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육체를 혐오한 적이 있는가

철학여행까페[26]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3.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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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플로티노스가 안치된 석관묘, 바티칸 소장


가끔 자신이 걸치고 있는 육체에 대해 혐오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도대체 내가 걸치고 있는 이 껍데기가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신플라톤주의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번에 소개할 플로티노스(AD205~270년)는 자신이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혐오한 철학자였다.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235~305년)는 스승에 관한 전기에서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자 플로티노스

“우리 시대에 살았던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 같다. 이런 기분 때문에 그는 자기의 출신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해서도, 조국에 대해서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포르피리오스의 증언대로라면 플로티노스는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인종인지 모른다. 포르피리오스보다 100년 뒤의 사람인 에우나피오스는 플로티노스가 이집트 리코폴리스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플로티노스가 이집트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은 그의 로마식 이름이나 그가 이집트의 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직접 가르침을 받은 포르피리오스도 몰랐던 사실을 100년 뒤의 사람이 주장했다는 점에서도 쉽게 믿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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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두상, 오스티아 박물관
플로티노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에게 생일이란 심히 유감스러운 날이기에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혼이 육체로 들어 온 날이기 때문이다. 생일날 어쩌면 플로티노스는 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육체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생각을 가졌던 플로티노스도 한때 육체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본인 이야기로는 8살 때까지 유모의 젖을 먹었다고 한다. 다 큰 애가 하도 젖을 달라고 하자 유모는 가슴을 풀어 젖을 주면서 ‘정말 못 말리는 아이’라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그는 부끄러워 젖을 끊었다고 한다.

아무튼 플로티노스는 자신의 몸을 자기가 걸치고 다니는 옷 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조각상이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제자 아메리오스가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플로티노스는 이렇게 거절을 했다고 한다.

“자연이 우리들 주위에 얽어 놓은 이 껍데기를 끌고 다니는 것만으로 힘든데 그것을 그려 오래 보존하려는 까닭을 모르겠네. 그것이 뭐 그리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후세에 남기려고 그러나.”

옷보다 못한 육체

플로티노스가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제자는 스승의 모습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메리오스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인 친구 카르테리오스를 몰래 강의에 데리고 가 플로티노스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영혼과 육체를 나누고, 육체와 감각에 대한 경멸은 원래 플라톤에서 유래하지만 그에게서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가 이러한 철학적 경향을 지니게 된 것은 스승 암모니오스 사카스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젊었을 때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적 위기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철학자 암모니오스 사카스(약 175~242)를 소개해 주었다. 그의 강의를 듣고 온 플로티누스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 분이야말로 바로 내가 찾던 분 일세.”

그는 암모니오스의 제자로 11년 동안 살았다. 암모니오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시조라 일컫지만 그는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플로티노스는 스승을 떠나 젊은 황제 고르디아누스 원정군에 가담하여 동방으로 가서 페르시아나 인도의 철학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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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갈리에누스 두상, 베를린 국립박물관
그러나 그의 동방원정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르디아누스 황제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전투에 패배하고 부하들에게 살해된 것이었다. 플로티노스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안티오키아로 도망쳤다가 로마로 건너갔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마흔을 넘긴 나이라고 한다.

그는 로마로 돌아와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가 로마로 돌아 와 66세로 죽을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던 시기는 로마제국의 시기 중 가장 불안정한 시기였다. 약 25년 동안에 8명의 황제가 제 명에 죽지 못하고 차례차례 바뀌는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혼란하고 타락한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철학은 사람들에게서 인기가 높았다. 원로원 의원부터, 젊은 남녀나 부녀자, 심지어 황제 부부까지 그의 철학을 들으러 올 정도였다. 특히 황제 갈리에누스와 그의 황후 살로니나는 그를 매우 존경했다.

황제 부부는 플로티노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플로티노스는 황제에게 캄파니아에 플라톤의 법대로 살아 갈 수 있는 플라토노폴리스를 건설해 달라고 부탁했다. 황제 갈리에누스와 황후 살로니나는 그러한 제안에 찬성했지만, 플로티노스를 시기하던 궁정 신하들의 반대로 그러한 꿈을 실현되지 못했다.

플로티노스는 50세가 될 때까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동문수학했던 헤렌니오스와 오리게네스와 함께 스승 암모니오스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절대로 글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글을 쓰게 된 것은헤렌니오스와 오리게네스가 그러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15년 동안에 54권의 책을 썼다. 이 책들은 그의 제자인 포르피리오스가 여섯 그룹으로 분류하여 ‘엔네아데스’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했다. 엔네아데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각 그룹의 책이 아홉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엔네아는 그리스어로 아홉을 뜻한다.

엔네아데스에서 플로티노스는 절대 선이자 충만한 존재로서 일자(hen)를 주장한다. 이 일자로부터 모든 존재뿐만 아니라 모든 아름다움도 도출된다. 어떠한 존재자도 이 일자와 결합되어 있다. 마치 빛이 태양이라는 존재와의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빛은 태양과 뗄래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빛을 태양에서 분리할 수 없다. 빛이란 항상 태양의 편에 머무른다. 이와 유사하게 존재도 그 근원인 일자에서 떨어질 수가 없다.

태양이 빛을 내뿜듯, 이 일자는 스스로 충만함에 의해 유출된다. 유출되는 단계에서 일자에 가까운 것은 존재적으로 높은 상태이며, 먼 것은 존재적으로 낮은 상태이다. 유출에 의해 가장 먼저 정신이 생겨난다. 정신은 최고의 존재자이다. 이에 반해 존재적으로 가장 낮은 단계는 비존재인 물질계이다."

이렇게 플로티노스의 이론대로라면, 가장 고상한 정신을 반영하는 우리의 영혼이 가장 낮은 단계인 물질계와 결합되어 있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끔 육체로부터 탈피해 무아경 속에서 정신의 세계만을 추구하곤 했다. 포르피리오스는 플로티노스가 4번씩이나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신과 합일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정신의 세계를 추구

그러나 그가 경멸했고, 또한 탈피하고자 했던 육체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육체는 그를 괴롭혔다. 말년에 플로티노스는 손과 발이 곪아 터져 갈 정도로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다. 물론 그는 육체를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먹는 것도 줄이고, 그렇게 해서 병세는 더 악화되어갔다. 그는 나이 일흔 여섯에 세상을 떴다. 그의 임종을 보러 온 제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신성한 것을 우주 안에 있는 신성한 것으로 끌어 올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노라.”

그렇게 말을 하고 그가 숨을 거두자 그때 그의 침대 아래에서 뱀 한 마리가 나와 벽에 난 구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포르피리오스가 전한 이 마지막 임종이야기는 플로티노스를 신비롭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플로티노스의 철학은 영혼은 영원하고 육체는 곧 소멸할 것으로 가르쳐 온 중세 철학의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말 몇 마디만 바꾸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니까.

오늘 날로 볼 때 플로티노스의 육체에 대한 경멸은 과한 감이 있다. 그러나 머리 속은 텅 빈 채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사는 우리 또한 너무한 감이 있지 않은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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