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동업자들

고춘식 연재 칼럼[8]_어둠을 파다, 꿈을 캐다 고춘식l승인2008.03.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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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화) 자 동아일보의 A14면을 보고 참으로 ‘동아’답다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 학력 키운 중 교장 인사 우대
- 서울지역 영재교육원 합격자 분석해 보니 신용산초등학교 31명 최다
- 한국말 NO! 영어 몰입 수학 교육(사진과 설명)
- ‘떠들지 마라’ 유치원생 입 테이프로···

등의 기사로 채웠는데 놀랍게도 그 기사 아래 전단으로 어느 사교육업자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특목고·자사고·국제중 입시 전략 설명회’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나 있었다. 그 ‘입시 전략 설명회’는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에서 이어진다고 했다.

아,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도 되는가. A14면은 이 광고를 더욱 빛내기 위한 기사들로 채운 것이요, 학부모들을 위협하는 기사들로 배치한 게 틀림없었다. ‘동아일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신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한참 지나치다 싶었다. 특히 ‘서울지역 영재교육원 합격자 분석’ 기사는 합격자 수가 많은 21개의 초등학교를 1위부터 순위대로 소재하는 구의 이름과 함께, 공사립 구분 · 합격자 수 · 합격자 비율까지 아주 친절하게 낱낱이 밝혀 놓았다.

거대 언론이랍시고 한다는 짓이 이 수준이다. 중학교도 모자라 초등학교까지 줄을 세우고, 이제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입시 준비를 시킬 생각인가 보다. 이런 기사 내용에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뻔히 알면서, 학부모들의 욕망과 불안을 한껏 부추겨 놓았다. 사교육 장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충분히 불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부모들의 두 눈을 경쟁으로 번득이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교육업자가 이런다면 그 나름의 생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건 소위 메이저 신문이라는 게 이런 행태를 보여주니 기가 막힌다는 말이다. 어찌 신문사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사교육을 부추기는 일에 앞장설 수 있으며, 그 더러운 탐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지난번에 실시한 중학교 1학년 진단 평가는 그 결과를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16개 교육청 중 9곳은 학교 서열화를 우려해 학교 성적을 공개하지 않았고, 경기도와 강원도는 학교 별로 채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 점수, 학교와 지역 점수, 석차 백분율 등을 모두 공개했다. 언론들은 무슨 크나큰 발견이나 한 듯이 강남북의 학력 격차를 대서특필했다.

서울시 교육청에 묻는다. 서울시 교육청은 정말 강남북의 학력 차이를 몰랐는가? 그것을 몰라서 지금껏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인가? 서울시 교육청은 ‘거 봐라’ 하는 식인데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과연 누구를, 무엇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처럼 낱낱이 공개를 했는가. 교원 단체나 평준화 정책인가. 아니면 좌파 정권의 교육 정책인가. 그게 아니면 정말 감격스럽게도, 스스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서울 교육청이 속수무책이었음을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하기 위해서인가.

일제고사 결과를 보고 서울시 교육청은 심각한 학력 격차를 해소한다면서, 방과후 학교 수업 강화, 학력을 끌어올린 중학교 교장에 대한 인사 혜택, 우수 교사 우선 배치 등 예산 및 장학 지원 사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력 격차에 대한 분노가 쌓인 서울의 학부모들이 과연 이 계획에 얼마나 기대를 걸겠는가.

그 중 학력을 키운 교장에게 인사상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에는 말문이 막힌다. ‘교육’을 잘한 교장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성적’을 올린 교장이라니··· 서울의 교장 선생님들은 기본적인 자존심도 없다고 보는가. 도대체 교장 선생님들에게 무얼 원하는가.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잡아놓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경쟁적으로 좋은(?) 학원을 소개시켜 주어 더 많은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라는 것인가.

거대 언론도 그렇지만, 요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이명박 정권의 경쟁 교육을 가장 앞서서 외치고 실천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문득문득 학원 업자와 동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그가 선택하는 정책들은 아이들의 건강권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고 철저히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쪽이다. 유권자인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하여 학력 증진만 되면 모든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갈 것처럼 속이다 보니, 아이들은 갈수록 소외되고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고춘식 한성여중 교사·본지 편집위원

고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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