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25- “먹을수록 배 고픈 꽃”

남효선l승인2008.03.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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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에 관한 기억 둘

진달래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 잎 두 잎 따먹은 진달래에 취하여
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을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 「진달래」전문>

남효선
새봄이 되자 참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60~70년대,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을 헤쳐 온 사람들에게 참꽃은 허기진 배를 달래는 유일한 주전부리이자, 고된 시집살이와 노동에 시달려 온 이 땅의 아낙들에게는 '신명과 해방'으로 이끄는 '화전놀이'의 기억이다.


# 기억 하나, 허기진 배를 달래는 먹을거리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 고픈 꽃...」그 때는 그랬다. 봄날 양지바른 산천을 붉게 물들이며 지천으로 피어나는 참꽃을 보면 ‘꾹죽’냄새가 난다. 종일 허기져 하늘만 쳐다보던, 아슴한 유년의 기억이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꾹죽은 긴긴 보리고개를 넘어가는 유일한 양식이었다. 꾹죽은 ‘짝두보리’라는 섬뜩한 이름으로도 불렸다. 꾹죽은 ‘국도 아닌, 죽도 아닌 먹을거리’였다. 곡기는 전체 양의 2할에 불과했다. 8할은 거의 ‘씨래기(무청을 말린 나물)’나 봄나물이었다.

남효선
한 해 동안 애써 거둔 양식은 이듬해 봄이 오기도 전에 바닥이 나기 일쑤였다. 지천으로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어나는 참꽃은, 이 무렵 아이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는 요긴한 주전부리였다. 아비는 채 익지도 않은 시퍼런 보리를 한줌 베어 작두로 줄기 채 썰어, 봄나물과 함께 범벅을 쑤었다. 그나마 식구들이 실컷 먹을 만큼 양도 차질 않는 ‘짝두보리범벅’을 놓고 식구들은 허기진 배를 채웠다. 아비들이 짝두보리를 벨 무렵이면, 아이들은 주린 배를 잡고 산으로 내달았다.

산천을 발갛게 달군 참꽃을 뜯은 아이들의 입술은 푸르딩딩하게 물들었다. 정신없이 참꽃을 뜯은 아이들은 푸르딩딩한 입술을 서로 쳐다보며 한바탕 배꼽을 잡았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없었지만, 입 안에서 달짝시큼하게 씹히는 맛만으로도 허기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기억 둘, 신명과 해방의 꽃

참꽃은 여성해방의 꽃이다. 무슨 거창한 말이냐 하겠지만 참꽃은 60년대를 어렵게 헤쳐 나온 여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계화영농법이 보급되기 이전, 60~70년대 농법은 오로지 인력과 축력(소)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새봄이 오고 청명 무렵이면 농촌의 가계는 한해농사준비로 부산해진다. 청명과 곡우를 전후해 못자리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못자리내기는 한 해 농사를 가늠하는 소중한 일이었다. 특히 못자리를 준비하는 곡우를 기점으로 농촌사회는 한참도 쉴 새 없는 노동의 세계로 몰입한다. 바로 이 노동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귀에 ‘삼월삼짓날’이 자리하고 있다. 농촌여성이 일 년 중 가장 학수고대하는 ‘화전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삼짇날을 앞두면 갓 시집 온 새댁들의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이 무렵이면 ‘꽃놀이’ 생각에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는다.

남효선
울진지방의 농촌 아낙들은 ‘삼월삼짇날 화전놀이’를 ‘진달래놀이’로 부른다. 화전놀이를 가는 날이면 시댁의 어른들도 짐짓 모른 척 용인해준다. 갓 시집 온 며느리들은 이날 새벽부터 뜬 눈으로 ‘화전놀이’를 즐길 준비로 부산해진다. 그렇다고 특별한 먹을거리를 준비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진달래 지지미’이다. ‘지지미’는 ‘부침’의 울진지방 방언이다.

시어머니의 곱지 않은 눈길을 피해 준비해 온 ‘솥뚜껑’에 밀가루 반죽을 올리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참꽃이파리를 뜯어 노릿노릿하게 부쳐 낸 ‘참꽃지지미’를 놓고 한바탕 펼치는춤판은고된 시집살이와 힘든 농촌의 노동을 일거에 날려 보내는, ‘노동의 해방이자 삶의 재충전’이었다.

진달래가 붉은 꽃망울을 구름처럼 피워내는 산 계곡 너른 바위에 솥을 걸고, 아낙들은 냄비뚜껑과 양재기를 두들기며 시집살이와 노동의 껍질을 훌훌 벗어던졌다. 이들이 은밀하게, 그러나 신명으로 풀어내는 ‘화전놀이’는 우리 농촌사회의 소중한 여성민속으로 남아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참꽃이 툭툭 토해내는 붉은 향내 천지인데, 사람살이 세상은 국민을 등에 업고 연일 권력쟁투를 벌이는 이전투구판이다.

남효선 기자

남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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