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전횡·비효율적 운영 방치 되풀이
미국식 지원정책 벗어나 공공성 회복을

사립대의 경우 한 학기 200만원 후반 대의 등록금을 내고, 입학한 학생이 군을 제대한 뒤복학하면 4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야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500만원, 1천만원 등록금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00년대 들어 대학등록금은 물가상승률을 2~3배 상회하며 치솟아 현재는 세계 4위권이다.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젊은이들 가운데 80%가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폭등은 서민가계를 불안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폭등하는 등록금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학부모·시민단체들이 동참한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는 각 대학과 거리에서 서명운동 등 실천활동 뿐 아니라 등록금 상한제·학자금대출제도·등록금 회계 독립에 관한 법률개정을 위한 입법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등록금 동결·인하를 위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을 지난 6일 참여연대에서 만났다.


-등록금이 폭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부가 대학자율화의 미명 아래 등록금 관리를 포기하면서 환경을 제공했다. 사립대의 경우 지난 1989년 등록금상한제가 사실상 폐지됐고 1991년엔 국립대의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이 없어졌다. 대학은 등록금을 통해 연구지원, 교수채용 등 교육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등 급속한 양적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인상됐다.

수도권대학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등록금의 41%는 건물 등의 건축비로 사용됐다. 또 등록금 가운데는 쓰고 남은 돈이 재단에 적립되는 비율이 높다. 43%가 출처가 불분명한 기타 적립금이다. 실질적으로 17.8% 가량의 등록금이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로 운영된 것이다.

-학생들과 대학이 등록금 협상을 하는데, 이를 통해 폭등을 억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등록금 협상에서 학교와 학생이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를 하지 못했다. 등록금 협상은 노사 협상처럼 강제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의견을 제시하면 참작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투명한 회계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실질적인 정보가 제공되고 이를 학생들이 분석하면서 협상을 해야 하는데, 항상 일방적인 협상이었다.

-재단 또는 대학의 독단적이고 사유화된 예산운영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많다. 경우는 다르지만 법학전문대학원 유치과정에서 막대한 시설투자자금이 로스쿨과 관련 없는 재학생들에게 전가돼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순수 교육예산과 건축 같은 사업용도의 예산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 행정지침에는 그런 지침이 있지만, 쓰임의 용도 등 구체적인 내용까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 이러다보니 건축적립금 문제에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구조다.

결국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대학자율이라는 것이 교육공공성에 입각해 대학이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방임하는 정책으로 귀결됐다. 이 과정에서 대학재단의 전횡과 비효율적인 운영이 방치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또한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학의 발전기금이나 학자금의 정부보조 등 학비지원제도가 서로 연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은 오직 등록금을 통해 학교·재단과 관련된 모든 재원을 벌충하려 한다.

등록금만으로 재원 벌충

-학자금 대출이 국민주택대출금리보다 높은 7.65%로 책정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자금 대출 방식이 일본식에서 출발했다가 최근 미국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학자금 융자를 통해 정책적으로 학비지원을 하는데, 무이자 또는 저리다. 처음엔 한국도 일본처럼 2% 수준의 저리이자를 보전해주는 학자금 대출제도를 운영했지만충분한 기금이 적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어려웠다. 재정적으로 한계에 다다르자 2002년 2학기부터 정부는 미국식으로 보증만 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학자금 대출은 시중금리와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적은 재정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수혜를 준다는 정책을 펴다 보니 60만 명의 학생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생색을 낼 수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장기저리, 무이자 대출은 전체의 25%정도 그친다.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부담이 크고 대학 졸업이전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여기다 최근엔 취업난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대출자들이 졸업 후에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정부는 무이자 등록금 융자제도 금융지원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

▲미국식 방식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미국은 세계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다. 그렇지만주요 사립대는 기부금 등 재단 적립금이 많아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버드의 경우 부모의 소득이 6만 달러 이하인 학생들은 등록금을 면제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무상 또는 저가 등록금 지원책과 졸업 후 등록금을 갚아나가는 후불제가 결합된 형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러한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대학이 방만한 운영하다보니 실질등록금은 국민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등록금 문제가 국민들이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높은 대학생 비율이라는 의견도 있다.

