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처럼, 한국어도 뜻으로 봐야”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레이와-계담설화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5.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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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깔은 하늘같기도 하고, 큰 집 지붕 같기도 합니다. 그 아래 반듯하게 앉은 사람은 하늘의 말씀을 경건하게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단호하게 그가 무엇인가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고깔이 입(口 구) 모양을 눌러놓은 것같이 보이기도 하네요.

고천암(鼓天庵)의 글자 대장간 모루 위에 놓인 이 부속품들을 대장장이 계담(契聃)은 오래 들여다봅니다. 이를 써서 좋다, 이쁘다는 뜻을 두루 보듬을 글자를 막 만든 참이네요. 令(영 또는 령)이란 글자의 짜임(구조)이면서 원래의 그림(象形 상형)입니다.

▲ 일본 새 국왕이 즉위하며 연호도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역사의 뜻을 늘 새겨온 아키히토 천황처럼 새 국왕도 ‘아름다운 평화’에 기여하기 바란다. (KBS 화면 갈무리)

대궐에 앉은 우두머리의 한 말씀은 ‘위엄을 품은 명령’이겠지요. 나중에 이 글자는 이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글자 만든 계담의 의도가 그것이었을까요? ‘하늘의 말씀’이니 의당 ‘아름다운 뜻’이었겠지요. 권력의 자기장(磁氣場)에 휘어져 뜻이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일까요?

‘좋다’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그린 令자가 우두머리, 명령, 규칙이라는 으스스한 뜻이 될 때까지 문자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3500년쯤 전, 동아시아지중해 여러 지역의 문명이 검붉은 새벽 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던 시기의 문화의 핵심은 문자(文字)였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문자라고 하여 문화(文華)라고도 하지요. ‘화려하다’는 뜻 華는 꽃을 그린 꽃 화(花)자의 원래 글자입니다.

꽃을 가리키는 글자 華가 (꽃처럼) 화려하다, 찬란하다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자주 쓰이면서 글자동네에서는 꽃을 나타낼 다른 글자를 찾아냅니다. 글자 대장장이들이 풀 초(艹)와 바뀔 화(化)를 붙여 꽃의 다른 글자 화(花)를 빚어낸 것입니다.

풀(식물)의 뜻을 지닌 글자 艹와, 華와 비슷한 소리이면서도 늘 변하는(피고 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글자 化가 만나 절묘한 꽃 글자 花가 만들어진 것은 문자(한자)의 형성과 작동의 근본원리를 설명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꽃이 華와 花의 두 글자로 나뉘어 문자의 수 즉 규모를 확대시킨 것처럼, 令과 같이 하나의 글자를 두 개 이상의 뜻으로 나눠 표현 성능을 강화하는 것도 문자의 작동원리 중 하나지요.

하나의 그림에서 생긴 글자가 지역적(공간적), 역사적(시간적) 공간 속에서 마법사의 주문(呪文)을 받은 것처럼 형태와 뜻이 분화되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입니다. 영부인(令夫人)은 대통령의 부인 즉 퍼스트레이디가 아니고 ‘당신의 아름다운 부인’을 존경하는 귀한 말이지요. 영애(令愛)는 ‘당신의 이쁜 딸’, 영식(令息)은 ‘당신의 좋은 아들’을 가리킵니다. 의례적(儀禮的)인 성격의 언어이기도 하지요.

어쩌다 독재자 대통령의 부인과 딸과 아들들이 영부인, 영애, 영식을 독점하는 시대를 맞습니다. ‘그 여인’말고는 영부인이란 말을 쓰면 안 되는, 휘(諱)의 언어, 기피의 단어가 되지요. 지금은 한자를 보기 어려워지면서 그 두 갈래 의미가 다 사그라지고 있긴 하지만요.

令은 나아가 방울 鈴, 나이 齡, 옷깃 領, 영리할 怜, 옥(玉) 소리 玲, 깃 翎 등 소리[령] 좋고 의미 있는 글자들의 바탕이 됩니다. 글자(그림)끼리의 이런 어울림(和 화)이 문자의 세계지요. 우주의 영원조차 품에 안을 수 있는 인류의 공덕인 것입니다. 큰 한국어의 바탕이지요.

▲ ‘이쁘다’와 ‘명령’이라는 다소 벋서는 두 뜻을 가진 글자 令의 갑골문과 금문. (이락의 著 ‘한자정해’삽화)

토막새김

영화(令和), 명령하는 평화인가?

일본 국왕이 바뀌며 시대를 표방하는 연호(年號)가 헤이세이(平成 평성)에서 ‘레이와’로 바뀌었다. 한자로 영화(令和)다. 일부에서는 ‘명령하는 평화냐?’며 그 의미를 비틀거나 저어하기도 한다. 아베 수상의 ‘정치’와 관련해 그 글자를 해석한 것일까?

어린 생각이다. 미워하고 싶은 의도, 즉 방향성을 바탕에 깐 글 새김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베의 정치에서 늘 읽히는 견강부회 아전인수를 되돌려 그들과 벋서는 모양새인가. 우리의 의연(毅然)한 국가이성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몰라서 그랬다면, 노력해서 알아야 한다.

과거 왜(倭)가 일본(日本)으로 새 틀을 짠 바탕에는 전쟁을 미워하는 도래인(渡來人)들의 지성이 있었다. 도래인은 6~7세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이들로 학문으로나 세력으로나 일본을 이끄는 중추(中樞)였다.

‘역사의 역습’ 저자인 문명철학자 김용운 교수의 설명이다.

쇼토쿠(聖德 성덕)태자와 함께 백제 출신 지식인들이 만든 첫 법률에 와(和)가 올랐다. 레이와의 고안자인 지한파 나카니시 교수는 이 글자가 ‘동아시아의 평화사상’이라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고대 노래모음인 만요슈(萬葉集 만엽집)의 ‘이른 봄 좋은(令) 달밤에, 공기는 맑고 바람은 온화(和)하다’는 시가에서 令과 和를 따서 붙였다고 했다. 일본노래 와카(和歌 화가)의 역사는 왕인박사가 지었다는 ‘나지와즈(難波津 난파진)의 노래’를 중요하게 기록한다.

역사 교과서는 대개 왕인을 백제의 학자로 기록하나, 마한(馬韓) 연구가인 임영진 교수(전남대)는 그가 마한(馬韓)계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고대사는 교과서 담벼락을 넘어서 살펴야할 대목이 여럿이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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