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어따가 터삼?’ 길거리는 재떨이가 아님!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산불의 언어와 대(對)정부 건의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4.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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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해태 상(像)은 불 즉 화기(火氣)를 잡으라는 뜻이다. 상상의 동물 해태가 원래 그 역할의 상징이 아님에도, 우리 역사는 그에게 그런 임무도 부여했다. 바다 해(海) 발음이 불 끄는 수호신을 상상하게 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한자로는 獬豸다. 豸는 ‘치’로도 읽는다.

큰 불, 인명(人命) 재산과 함께 산하(山河)의 생명력을 망가뜨린다. 이재민(罹災民)의 아픔은 우리 마음과 둘일 수 없다. 꿋꿋하게 털고 일어나시기를 기원한다.

▲ 민화(民畵)에 그려진 해태. 원래 법(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로 우리 전통에서는 ‘소방수’역할도 겸한다.

TV에서 불의 여러 이름들이 잇따라 들려왔다. ‘주불이 잡히지 않고 번진다’고 했다. 의아했지만, 곧 ‘아하 현장(에서 쓰는) 언어로구나’하는 감이 잡혔다. 주된(main) 불 주불(主-)이겠지, 한국어에서 한자가 갖는 자격과 역할을 살피게 한다. 산불(山-)도 메(산)에 난 불 아닌가.

어느 정도 진화는 됐는데 잔불(殘-)이 남아 걱정이란다. 다시 큰 불로 번질 수 있어서다. ‘꺼져가는(殘) 불’이다. 이 경우는 뒷불과 비슷하게 쓰이는 듯 했다.

불붙은 솔방울 등이 날아가 순식간에 멀리 불을 옮기는 것을 비화라고 했다. ‘날아가는(飛) 불’이다. 도깨비불이라고도 한다. 이 경우는 비불(飛-)이라 하지 않고 비화(飛火)로 불렀다.

꺼진 불은 사화(死火)다. 골짝 골짝을 뱀처럼 휘감으며 연신 번지는 불은 ‘뱀불’이라고 한다. 이를 한자어로 사화(蛇火)라 하지 않는 것은 같은 발음 死火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은 꽃불, 화화(花火)다. 숯덩이나 장작에 불이 핀 것은 잉걸 또는 불잉걸이다. 이런 언어 중 상당수는 사전에 실리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토속어나 현장의 언어에 무관심한 모양이다. 기억 속의 아름답고 쓸모 많은 말들이 시나브로 잊혀 사그라지는 것이다.

불을 가리키는 말이 많은 것처럼, 화재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일어난다. 무서운 불을 막기 위해 산마다 해태 상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이 나지 않도록 미리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이런 이미지는 어떨까. 필자의 제안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는 이 사무실 게시판에 붙은 작은 스케치가 재미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들고 왔다. 디자인 직원에게 부탁해 스티커용(用)으로 가공하니 특이한 금연 또는 불조심 그림이 됐다.

금연을 위해 TV나 담배케이스 광고에 공포감을 주는 내용을 넣기도 하는데, 이런 위트 있는 그림은 그 효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주위 사람들이 기발하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눠주기도 했다. 저작권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콘텐츠임을 밝혀둔다.

해태 상이나 이 스티커 그림을 마음에 떠올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당수 운전자들이 자신의 운전습관을 조금만 바꾸면 산불 등 크고 작은 화재는 물론 길거리의 청결과 시민의식까지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상황을 보자.

차창 밖으로 담배 든 손을 내밀고 재를 턴다. 그러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튕기듯이 불붙어있는 부분을 털어낸다. 또는 손가락으로 불붙은 부분을 눌러 뗀다. 그 다음은 슬그머니 담배꽁초를 놓아버린다. 운전하며 담배 피우는 이나 동승자 중 상당수 또는 대부분의 모습이다.

꽁초가 수없이 길바닥에 나뒹구는 끔찍한 장면, 익명(匿名)의 뒤에서 일부 시민이 벌이는 행실이다. 연기는 공기오염으로, 재는 (미세)먼지로, 모두에게 피해를 줄 터다. 앞차의 불붙은 담배 조각이나 꽁초가 뒤차에 떨어지거나 차 안으로 빨려 들어가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산불의 상당수가 이런 행태 때문임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담배를 끌 때 특히 연기와 냄새가 독해 이를 피하려고 실내 재떨이 대신 창밖으로 쉬 해결(?)하는 버릇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남의 차 얻어 타는 동승자의 경우, 차주에 대한 ‘예의’가 또한 이런 풍경을 부채질한다.

또 하나의 제안, 담배 든 손을 차창 밖으로 내미는 행위는 이제 ‘위반’으로 규정돼야 한다. 재만 턴다 해도 이는 어엿한 불씨다. 더구나 꽁초는 산불 등에 치명적이다. 차량마다 달린 블랙박스가 매 순간 거리를 촬영하니 적발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

차가 불의 씨앗을 내뿜고 다니는 운전 습성을 고치는 일, 가성비 높은 정책 투자다.

토막새김

“이런 회록을 당하신 터에...”

회록(回祿)이란 말, 사어(死語)와 다름없는 망각 속의 언어다. 그리스 신화의 ‘불 도둑’ 프로메테우스에겐 익숙한 우리 사회가 ‘동양의 프로메테우스’에는 어둡다. 중국 전설에서 ‘불의 신’으로 불리는 오회(吳回)와 육종(陸終), 回와 陸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어쩌다 육(陸)이 같은 발음의 록(祿)자로 바뀌어 ‘회록’으로 쓰이게 됐다. 陸과 祿의 중국어 발음은 [루]다. 전설시대 삼황오제 중 전욱(顓頊)의 손자 형제로 불 즉 화재를 잘 다스렸다. 이런 인연으로 한자문화권에서 回祿은 불이 주는 재앙을 (비유적으로) 가리키게 됐다.

‘이런 회록을 당하신 터에...’(이인직 ‘모란봉’)처럼 신소설에 쓰였다. 전라감사가 법성진에서 난 불로 가옥과 선박 등이 타버렸다고 보고하자 임금이 하교하기를 ‘회록의 재앙이 400여 호에 이르렀고...’라는 기록(1807년, 순조실록)도 있다.

어떤 말은 이렇게 스러지나보다. 담배도 사라질까? 우선 담배가 화마(火魔)의 씨앗 노릇하는 것은 당장 없애야 옳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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