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로 살고자 한 황제

철학여행까페[24]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3.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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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만든 오데온, 아테네 아크로폴리스가는 입구에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자로서 철인왕을 꿈꾸었다. 어쩌면 플라톤이 꿈꾼 철인왕의 모습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서 실현되었는지 모른다. 그것도 조그만 촌락 정도의 나라가 아니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발아래 두었던 대제국 로마를 다스리는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그의 모습은 어땠을까? 한때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게르만족과 싸우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이 나온다. 리차드 해리스가 그 역을 맡았는데, 전쟁에 지치고 고뇌하는 황제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로서 로마제국 16대 황제이자 5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는 서기 121년 4월 로마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하드리아누스와 인척간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12살 때부터 철학자의 복장을 하고 푹신하고 화려한 침대보다 맨 바닥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철학자의 기질이 농후했던 것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총명하고 열심히 배우는 그를 좋아해서 ‘안니우스 베리시무스’(가장 성실한 안니우스)라고 불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를 미래의 카이사르라고 점지했다.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고모부인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입양하도록 하였다.

그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로부터 황제수업을 받았다. 5현
제 시대에는 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주변 친척 중에서 똑똑하고 유능한 인물을 양자로 입양해 황제의 후계자가 되도록 하였다. 고모부이자 양아버지인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가 통치하던 시기에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셔놓고 가르침을 배웠다. 헤로데스 아티쿠스에게는 그리스 수사학을 배웠고, 스토아 철학자 루스티쿠스와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받아 철학을 공부했다.

서기 161년 3월, 그는 나이 마흔이 되어 황제가 되었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수많은 외침과 반란 등에 시달렸다. 또한 가장 가까운 부인과 자식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했다. 황후 파우스티나는 공공연히 검투사들과 바람을 피우는 것은 물론 이집트와 시리아 총독 아비디우스 갓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애인이자 공모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날 정도로 정숙하지 못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황제는 극진히 사랑했다. 황제가 황후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가 반란이 진압되자 시리아를 거쳐 카파도키아의 타우르스 산에 있는 작은 마을 할라라로 갔다. 그곳에서 지병인 통풍 때문에 황후가 급사하자, 황제는 황후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극진히 장사를 지냈고, 더욱이 황후가 연루되었던 갓시우스 일당의 사면을 원로원에 요청했다고 한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이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황제는 파우스티나 황후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슬픈 마음을 달래 보려 애를 썼다.

이동희
꼼모두스의 흉상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그 영웅


그는 부인 못지않게 자식도 극진히 사랑했지만 자식 복은 없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그는 아들 콤모도스에게 목이 졸라 죽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그가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페스트에 걸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로마 역사상 가장 평판이 나쁜 황제였다. 그에게 내려 진 평은 ‘로마인에게 내려진 가장 극악한 저주’이다. 콤모도스 때문에 이후 로마는 매우 불행한 시대로 접어든다. 영화에서 콤모도스가 막시무스와 비열한 방식으로 검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는 자신을 헤라클레스라고 칭하고 검투사로 종종 나서기도 했다. 그는 애첩 마르키아에 의해 교살되었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철학사에 길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상이 특별하기 보다는 그가 로마제국의 황제였고, 또한 수사학적으로 뛰어난 문장들로 구성된 ‘명상록’이라는 책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인생과 우주의 본성과 신들의 존재 방식에 관해 틈이 있을 때마다 그리스어로 기록해 두었다. 그가 이렇게 쓴 ‘명상록’은 당대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가 4세기에 들어서야 알려졌다. 이 명상록이란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사실 이 명상록이라는 책 제목은 그리스어로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이다. 직역하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 이라는 뜻이지만, 이 책은 자기에 대한 성찰과 경계를 담은 책이다. 그러므로 책의 제목은 명상록보다 ‘자경록’이라고 번역해야 그 뜻에 가깝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가 자신을 견제하고 자신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밖에 없었을 것이다.

10권으로 된 명상록의 제1권을 제외한 그 밖의 책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너에게’라는 2인칭을 사용해 ‘이렇게 하라“ 또는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은 모두 그 자신에게 하는 격려 내지 경고이다. 명상록에서 황제는 자신을 이렇게 단속한다.

“황제 티를 내거나 궁전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기가 쉽기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명상록, VI)

이동희
로마 황제 시절 소아시아에 건축된 로마식 도시 아프로디사스 입구
“철학대로 살도록 노력하라”


명상록은 인생에 대한 혜안과 겸손한 자세,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와 충고와 반성, 교훈적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의 글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명상록의 전반적 기조는 우울하거나 슬프다. 또한 죽음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많다. 어쩌면 재위기간 동안 반란과 외침 때문에 계속해서 전쟁을 치루면서 그가 보았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가 쓴 명상록의 일부는 게르만족과 싸우는 전선에서 쓰여진 것이다.

서기 178년 8월에 황제는 북방의 게르만족이 준동하자 제2 게르마니아 원정의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그는 페스트 병에 걸렸다. 임종을 앞둔 그는 전혀 요란을 떨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 스스로 하얀 천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린 다음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명상록에 쓴 이 구절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출생과도 같은 것이며, 자연의 신비이다. 출생이 여러 요소들의 결합이라면 죽음은 그것들의 해체로, 조금도 곤혹스러워할 일이 아니다.”(명상록, IV)

그는 10일이 모자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말한 대로 죽어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그의 노새 마부나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황제의 자리 보다 더욱 더 철학자의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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