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니 밥이 다 되었습니다. 스물 몇 해 동안 써 온 양은 도시락통에 갓 한 밥을 담습니다. 옆지기와 손을 잡고 집을 나와서 골목을 걷습니다. 올해로 ‘백한 살을 맞이하는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으로 들어갑니다. 떡볶이 한 접시와 순대 한 접시, 여기에 소시지와 슬러시 하나. 1000원, 2000원, 900원, 400원. 소시지 값이 100원 올라서 900원이 되었군요. 분식집 아주머니가 우리 도시락을 보더니 “아유, 맛있는 밥을 해서 드시네” 하고 인사를 합니다. 떡볶이와 순대 한 접시에다가 도시락을 곁들이니 배가 잔뜩 부릅니다. 초등학교 앞 떡볶기라 하나도 안 매워서 제 입에는 찰싹 달라붙습니다.
이윽고 낮밥 때가 되었는지 초등학교 낮은학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띄엄띄엄. 분식집 아주머니는 손님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손님 아주머니한테 “엄마, 나 100원만!” 하며 들어오는 계집아이 하나. 100원? 100원을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문방구에 가서 군것질이라도 하는감? 아직 100원짜리 문방구 군것질거리가 있단 말이지?
먹은 값을 치른 뒤, 학교 앞문을 지나서 천막농성 하는 곳으로. 옆지기는 천막농성터에 들어가서 먼저 와 있는 분과 함께 지키고 앉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녹음파일을 풉니다. 지난해에, 이곳 동네 사람들이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장과 토목부장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담긴 파일. 동네 사람들은 당신들 삶터인 동네 한복판을 꿰뚫는 길은 싫다며 반대를 하고, 시 공무원인 웃사람 둘은 ‘시에서 하는 일을 반대만 하면 안 된다’는 뜻만 반말로 되풀이, 또 되풀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녹음파일을 풀다가 멈추고, 책상맡에 있는 책 하나를 집습니다. 농사꾼 전희식 님이 당신 어머님을 시골집에서 모시는 이야기를 담은 책 <똥꽃>(그물코,2008). “면사무소에 가도 그렇고 병원에 가도 그렇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간병인도 그렇고, 하물며 우체부 아저씨도 그랬다. 여든여섯인 우리 머어니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이 잡수시고 몸 어딘가가 불편한 노인을 대하는 건강한 사람들의 태도는 단순한 무시를 넘어서 무례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옆에 계신데도 그네들끼리 함부로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다. 힐끔힐끔 쳐다보면서.”(155쪽) 히유, 세상살이나 책이나 마찬가지로구나.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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