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달보드레한 젖가슴의 어머니...”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어머니의 매화바다-계담설화(1)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4.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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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아침 매화 언덕에서 계담(契聃)은 바다를 봅니다. 물결치는 매화와 검푸른 바다, 매화바다의 상쾌한 기운은 천하의 바탕인 어머니 신(神)의 자애(慈愛)를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바다, 세상을 낳는 아픔과 기쁨의 바다, 아 모신(母神)이여...

▲ 아들은 29세에 침략의 심장을 쏘았다. 어머니는 ‘당당히 죽으라’고 했다. 겨레의 어머니(母), 큰 바다(海)였다. 안중근(왼쪽)장군과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고천암(鼓天庵)의 글자 만지는 대장장이 계담은 매화의 향훈(香薰)에서 어머니를 느낍니다. 나의 다른 몸이며 마음인 어머니를 떠올린 것이지요. 아, 그 달보드레한 젖가슴의 어머니...

나를 위해, 사람의 아들과 딸을 향해 빌어주는 어머니 비손의 청결함과 헌신(獻身)은 한 그릇 정화수(井華水)와 함께 문득 그를 품어낸 우주를 덮습니다. 모래알 인간들의 숭고한 뒷배지요.

모루에 벌겋게 단 쇠를 얹어 망치질을 합니다. 하늘을, 섭리(攝理)를 우러러 몸 낮춰 무릎 꿇은 여자의 모습을 빚어냅니다. 女(여)의 첫 글자가 되는 신령스런 그림이지요.

이젠 그 가슴 양쪽에 젖꼭지를 붙입니다. 女 글자가 점 2개를 얻어 세상을 먹이는 어머니의 상징 母(모) 글자로 변신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뜻, 모성(母性)의 등장이군요. 조물주의 대리인이 지닐 이름을 동아시아지중해 문명의 새벽이 발명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날마다’라는 뜻 매일(每日)의 每, 어머니(여자)가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래 드나든 대장간 손님들의 훈수(訓手)를 따라 계담이 빚어 본 글자일까요? 하루 삶을 새로 마련하는 아침이면 곱게 손질한 머리 쪽이 풀리지 않게 늘(매양) 비녀를 찌르지요.

여(女) 모(母) 매(每), 인류의 가장 신성한 존재인 어머니와 그 뜻을 동아지중해 사람들이 그림으로, 뜻으로, 뜻글자로 흠모해온 내력(來歷)입니다.

‘어머니’의 그 뜻은 대지(大地)이면서 바다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여러 신화와 설화가 대지에 또 바다에 어머니 이름의 신(神)을 세우는 까닭입니다. 프랑스어 ‘라 메르’처럼 각 지역 언어들의 상당수 바다 명칭이 여성형으로 매겨지는 것도 비슷한 뜻이겠습니다.

날마다 물결치는 바다에 해(海)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일까요? 바다의 뜻 물 수(水)를 每에 붙여 바다를 어떻게 부를까 하는 궁리를 마무리합니다. 氵(수)는 水를 다른 글자에 쉽게 붙일 수 있도록 ‘부속품’으로 디자인한 글자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떼가 바다 같다는 생각에 바다 양(洋)이란 글자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귀한 동물인 양(羊)들이 물(氵)을 만나 바다의 뜻으로 태어난 장면입니다. 해양(海洋)의 洋이지요.

계담은 바다 같던 매화언덕의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 꽃, 겨우내 독한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깨끔하게 피어납니다. 나무(木 목)를 每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 꽃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 이름을 불러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매화(梅)의 품성을 문명의 무대에 올린 것이지요, 이름을 불러 ‘나의 꽃’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생각의 틀인 언어(言語)와 그것을 짊어지는 글자(契字)의 바탕입니다.

이 글자들은 제 역할 말고도 마법사의 빗자루처럼 마술도 부립니다. 때로 마녀(魔女)의 조수가 되기도 하고, 손오공의 장난에 쓰이기도 하지요.

그 첫 모습과 뜻을 잊거나 잃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든 그 글자, 늘 매만져 바르게 펴는 고천암의 대장간은 그래서 있습니다.

▲ 갑골문의 여자 女, 어머니 母(故 진태하 선생 書)와 그 모양이 비녀를 꽂은 매양 매(每)의 갑골문.

토막새김

어머니는 이등박문을 쏜 안중근에게 ‘죽으라’고 했다

109년 전 순국(殉國)한 안중근 장군 얘기를 썼더니 ‘왜 의사 아니고 장군이냐?’는 질문 있었다. 이름은 본질을 송곳처럼 가리켜야 한다. 정의로운 지사(志士)라는 뜻 ‘의사’는 두루뭉술하다. 젊은이 중에는 무슨 병 치료하는 의사냐 궁금해 하는 이도 있다는데, 실화란다.

평화주의자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군 장군인 그는 침략 일본의 거물 책략가 이등박문을 총살한다. 세계를 놀라게 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그 군인은 당당히 적군에 체포돼 뜻을 밝힌다. 그리고 죽는다. 그 삶과 죽음, 늘 우리에게 매화로 떠오른다.

언젠가 ‘매화바다’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면서 매화와 바다, 그 의미의 교차를 생각했다. 바다는 어머니다. ‘겨레를, 후손을 위해 떳떳하게 죽으라’ 한 그 어머니 조마리아의 바다를 생각한다. 안중근 장군은 29세에 거사(擧事)하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를 쓰던 중 사형됐다.

‘승리’와 정준영 같은 인간상까지 빚어낸 막장 우리 사회, 지금 몇 살일까? 우리 어머니들은 어떤 바다일까?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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