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홍익인간의 동이겨레, 본디로 돌아가자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송년-2018년의 큰 뜻 강상헌 논설주간l승인2018.12.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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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팽팽하다. ‘팽’ 소리로 살기 더 오른 화살, 길게 허공 찔렀다. 3000년 전 거북 배딱지에 새겨진 활 그림, 화살 한 대가 그 활(弓 궁)을 떠나는 절대적 순간의 묘사가 홍(弘)자다. 화살을 표시한, 활에 걸린 작은 막대는 ‘마늘 모’라고 읽는 사(厶) 글자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독기 뿜는 화살의 비행이 퉁기는 허공 찢는 소리는 개벽(開闢)과도 같은 공포다. 갑골문의 그 그림을 상상한다. 사사로운 음기(淫氣)가 끼어들 틈이 없다. 마침내 그 화살은 천하를 꿇어앉힌다. 활과 화살, 크고 드넓은 우리의 우주다. 우리는, 홍익인간의 동이겨레다.

분수 모르는 저 적폐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린, 천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다. 말 좀 낯설다고 겨레 기상(氣像) 스러지랴?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큰 뜻이 ‘호연지기’란 말처럼 ‘딴 세상’ 문자가 되더니 ‘불수능 국어’ 문제가 우우우 터져 나왔다던가.

말 모르며 어찌 뜻 지을까? 모두 허공 찌르며 대책들 궁리해 내더라만, 어찌 실없다 하지 않으랴. ‘왜 어렵냐!’ 삿대질 하더라만, 왜 쉬워야 하지? 대학 갈 이는 대학의 언어를 가져야 하지 않니? 뭐가 잘못이지? 모두 정신줄을 놓아버렸나? 시사점이 큰 ‘사태’로 본다.

동이족(東夷族), 우리 겨레, 또는 우리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동쪽의 족속을 포괄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뜻 물으면 열에 아홉은 ‘동쪽 오랑캐’란다. 또 묻자. 당신은, 우리는 오랑캐인가? 정신줄은 논리이기도 하지만, 본디의 긍지다. 자존심이다. 나는, ‘당신’처럼 오랑캐가 아니다.

사전엔 그렇게 적혀 있지만, 동이겨레의 이(夷)는 ‘오랑캐’가 아니다. ‘큰 활’ 즉 대궁(大弓)이다. 또 활 잘 쏘는 무사나, 궁도로 마음 공부하는 선비다. 큰 사람의 그림인 大와 활 弓에는 삿된 뜻이 없다. 우주적 스케일의 호한(豪悍)한 이미지다. 글자에는 사물의 본디가 안겨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김한민 감독, 2011년)을 보았는가? 우리 활은 예로부터 큰 두려움, 외경(畏敬)을 불렀다. 김 감독의 다른 영화 ‘명량’(2014년)에서 이순신 장군도 무섭게 활을 쏘았다.

활 쏘는 겨레가 무서워 옛적 상대방은 짐짓 ‘오랑캐’라는 비속(卑俗)의 비유법을 썼을까?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다음 시기 문자인 전문(篆文)에도 夷는 大와 弓의 합체다. 큰 나라 섬기는 사대(事大)의 숙명 속에서 원래 뜻 스러지고 ‘오랑캐’ 비유만 남은 것이다. 버려야 한다.

생각하라. 활의, 튕겨나가는 화살의 어디에 그런 짜잔한 때가 묻을 수 있는가? 진취의 당당함이 홍(弘)과 이(夷)의 바탕이다. 현대사의 들목에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우(右)니 좌(左)니 새로 배운 말로 옹알이하느라 우린 본디를 잊고 있었더라. 사람들아, 우리가 누구던가?

유교(儒敎)의 갈래 주자학 같은, 우리 것 아니고 다만 대하(大河) 역사 속 여러 생각의 유행 한 자락인 그런 ‘이념’들을 겨레 생명의 뜻으로, 우리의 본디로 삼아야 한다고 설레발을 치던 얼치기 지식과 지식인들보다 당신과 내가 못한 것, 못 난 것이 무엇인가?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우니 좌니 하는 일본제국주의에 묻어 온 서양(인)들의 ‘정복주의’ 언어를 귀감(龜鑑) 삼았다가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고? 유교의 이념이 어찌 국학 또는 한국학(韓國學)의 바탕일 수 있느냐고 성토하는 당신 아니던가?

기왕의 지식으로 누리는 여러 기득권 내려놓고, 잠시 잊고 내려두었던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귀의(歸依)해야 한다. 줏대를 세우고 이웃의 여러 공부를 우리의 공부로 걸러내야 크고 착한 공부가 되는 것이다.

홍(弘)자는 그리하여 ‘활 소리’ 말고도 넓고 크다, 즉 광대하다는 뜻으로 인류를 가르쳐왔다. 우리 겨레가 등에 진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그 본보기다. ‘더한다’는 뜻 익(益)자는 그릇(皿 명)에 물(氺, 水와 동자) 찰찰 넘치는 상쾌한 이미지의 글자다.

겨레마다 뜻 가지고 살 듯, 우리 겨레 생긴 뜻이다. 호연한 그 뜻 품어야 비로소 인류에 이바지할 겨레다. 긴 역사 속에서 어쩌다 잠시 쩨쩨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면, 그걸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지는 말아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도 저기 오고 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 단군 할아버지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강화도 마니산 정상의 제단 참성단. 여기서 해마다 전국체전 성화를 뜬다. (사진 강화군)

토막새김

신시(神市) 그리고 청출어람(靑出於藍)

홍익인간은 또한 이기심을 이기라는 가르침이다. ‘나’를 넘어서 인류 모두를 도우라는 하늘의 계시이다. 까마득한 고대, 놀라운 그 정신적인 맥(脈)은 ‘당신’이 있어서 오늘의 실존이다.

고려시대 삼국유사(三國遺事 1281년경)와 제왕운기(帝王韻紀 1287년)에 실린 우리 고대사(단군신화)가 보듬은 그 뜻은 자못 위대하다. 다만 ‘인간을 돕는다’는 그 크기를 이제껏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다시 봐야 할 ‘홍익인간주의’다.

다음 인용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단군신화가 시작되는 대목이다.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냈다.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거늘, 천부인 세 개를 주고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삼천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가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다.…’

홍익인간, 하늘의 신(神)인 환인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염원이라고 쓰였지만, 이는 우리 겨레 구성원(선조)들의 철학이자 이념의 표현일 터다. 신화 또는 설화를 읽는 방법이다. 신화는 역사와 별개가 아니다. 동전의 앞뒷면이다.

우리가 세계의 겨레들 중 얼마나 큰 힘을 지닌 강타자인지, 이제야 스스로 깨치는 조짐을 본다. ‘정신줄’ 당겨 잡을 수 있었던 2018년은 그래서 중요하다. 신시에 자신감이 더 필요할 때,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원리다. 선배는 후배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섬기라. 진정한 용기다.​

강상헌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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