈할재(明日曰轄載)라는 글이 근거다. 명일 즉 내일을 ‘轄載’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361개 고려 말의 발음을 그 소리에 가까운 한자로 적은 것이어서 우리말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거기엔 천왈한날(天曰漢捺), ‘天은 漢捺(하늘)이다’라는 글도 있다.

할재나 한날은 발음을 적기 위한 글자여서 소리 말고 의미를 챙길 필요는 없다. 다만 轄載 漢捺의 당시 북송 발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주목하면 된다. 이 연구에서 ‘하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겨레학자 백기완 선생은 내일의 우리말로 ‘올제’를 든다. ‘후제’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말을 적을 우리 글자가 없었던 시기다. 중국발음으로 고려 말을 적은 문헌은 그래서 우리말 연구에 중요하다. 중국어 역사에서도 자기네 말의 과거 발음을 알 수 있어서 중요하다.

아차, ‘아제’도 있고 ‘하제’나 또 다른 말도 있다는데, 이제껏 한자어 내일(來日) 말고 다른 (우리)말은 없다고 여기고 있었구나. ‘아제 또는 하제의 한국 문화’를 위해 우리의 언어생활이나 연구가 더 깊고 진지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어떤 분이 국립국어원에 ‘하제가 내일의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왜 널리 사용하지 않는지요?’하고 물었다. 정부의 언어당국인 이 기관은 ‘질의하신 하제가 순우리말이라는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한마디로 잘랐다. 2017년 6월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실린 내용이다.

국민으로서 무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내일은 없는가?

▲ ‘내일’의 고려 말이 ‘하제’였을 것임을 알려주는 송나라 사람 손목의 고려견문록 ‘계림유사’의 한 쪽(왼쪽·한국민족문학대백과)과 갱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포스터.(네이버영화) 우리말 논의에 뜬금없이 이 제목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인가?

토막새김

轄載와 漢捺이 ‘할재’이고 ‘한날’인 이유

전남대 중문과 김태완 교수(문자학)는 ‘같은 글자라도 따로 떨어진 지역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현상이 있다’고 설명한다. 진태하 교수도 ‘우리는 한자를 받아들일 때의 소릿값을 비교적 지켜온 데 비해, 넓은 중국에서는 점차 자연스럽게 변화했다’고 말한다.

한자가 주로 유입된 때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중국 수(隋) 당(唐)대로 추정한다. 동방의 별이라는 뜻 ‘東方之星’이란 말을 예로 들면 수, 당에선 지금의 우리처럼 [동방지성]에 가깝게 읽었을 것이나 그 후 중국에서는 소리가 차츰 변해 오늘날 [둥팡즈싱]이 됐다.

밖에서 문자를 받아들인 경우, 그 소리와 뜻이 그것을 전해준 지역보다 더 보수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애초 두 지역에서는 소리만으로도 뜻을 서로 알 수 있었을 터다. 轄載와 漢捺, 하제와 하늘을 적었다는 그 한자어의 발음이 ‘할재’이고 ‘한날’인 이유다. <하편에 계속>​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