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 발음을 어떻게 알지?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해태와 해치-한자발음의 비밀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5.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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獬豸는 뭐라고 읽지? 해태, 해치? 지난번 글을 본 한 독자의 지적사항이다. 치(豸)가 해태다, 즉 토박이말 해태의 한자(어)가 치 아니냐 하는 얘기다. 비슷한, 다른 지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는 분들은 그 글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이런 답을 드린다. 이 답은 또 한국어의 요소 중 하나인 한자어의 발음 이론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주제여서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다시 보자. 차창(車窓) 밖으로 불붙은 담배 든 손을 내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 담았던 ‘길거리는 재떨이가 아님!’이란 이전 글 제목의 들머리다.

▲ 獬豸를 해태로, 또는 해치로 읽는 이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계속된다. 그리 심각한 주제는 아닌데... 오래된 사진의 저 상(像)은 그 때 ‘해태’로 불렸을 것이다. (나무위키 사진)

<광화문 해태 상(像)은 불 즉 화기(火氣)를 잡으라는 뜻이다. 상상의 동물인 해태가... 한자로는 獬豸다. 豸는 ‘치’로도 읽는다...> 이에 따르면, 獬豸는 해태이고, 해치라고 할 수도 있다.

표준국어사전은 ‘해치(獬豸)가 해태(獬豸)의 원말(본딧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말은 아니지만, 두 말 사이에 다소간의 어감(語感) 또는 ‘계급’의 차이가 있다는 풀이다. 연세한국어사전 등 일부 사전은 해태에 한자를 병기(倂記)하지 않아 토박이말처럼 취급했다.

한자사전은 豸를 ‘벌레 치’, ‘해태 태’로 훈과 음을 설명한다. 豸보다는 덜 쓰이는 말이지만 廌라는 말도 있다. 豸와 같은 글자인데 ‘해태 치’, ‘해태 태’라고 훈과 음을 적었다. 둘 다 갑골문 시대에 나타난 역사 깊은 글자다.

벌레를 그린 豸나 廌라는 그림글자가 처음 생겼고, 이후 설화나 신화에서 만들어진 상상의 동물이 생기자 이 그림문자를 써서 獬豸 또는 獬廌라고 명명(命名)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갑골문 이래 30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말글의 변천(變遷), 우리 선조들도 다른 겨레들과 함께 모여 살던 황하(黃河) 유역에서 비롯된 문명의 한 켜다. 문자가 처음 생겨난 그 여명(黎明)에 비로소 인문학은 기지개를 켜는 것이니.

해태타이거즈. 해태제과로 우리에게 이 말이 익숙했던 이유는 우리 전통에서 이 말(발음)이 일반적이었던 까닭이겠다. 언젠가 서울시가 해태를 시의 상징물로 브랜드화(化)하는 과정에서 ‘해치’란 이름을 달면서 이런 주제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해치’라는 서울시의 브랜드 설명에 좀 과장이 있었을까? 치 또는 해치가 원말이고, 해태는 (대충 쓰는) 입말이거나 해치가 와전(訛傳·다르게 전해짐)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이유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따져보면, 해치도 무난하지만 해태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글자 자체가 발음기호다. 뜻글자인 한자는 그 발음을 어떻게 적을까? 해태 해치 문제의 해결책, 한자 발음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한자는 반절(反切)로 발음을 나타낸다. 두 글자의 음을 절반씩 딴다. 글자마다 이 반절의 값을 가진다. 격식 갖춘 한자사전에는 이 반절 표시가 있다. 그런데 해태 해치의 豸나 廌는 반적이 두 개다. 때나 경우에 따라 다른 음가(音價 소릿값)를 가졌던 것이다.

하나는 宅買切(택매절)이다. 앞의 ㅌ과 뒤의 ㅐ를 합쳐 ‘태’가 된다. ‘해태’다. 다른 하나는 池爾切(지이절)이다. ㅈ(ㅊ)과 ㅣ를 합쳐 ‘지(치)’가 된다. ‘해치’다. 해태 또는 해치가 원래 발음인데, 우리의 관습은 해태였다. 해치도 맞지만, 해태가 ‘더 일반적인’발음인 것이다.

한자의 발음법과 소리는 과거 수(隋 581-618)·당(唐 618-907) 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후 땅 너른 중국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자의 형(形 모양) 음(音) 의(義 뜻)가 크게 변했고,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했다.

중국과 우리의 한자 발음이 비슷한 듯 크게 다른 이유다. 즉 우리말 한자어의 발음은 수·당 때의 ‘중국어’ 발음인 것이다. 현대 중국의 음운학(音韻學)이 한국어의 한자어 연구에 관심이 큰 이유다. 스마트폰이나 녹음기가 없었던 저 때, 소리를 어떻게 ‘저장’했을까?

▲ 豸의 옛 글자, 한자의 시초는 그림이었다. (이락의 著 한자정해 삽화)

토막새김

“시적(詩的) 변용의 생활언어학”

“국수와 국시의 차이를 아세요?” 물론 웃자고 꺼낸 난센스 퀴즈다. 궁리 중인 상대방에게 질문자는 싱겁게 웃으며 말한다. “국수는 밀가루로,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지요.” 답도 싱겁다. ​

국시는 국수의 사투리다. 어감 정겹다. 강원 경남 전남 함경도 지역에서 쓰인다고 국어사전은 적고 있다. 밀가리도 사투리다. 재미있는 대비(對比)다. 사투리는 한국어를 차지고 풍성하게 한다. 우리 문화의 보배다. 해태와 해치의 차이도 딱 저 정도 아닐까?

이는 한자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훨씬 쉽게 이해될 주제다. ​

지금은, 정색하고 한자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한자어가 많다. 공부를 주업(主業)으로 삼는 이들이 ‘한자울렁증’을 겪는 까닭이다. 따로 공부 안 해도 한자어와 친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한자, 인간의 맛’이 매번 제시한 주제들을 꼼꼼히 톺아보면 저절로 한자어가 품은 속뜻과 그 말이 가리키는 의미를 짐작(斟酌)할 수 있게 된다. 술 따를 斟, 술 따를 酌의 짐작이란 말이 ‘어림잡아 헤아린다’는 뜻이 되는 이치를 짐작해 보는 것, 시적(詩的) 변용의 생활언어학이다.

하나(1) 배우면 열(10)을 깨치는 것이니.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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