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갑골문이 우리 글자이기도 한 까닭

‘내일’의 언어학(하)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8.11.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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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래(來)는 원래 보리 그림이다. 어쩌다 ‘오다’는 뜻 됐을까? (이락의 著 ‘한자정해’ 삽화·위)와 내일을 쏘지 마라, 인류의 희망이니...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아래)

상편에 이어 또 ‘내일’이 제목에 든 영화다.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화려한 이름의 젊을 적 필름 ‘내일을 향해 쏴라’, 끝내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 악당들이 빗발 같은 총탄에 자신의 내일과 함께 스러지는 라스트 신까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닮았다.

남자 둘, 짝패 갱 이름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1970년 미국)가 원제다. ‘난 자유로우니 아무도 날 꺾지 못해...’라는 가사의 삽입곡 ‘내 머리 위에 빗방울 쏟아지고’(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도 함께 히트했다.

여기서 ‘내일’이 붙은 이유는 ‘어제 이제(오늘) 아제’ 중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의 다음 날’이 갖는 상징성을 티켓 판매에 활용하기 위한 의도였으리. 제목(장사)의 중요성을 ‘문화산업’에 잘 구현한 것으로 본다. 아제 즉 내일은, 누구에게나 부서지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이니.

내일의 원래 우리말로 윤구병 교수가 일러준 ‘아제’나 진태하 교수가 찾아낸 ‘하제’를 알게 돼 기쁘다는 공감을 여러분이 보내주셨다. 또 한자어 내일(來日)이 아제나 하제를 밀치고 ‘우리말’로 들어앉은 내역을 궁금해 하는 이도 많았다. 이 궁금증은 우리말 역사의 여러 자락을 톺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다. 다만 올 래(來) 글자의 본디로 ‘내일’의 뜻을 새삼스럽게 살피는 것이 작으나마 단서(端緖)가 되지 않을까.

이런 시도와 성찰로 우리 겨레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의 새벽을 살던 황하(黃河)유역 사람들이 아래(내일)를 어떤 이미지로 파악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원래 래(來)는 갑골문의 보리 (그림)글자였다. ‘한자의 원리’인 문자학의 관점으로, 보리 글자 來가 ‘오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을 가차(假借)라고 한다. 임시로(假) 빌렸다(借)는 이 말은 어떤 새 뜻을 표시하기 위해 기왕에 만들어져 있던 다른 글자를 빌리는(차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옛날 ‘오다’라는 뜻을 표현하는 한자(漢字)의 글자가 없을 때, 그와 소리나 뜻이 비슷한 來라는 글자를 그 뜻의 글자로 대신 쓰는 것이다. 보리 來를 올 來로 쓰게 된 이유나 꼬투리는 무엇일까. 시적(詩的) 변용(變容) 즉 비유법이 이 대목의 바탕에 진하게 깔린다.

중앙아시아에서 ‘옮겨 온’ 품종이어서 보리의 그림글자가 ‘오다’ 뜻으로 쓰이게 됐다는 설명이 그 첫째다. 또 보리가 모진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사람이 ‘와서’ 웃자란 싹을 밟아주는 등의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는 이미지에서 ‘오다’는 글자로 빌렸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오다’로 來가 쓰여 원래 뜻 ‘보리’와 구분이 필요해지자 발(그림)을 덧댄 새 글자를 지었다. 보리 맥(麥)의 아래는 저녁 석(夕)이 아닌, ‘뒤쳐져 온다’는 뜻 치(夂)다. 발 그림 갈 지(止)의 갑골문을 거꾸로 뒤집어 매달았다. 오늘에 이르는 3500여년 한자 여정(旅程)의 한 대목이다.

변용 변신 비유의 시적 상상력이 춤춘다. 그림이 익어 글자가 되고 이 글자가 새 글자 지어내 우주의 의미를 적어낸다. 삼라만상의 이유, 철학의 언어가 이렇게 쌓였다. 문자는 수단이기도 하거니와, 그 전에 사물의 자체 즉 세상의 본디임을 다시 본다.

어그러진 천(舛)자가 있다. 치(夂)와 치 그림을 좌우로 뒤집은 그림(기호)을 나란히 세웠다. 무용(舞踊)의 舞 아래에 붙는 글자다. 춤추는 스텝은 발이 서로 어긋나야 한다. 한 방향을 향하면 행진이지 춤이 아니다.

한자는 레고처럼 이미지들을 붙여 만들었다. 한 자 한 자가 시나 그림이면서 일 점(點) 일 획(劃)에 무의미한 부스러기 하나 없는, 묘수다. 갑골문을 새롭게 살피며 고개 다시 끄덕인다. 갑골문은, 오래된 미래라고나 할까, 아제를 위한 슬기로운 말글의 신전 같다.

내일을 쏘지 마라, 우리에겐 아제가 있지 않으냐! 내일은 우리말로 ‘아제’다.

토막새김

한자(漢字)? 한자(韓字)!

그 때도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이 있었나? 지금처럼 국경 나뉘어 미국과도 아웅다웅했을까? 중국 북한 한국의 현재 영토로 3500년 전을 상상하지 말 것. 동아지중해 문명, 신화처럼 그 실체 아른거리는 고대왕조 하(夏) 상(商·은 殷) 주(周) 중 상나라로 떠나보자.

상나라 황하 유역에선 동이(東夷)겨레도 다른 겨레들과 어울려 부대꼈을 터다. 이 때 갑골문은 만들어졌다. 페이크뉴스 같은 조작적 역사 기술(記述) 방식으로 불과 1세대(30년) 전만해도 상식이었던 이런 사실을 중국은 역사에서 지웠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동북아 역사를 짜맞춰 중국의 위상을 지지하는 특공작전이다. 그 결과물은 권력의 무게와 함께 그들 자신까지도 무지의 늪에 빠뜨린다. 물론 이웃을 당황하게도 한다. 일본이 그런 것처럼, 중국의 역사(학자)는 이미 사실을 잊었다. 그 와중에 역시 우리도 줏대를 잃고 있었을까?

한자를 ‘중국글자’라고 여기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갑골문에서 비롯한 한자(漢字), 우리 선조들도 그 ‘제조의 공정’에 함께 기여했을 터다. 우리의 글자란 뜻으로 한자(韓字)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상식의 힘은 제국도 무너뜨린다.

지금 중국인구의 주류(91.5%)라는 한족(漢族)이 그때 거기서도 주류였을까? 이런 질문, 중국선 금기(禁忌)일 수 있다. 하물며 지워진 역사다. 그러나 이 동북공정, 우리 역사 아니다. 힘이 아닌, 시간의 두께를 잊지 않고 경건하게 궁리하는 것이 인류역사다. 우리가 짓는 큰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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