▲젊은이들 가운데 82%가 대학 진학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신분격차와 사회적 차별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고한 구조다. 부모 입장에선 전력을 다해 등록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은 필요적인 의무교육에 가깝다. 대학등록금은 더 이상 시장자치 영역의 문제가 아니고 헌법에 보장된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로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적정수 이상의 대학들이 있다 보니 대학지원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학이 무분별하게 확대되던 시기와 달리 진학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수와 정원을 적절하게 줄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재학생들이 겪고 있는 부담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생활비 가운데 주거비 다음으로 교육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도저히 서민들이 자기소득으로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사립대의 경우 연간 700만원을 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번의 휴학과 대출에 의존해 빚을 떠안는 상황이다.

-외국의 경우 각기 다른 등록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등록금이 저렴한 주립대 등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적은 경우가 있지만 사용자부담원칙이 강하고, 프랑스·독일처럼 정부지원이 많은 국가도 있다. 현재 등록금 관련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19세기 이후 제기된 대학의 자유·자율은 국가로부터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때문에 현재 대학자율과 교육받을 권리를 동일한 기준으로 묶을 수 없다. 대학자율은 대학이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19세기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고, 교육공공성은 교육 받을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되며 정부가 이에 대한 재정·정책적 의무를 져야 한다는 사회국가원리의 도입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대학이 자치와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명제 때문에 저소득층이 대학교육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 현재 상황은 정부가 책무를 방기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공공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자율을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면 안 된다.

저소득층 고통 정부 책임 방기

서부·북부 유럽의 경우 지금도 공공성 원리가 작동하는 사례다. 독일, 스웨덴은 무상 대학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 60~70만원 정도의 운영경비만 받는다. 공공성 원리가 퇴색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와 네덜란드 등의 경우에도 국가는 일정 정도의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영국은 실경비의 75% 정도를 지원하고 있고, 생활비에 대해선 융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연계형 등록금납부는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등록금후불제와 비슷한 것이다. 1만 파운드 이상 소득을 가져야 갚도록 설계되어 있다. 네덜란드 방식은 50%만 자비로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대출해 주는 성과연계형 상환방식이다. 일정한 성적을 받으면 이를 갚지 않는다. 학습욕구를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춘 운영방식이다. 이들 국가들의 정책은 무상교육에서 후퇴했지만 여전히 공공성을 살리는 근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자율에 맡겨 상당히 높은 상태이다. 시중금리를 통한 학비대출제도는 미국사회에서도 양극화 확대라는 사회문제를 노정하고 있어 우리가 그대로 답습할 모범사례는 아니다.

등록금 후불제 등 구체 방안을

-이같은 방식의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선 막대한 교육재정 확보가 요구되는데.

▲현재의 교육재정 구조로는 당장의 등록금 문제해결은 어렵다. 일정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적어도 영국식 모델에 접근해 정부가 실경비의 절반정도까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식의 등록금인상률 상한제 등을 부활하고 재정이 마련되는 대로 무이자융자, 등록금후불제를 적용하는 등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건축비 전용 등으로 부풀려진 등록금의 거품을 빼야 한다.

-운동 방향과 구체적인 계획은.

▲등록금 폭등 문제는 결국 정부의 교육철학·정책 변화로 시작된 문제다.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교육받을 권리를 개인책임으로 전가하는데서 벗어나 등록금 문제를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19세기 대학은 일부 부르주아 계층을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 대학교육은 의무교육처럼 자리 잡았다. 정부는 등록금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대학의 무분별한 등록금 운영을 관리할 공공적인 교육정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법제화 운동을 벌일 것이다. 입법청원을 통한 등록금 상한제, 학자금대출제도, 등록금 회계 독립 등 관련법 개정운동에 집중할 것이다. 여기에는 명시적인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과 건축적립금 한도 등 회계독립기준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할 예정이다.

심재훈 기자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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