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욕심은 버려라”

철학여행까페[23]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3.10 10:5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이동희
에픽테토스가 태어 난 프리기아 지방의 히에라폴리스

유럽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류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불안하고 불길한 생각을 잊기 위해 책을 펼치자 공교롭게도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의 첫 구절이 눈에 들어 왔다.

“세상에는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 비행기 안에서 불안한 마음을 가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밖의 일인데. 일종의 체념이랄까, 이런 생각에 도달하자 불안한 내 마음이 상당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노예철학자 에픽테토스

오늘 소개할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심란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그가 해주는 말은 이런 것이다.

“아네크, 카이 아네크.”(참아라! 그리고 체념하라)

에픽테토스는 AD 50~60년 경 터키 서남쪽에 위치한 프리기아 지방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나 135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네로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된 해방 노예 에파프로디토스의 노예였다. 노예의 노예였던 셈이다. 그의 이름도 노예를 뜻하는 ‘곁다리로 얻은 사나이’이다. 그의 주인 에파프로디토스는 네로가 죽을 때 함께 곁에 있었던 네 명의 해방노예들 중 한 사람이었다. 센키비치가 쓴 ‘퀴바디스’에서 그는 네로의 자살을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서둘러! 하고 해방노예가 다 같이 외쳤다. 네로는 칼을 가져다 목에 댔지만, 겁에 질려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뜻밖에도 에파프로디토스가 네로의 손을 누르자 칼이 손잡이까지 들어갔으며, 위쪽을 향한 네로의 눈은 공포로 많이 떨리고 있었다.”

네로의 최후를 지켰던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에픽테토스와 관련해서 그는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비틀어 부러뜨린 잔인한 주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루는 주인 에파프로디토스가 에픽테토스를 화내게 하려고 그의 다리를 비틀었다.

에픽테토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주인님! 그렇게 계속 비틀면 다리가 부러집니다.”

주인은 화가 나서 다리를 더욱 비틀었다. 그러자 다리가 딱 부러졌다. 에픽테투스가 웃으면서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거 보십시오. 계속 비틀면 다리가 부러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일화는 에픽테토스의 스토아적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십중팔구 후세에 지어 낸 이야기일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실제로 류머티즘 때문에 다리를 절었다. 고대의 호사가들은 에픽테토스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해 에파프로디토스를 자신의 노예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잔인한 주인으로 묘사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주인을 전혀 잔인한 사람으로 기록해 놓지 않았다. 실제로 에파프로디토스는 에픽테토스를 당시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프스(Musonius Rufus)의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고, 또한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좀 전에 언급한 대로 에픽테토스는 주인의 배려로 무소니우스 루프스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당시 노예가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의 노예였던 무세, 제논의 노예였던 페르세우스, 파이돈 등이 모두 노예 철학자들이었다. 어쩌면 노예라는 절망적인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사를 초연하게 바라보게 했을지도 모른다.

논증이 아닌 철학의 실천을

그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의 신분을 획득하게 되면서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철학자 추방령(95년경)이 발표되자 그리스 북서부 지역인 악티움 만에 있는 니코폴리스로 옮겨 가 그곳에 학교를 세워 철학을 가르쳤다.

니코폴리스는 아우구스티누스 황제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안토니우스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웠던 대단히 크고 화려한 도시였다. 또한 이 도시는 그리스와 로마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이동희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파묵칼레 온천장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스토아의 사상을 실천적인 측면에서 강조했다. 그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증이 아니라 철학적 원리의 실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이성의 원리에 따라 실천적으로 삶을 산 철학자의 모범으로 보고 그처럼 살라고 역설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logos)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않았고, 이성에 따라 자신을 이끌어갔다. 그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완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네가 아직은 소크라테스가 아닐지라도, 소크라테스가 된 것처럼 살아야만 한다.”(엥케이리디온 제51장)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장군 니코메데이아의 아리아누스가 그를 만나러 찾아 올 정도였으니까. 아리아누스는 그를 만나 장군의 신분도 버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글을 쓸 줄 몰랐는지도 모른다. 아리아누스는 그런 스승의 말과 사상을 꼼꼼하게 기록해 8권의 담화록을 남겼는데 현재 4권만이 전해온다. 이 책은 나중에 ‘요약본’이라는 뜻의 엥케이리디온으로 요약되었다. 이 엥케이리디온은 하버드 대학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읽어야 할 고전시리즈 중 3번째 책으로 선정할 정도로 서양인들에게는 영향력이 있는 책이다.

서양인들에게 큰 영향력

엥케이리디온에 나오는 몇 가지 격언들을 인용해 보자

‘진흙으로 만든 것인지 알면서도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애착을 갖는다면, 언젠가 그것이 깨져버린다고 하더라도 불평을 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아내나 자식에게 입맞춤을 할 때, 그대여, 언제나 이렇게 다짐하라. 지금 나는 언젠가 죽을 운명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라고. 그리하여 언젠가 그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도록.’

‘죽음, 추방 그 밖의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다른 모든 것들을 날마다 네 눈앞에서 놔두라. 특히 모든 것들 중에서 죽음을. 그러면 너는 결코 그 어떤 비참한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것을 지나치게 욕망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대는 특정한 역할을 맡은 한낱 배우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대의 역할이 길든 짧든, 걸인이든 재판관이든, 대단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그대의 역할을 잘 연기하도록 하여라.’

‘철학의 원리들을 말하는 것 대신에 그것에 따라 행하라.’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단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에픽테토스는 철학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게 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그의 철학의 영향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비록 노예였지만, 황제에게도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였다. 에픽테토스 그 자신은 철학을 통해 신의 친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로스만큼 불쌍하고, 걸음 때마다 절뚝거리는, 노예로 태어 난, 나 에픽테토스는 신의 친구였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