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디인 ‘바른 이름’과 브랜드를 헷갈리면 되나요?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정명론’ 영화 ‘말모이’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3.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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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처럼 아쉬울 것 없을 듯한, 주변에 널리고 널린 ‘말’에 이런 애절한 사연이 있었다니… 하는 생각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층 등 후배 세대들이 역사를 (제대로) 안 배워 이런 주제를 되게 신기하게, 또는 뜻밖의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가슴 답답하다.

여러 보도에서 ‘말모이는 사전의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마음 졸인다. 영화 ‘말모이’에 한편 기쁘고, 또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한글을 문자로 쓰는 한국어의 주인인 우리 언중(言衆)들이 의외로 우리말 한국어에 어둡지 않나 하는 점을 저어하는 것이다. 기쁜 점은 우리말을 주제로 하는 본격적인 영화가 (처음) 나왔고, 젊은 세대들까지도 이 영화에 상당히 공감하는 모양새 때문이다. 흥행도 꽤 잘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 ‘조선말 큰 사전’ 완성(1957년 10월 9일) 기념사진. 아랫줄 오른쪽부터 한종수 류제한 정인승 정인서 권승욱 이강로, 뒷줄 맨 왼쪽 정재도, 맨 오른쪽 김민수 선생, 그리고 사무직원들.

말은 우리의 넋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이 말을 지키는 뜻이 겨레의 순정(純正)을 보전하는 것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이 뜻의 숭고함을 꺾지 못한다는 장중한 장면에 하릴없이 심쿵했다. 유해진 윤계상 등 좋은 배우들의 역량 또한 그 뜻 밝히는 횃불이었다.

일제의 쇠사슬에 묶인 채 우리말 사전을 만든 선구자들의 나라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귀한 뜻을 들어보이고자 했다면 그 뜻을 표현하는 이름도 정확해야 한다. 정명(正名)의 뜻이다.

우선 지적한다. ‘말모이’는 ‘사전’이 아니다, 사전의 우리말 일반명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말을 모아 갈래를 짓고, 규칙에 따라 뜻을 새긴 것이 사전이다.

몇 해 전, ‘아라는 바다의 순수한 우리말’이란 밑도 끝도 없는 인터넷 괴담에 ‘아라’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필자 등 관계자들의 거듭된 지적에 차츰 그 유행은 잦아들었지만 지금도 ‘아라온’이니 ‘아라뱃길’이니 ‘아라카페’니 하는 이름으로 곳곳에 그 미운 흔적이 남아있다.

말모이는 한자어 ‘어휘(語彙)’의 뜻이다. 말(語) 무리(彙) 즉 말을 모았다는 말무더기다. 요즘 자주 듣는 말뭉치(corpus 코퍼스)라는 언어학 또는 IT 분야 용어도 함께 생각해볼만하다. 어감(語感) 차이는 있지만, 영어공부에서 자주 썼던 보캐뷸러리(vocabulary)의 뜻으로 알면 된다. 영어 단어를 많이 알아야, 어휘가 많아야(커야) 영어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1911년경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이 우리말로 된 사전을 처음으로 펴내고자 시도하다 포기한다. 이 때 그 사전의 제목을 ‘말모이’라고 했다. 어휘라는 뜻의 일반명사를 고유명사(사전의 브랜드)로 명명(命名)한 것이다. 어휘(말모이)와 사전(辭典) 둘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이 영화와 관련해 ‘말모이=사전’이란 핀트 좀 어긋난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리라.

조미료의 상표(商標 브랜드)였던 미원이 조미료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쓰였던 현상과 비교될 수 있겠다. 물론 사전(事典)과 사전(辭典) 사이의 차이점에도 관심 가져야 한다. 자칫 이대로 지나치면, ‘아라 바다’ 사태처럼 다음 세대들이 “사전의 순수한 우리말이 말모이란다”라고 할 수도 있다. 국어당국인 국립국어원은 이런 (좋은) 상황을 맞아 ‘사전’의 순수한 우리말 단어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 전에는, 사전은 사전이다.

이 ‘주시경 말모이’의 작업과 정신을 계승한 것이 우리 문화의 금자탑 중 하나이자 이 영화의 큰 기치(旗幟)인 ‘조선말 큰 사전’이다. 출간은 해방 이후였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일제치하였다. 모진 도적떼에 ‘문화의 창칼’로 벋선 것이다. 문화겨레의 자격이고 긍지일 터다.

이 사전의 ‘머리말’과 ‘편찬의 경과’를 읽고 느낌을 써오라는 숙제를 늘 냈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뜻이고 스토리인, 이 글 관련 레포트에 학생들 심적 부담이 컸다고들 한다. 꼰대(교수)라고 했다더라. 이제 영화 보니 ‘선구적 꼰대’였지 않았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기념사진 중 막내인 한글학자 고 정재도 선생을 인터뷰했던 청년기자 때 기억과 영화장면이 겹쳐 마음을 스치자 목젖이 뜨거웠다. 아,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존엄한 선각자들이여! 인간의 길과 좌우(左右)의 하찮음을 헷갈려 헤매는 굴욕의 겨레를 매만져 고치소서. 매 들어서라도.

▲ 말모이 원고.

토막새김

오늘 다시 ‘꼰대’된 까닭

겨레의 넋과 마음 담은 우리말, 그 우리말을 실어 보존하는 것이 ‘조선말 큰 사전’임을 편집자들은 또박또박 적었다. 지금 읽어도 설레는, 가슴 뭉클한 글이다. 다시 오늘 꼰대가 되기로 작정한 까닭이다. 어진 여러분들께도 이 숙제를 드리겠다.

해방 이태 후인 1947년 출판된 을유출판사의 <조선말 큰 사전>의 ‘머리말’과 ‘편찬의 경과’에는 해방 후 ‘하늘의 도움’으로 이 사전의 원고를 가까스로 찾은 감회(感懷)가 점점이 눈물자국으로 찍혔더라. 몇 대목 인용한다.

“동지 두 분은 원통히도 옥중(獄中)의 고혼(孤魂)으로 사라지고, 마지막 공판(公判)을 받은 사람은 열 두 사람이요, 끝까지 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섯 사람은 그 실낱같은 목숨이 바람 앞의 들불 같이 바드러워 오늘 꺼질까? 내일… 하던 차에 반갑다, 해방을 외치는 종소리가…”

“원고 상자를 여는 손은 떨리었으며, 원고를 손에 든 이의 눈에는 더운 눈물이 어리었다.”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表象)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제 말의 사전을 가지지 못한 것은 문화민족의 커다란 수치일 뿐 아니라, 민족 자체의 문화 향상을 꾀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아, 이 수치를 씻고자…”

통곡(痛哭)을 글로 옮기면서도, 학자의 기품과 긴장을 한 치도 놓지 않은 자세와 문장의 절도(節度)가 또한 가슴을 쳤다. 곤궁하지만 기개(氣槪) 하나로 하늘을 찔렀던 ‘남산골 딸깍발이’ 선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래 전의 감동, 지금도 그러하다.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은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정책에 따라 한글학자들을 투옥한 사건이다. 검거된 33명 중 16명이 기소돼 1945년의 재판에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왜(倭) 법정은 결정문에서 ‘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임으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이라고 했다. 죄악이란 것이다. 이것이 또한 역사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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