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속에서 얻는 깨달음

내 인생의 첫 수업[40] 김혜애l승인2008.04.07 10:5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살아왔던 공간과 전혀 다른 곳에서의 생활 경험은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인생 수업이다.

지난 2003년, 환경운동 12년만에 ‘녹색휴식년’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덕분에 1년이라는 시간을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함께 처음 가보는 필리핀에서 보냈다.

필리핀은 정말 ‘부족함’이 많은 나라였다.(아마도 내가 부잣집 사람들이 아닌, 서민 동네에 살아서일거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끼는 부족함은 바로 ‘물’ 문제. 내가 지냈던 당시 ‘아시아센터’에는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먹는 물은 생수를 배달시켜 사먹었고, 다른 용수도 물탱크에 채워주는 물을 사서 썼다.

12년만의 녹색휴식년

물탱크를 한번 채우면 7명의 식구가 이틀 정도를 쓰는데, 그 물값이 한달에 8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곳 물가에 비하면 더욱 엄청난 돈이었으니 물을 ‘물쓰듯’ 쓰던 한국에서의 습관은 누가 잔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고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돈이 있더라도 물배달을 시키면 하루를 넘겨 오는 게 자연스러운 그들의 느긋함 덕분에 골탕을 먹기가 일쑤다. 온몸에 비누 잔뜩 칠한 상태에서 당하는가 하면, 쌀을 씻지 못해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러다보니 성질 급하고 청결한(?) 한국 사람들은 처음엔 답답해 미칠 지경에 이른다.

필리핀 일반 가정집의 목욕탕엔 필수품이 두 가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볼 수 있었던 큰 플라스틱 양동이와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바가지이다. 이건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다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도 툭하면 단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흐르는 물에 양치, 세수, 샤워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컵, 세수대야, 바가지를 이용하는데 언제 물이 끊길지 모르니 양동이엔 늘 물을 가득 받아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세수한 물이나 빨래한 물은 절대로 그냥 버리지 않는다. 변기에 깨끗한 물을 버리는 일은 없기 때문에다.

게다가 내가 쓰던 방 목욕탕은 변기가 고장이 나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고치지 않았다. 처음엔 그게 그렇게 불편하더니 조금 지나니 화장실에 항상 배어있는 적당한 냄새(사용한 물이 항상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에도 익숙해졌다.

필리핀의 물사정

여하간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씻는 부지런함’을 버리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다 시민운동가들이라 절약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데에 그리 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덕분에 진짜 환경운동가가 되겠다고 즐거운 불평들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우리 딸에겐 깨달음이 컸던 것 같다. 반찬 한가지로 식사를 하는 그들을 보며 평소 안 먹던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고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를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눈도 깊어지고.

조금 불편한 삶의 선물

평소에 내가 환경강의를 할 때면 늘 강조하던 말이 있다. “조금은 불편하고 지저분한 삶의 방식이 환경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도 내 자신의 삶을 그렇게 일치시키는 게 쉽지 않아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 돌아가면 잘난척할 일이 생겼다 생각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필리핀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작지만 소중한 인생의 깨달음을 주었다.

‘부족함’과 ‘불편함’은 얼마든지 행복의 조건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김혜애 녹색연합 녹색교육센터 소장

김혜애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애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