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상업화 드라이브 급가속

기획재정부 시장논리 개정법안 추진 심재훈l승인2008.03.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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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 활성화 세계추세 반하는 정책

올 하반기 진행되는 의료법 개정에서 ‘의료상업화’ 조항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의료법 개정안보다 큰 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의료법 개정에서 영리법인 허용 등 상업화 내용을 보건복지가족부에 주문한 바 있는 기획재정부가 이번엔 복지부와 사전협의 없이 환자 유인, 알선 등 상업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 계획을 발표하고 개정시한까지 못 박았다. 시민사회는 의료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산업논리만 남아 의료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 실천계획에는 해외 원정 진료로 인한 외화유출을 막고 외국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유인, 알선을 조항을 신설하고, 보험상품을 표준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검토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의료서비스 규제완화가 경상수지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정부 설명은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최고수준의 의료기술을 보유한 미국조차 해외환자 유치 수입이 전체 서비스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는 “치료부분이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서 지난해 외국계 환자들이 쓴 돈이 1억달러 내외”라며 “의료를 산업화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있다는 홍보는 국민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해외원정치료로 외화가 유출된다는 논리 또한 일부 특정 계층과 사례에 국한된 것일뿐 아니라 그 규모도 한해 1천만 달러 수준이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해외병원 이용자 대부분이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한 원정출산이다. 최근 중국으로 가는 환자들이 있지만 이는 국내에서 신장, 간 등 이식할 장기를 구할 수 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건희 회장 같은 극소수만이 삼성의료원을 놔두고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개연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지속적으로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상업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해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보험업계, 경총 등 사용자단체의 요구와 대형병원의 확장의지 등 건강보험과 의료를 둘러싼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실손형 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위해선 환자 유인알선 허용과 건강보험 질병정보공유 등이 필수적이라며 관련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실손형 상품(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항목과 본인부담금을 지급)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정액형 의료보험(치료비와 관계없이 암, 뇌졸중 등 질환별로 일정액을 보상)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수익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복지부가 실손형 의료보험 판매를 허용한 이후 손해보험사는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고 비급여부분만 지급하는 불완전한 형태의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내놓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생명보험사들은 실손형 의료보험이 손해율 등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출시를 미뤄왔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험업계의 요구는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금융권 CEO간의 간담회에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공-사보험 간 정보공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했고, 대통령직 인수위가 이를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규제완화 분위기 맞춰 지난달 말 삼성, 대한, 교보, 녹십자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이 상반기 중 실손형 의료보험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주무부처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의료 관련 규제완화를 서두르는데는 보험업계의 요구뿐 아니라 경제부처와 복지부처간의 건강보험을 둘러싼 시각차도 일정 정도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의료법 개정에서도 실손형 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기획재정부 핵심요구사안이었다. 당시 재정경제부 복지경제과 담당자는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보장성 확대는 한계가 있다”며 “건강보험이 책임지지 못하는 비급여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실손형 보험상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해 의료에서의 수익자 부담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이렇듯 경제부처가 수익자 부담원칙을 내세우면서 민영보험을 활성하려는데는 최근 지속되고 있는 건강보험의 적자와 이를 보전하기 위한 국고지원 부담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다 매년 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 참가하는 경총 등 재계도 직장보험 가입자 보험료의 50%를 부담하는 만큼 보험료 상승을 비용 증가 여기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꺼리고 있다.

건강보험은 2006년 747억, 지난해 3천여억원 등 적자를 기록하면서 누적적립금도 1주일분 급여비인 8000억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건강보험료는 올해 6.4% 인상됐다. 현재 건강보험의 지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연 8%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민간보험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체감 의료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유혜원 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사회연대 의식이 체질화 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당장 아프지 않다면 이 문제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민간보험 활성화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적용범위 확대)를 가로막고, 장기적으로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어 건강보험으로 대변되는 한국 공공의료제도의 필요성과 토대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실련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민간보험 확대로 건강에 따라 보험가입에 심각한 차별을 경험하게 되고, 가계 부담이 증가하는 등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민간의료보험의 적극적 구매자로서 거리낌 없는 고소득층과는 달리 저소득층 건강 선택권은 제한되어 이로 인한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 일본 등 공보험 중심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국가 가운데 보장성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 현실에서 민간보험 활성화정책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반한다는 지적이다. 직장 의료보험 등 의료비의 상당부분을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미국도 고비용 의료시스템의 개혁이 대선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오바마, 힐러리의 핵심정책이 고비용 문제를 야기하는 민간보험을 일부 제한하고 사회보험시스템을 모색하자는것”이라며 “건강보험 비중을 줄이고 민간보험을 확대하는 것이 당장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의료비용을 상승시키고 의료양극화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획재정부 로드맵에는 오는 10월 30일까지 의료법 개정안을 새로 제출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아직 주무부처인 복지부와는 협의된 내용이 없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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