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이라는 주제를 떠올려봤을 때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다. 남성에 비해 임금, 노동조건 등에서 차별받는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무래도 내게는 가장 가까운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주제는 성매매 여성의 인권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사실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단지 성매매는 해서는 안 되는 것 정도로 정리 할 수밖에….
여기까지 생각하자 참 인권활동가라는 내가 여성인권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문제를 성소수자 전반의 영역이 아닌 ‘여성’의 문제나 혹은 ‘여성의 차별’문제로만 협소하게 인식하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거창하게 ‘여성인권’이란 주제가 아닌 내 삶에서 과연 나는 남성 중심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란 물음으로 바꿔보았다. 하루의 삶만 돌아보아도 등골이 서늘하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난 어머니가 깨워서 일어났고, 어머니가 해놓은 밥을 먹고 출근 했으며 저녁에 퇴근하면 어머니가 빨아주실 빨래통에 내 옷을 던져놓을 것이다. 서른 넘게 나이 먹은 녀석이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다니!
‘여성인권’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나는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를 고민해야하는 수준인 것이다.
뭐 애써 변병을 해보자면, 그래도 여성 운동하는 동생 덕에, 그리고 동년배에 비해서는 매우 마초적이지 않은 아버지 덕에 어디 가서 반여성적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해도 일상에서 나의 모습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혜택에 안주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를테면 당연히 해야 할 설거지나 요리를 해놓고서는 마치 매우 친여성적인 것처럼 구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군대가 가지는 유일한 장점 중의 하나가 숱한 마마보이들에게 가사노동의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뭐 그래봤자 누군가에게는 평생 동안 강요된 노동을 아주 잠깐 맛보고서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 양 엄마나 여자 친구에게 자랑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소한 자기가 먹는 것은 자기가 준비하고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치우는 것 정도도 자취조차 해본 적 없는 숱한 귀한 아들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너무나 깊은 이해심으로 인권활동을 봐주고 계신 어머니 덕에 행복하게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주제에 지금과 같이 살면서 어디 가서 ‘여성인권’ 운운하는 게 참으로 창피하다. 내일부터라도 좀 사람답게 내가 해야 할 가사노동부터 챙겨야겠다. 서른이 넘은 한국의 남성 인권활동가에게 ‘여성의 날’은 이런 엄청난 부끄러움부터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이런….
나현필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나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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