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공부하다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설명은 공인(公人)의 의무…공부 없이 어찌 설명을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5.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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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공부’다. 뜻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이 ‘공부’라는 말, 한국어의 그 두 음절(音節)은 왜, 어떻게 ‘공부’의 뜻을 갖게 됐을까?

“공부가 왜 공부냐고? 공부가 공부니까 공부지, 왜 공부겠어?”하며 윽박지를 사람도 없지는 않겠다. 독자 여러분 대개는 어진 답 아니리라 여기실 터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자. 우리는 막상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지? 우리(각자)가 아는 ‘공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인형으로 빚은 서당 모습. 회초리 대여섯 개, 맨 앞의 벼루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 앞엔 모래 담아 손가락으로 글자 연습하던 사판(沙板)이 있다. 지금 공부와는 어떤 차이가 있지? (국립민속박물관 사진)

말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는 ‘공부’를 모르는 것인가? 늘 만나는 이 낱말을 낯설게 뒤집어 보자는 것이다. 우리 지식의 실체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실감하는 기회도 되겠다. 설명을 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사전을 찾는 일이, 실은 공부(의 본디)다. 과외수업 죄다 쓸모없다.

설명(說明)은 다른 말로 그 뜻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 쉬운 말로 다른 이가 알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 즉 언어를 배우는 바탕이고 의의이다. 국어공부의 뜻이고, 모든 공부의 첫 계단이다. 첫 계단, 바탕을 딛지 않고는 2층으로 오를 수 없다. 월반(越班)이나 추월(追越)도 있긴 하지만 첫걸음부터 우직하게 튼실함만 같을 수 있겠는가?

우리 사전은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푼다. 배우고(學) 익히는(習) 것 즉 학습이 공부라는 것이다. 공부는 ‘학습’처럼 우리말 중의 한자어다. 工夫(공부)라는 한자가 그 뜻을 담고 있다.

중국의 工夫와 우리의 공부는 다르다. 한자어를 ‘중국어를 빌려 쓰는 말’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분께 드리는 당부다. 한자어는, 토박이말과도 같이 우리말글 한국어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중국어의 工夫는 쿵푸다. 태권도 같은 무예(武藝), 즉 주먹을 쓰는 권법(拳法)이다. 영어에서는 kungfu, 중국 발음기호인 한어병음(漢語拼音)으로는 gōngfu인 이 말의 문자(한자)가 工夫인 것이다. 권법 말고도 그들은 이 말로 ‘숙달된 기술’의 뜻을 가리키기도 한다.

언어는 상징 또는 비유이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 또는 공동체의 약속이기도 하다. 같은 말을 쓰는 여러 사람들이라는 뜻의 언중(言衆)이라는 낱말의 바탕이 되는 원리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는 공부를 ‘공부’의 뜻으로, 저들은 工夫를 권법 쿵푸로 쓰기로 약속한 것이다.

공부의 한자 工夫는 장인(匠人·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 ‘공’과 지아비 ‘부’를 합친 말이다. 이 뜻과 우리의 스터디(study) 뜻의 공부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이런 궁리가 동아시아의 글자인 한자의 원리를 푸는 문자학이다. 해답은, 관련성 ‘없음’ 또는 ‘적음’이다.

工夫의 원래 말은 功扶였다고 한다. 공훈(功勳)에서와 같이 잘 한 일이라는 功과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돕는다는 뜻 扶이니 이제야 우리 ‘공부’ 뜻과 관련성을 유추(類推)해볼 수 있겠다. 잘 하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스터디의 뜻으로 번진 것이겠다.

이 功扶를 간단한 工夫로 줄여 쓴 관행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工夫=功扶지만 이제는 (중국에서도) 원래 말 功扶는 거의 잊혀졌다. 현대 중국어의 간체자(簡體字)와 비슷한 원리다.

과두문(科斗文)은, 취미를 위해 서예반에 든다면 먼저 갑골문 금문과 함께 선생님께 듣게 되는 용어다. 옛 한자의 특징을 글씨에 활용하고자 배운다. 짐승 털 붓(筆 필) 이전에 나무 가지로 그림 그리듯 쓴 글자여서-위는 두텁고 아래는 얇은-독특한 모양 때문에 ‘올챙이글자’ 이름 붙었다. 원래 과두(蝌蚪·올챙이)에서 벌레 충(虫)을 뗀 것이다.

‘올챙이글자 科斗文’이라고도 배운다. 과학의 科와 부피 단위 斗가 어떻게 올챙이가 되는 지 설명이 없으면 문자 속 깜깜하다. ‘공부’에는 이런 걸 깨치는 자잘한 재미도 있다.

‘마음공부’까지, 성인(成人)되도록 공부 수없이 하면서도 정작 (말뜻을 포함한) ‘공부’가 뭔지 긴가민가하다면 우선 스스로의 공부의 본디를 자신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에 버금가는 큰 철학공부이지 않을까.

토막새김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切心做工夫)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지사로 일할 때 쓴 글 중에 나오는 얘기다. 공직자에게는 국민으로서의 여러 의무 이외에 ‘설명의 의무’가 하나 더 있다는 대목, 얼핏 지당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한 이들은 이 ‘설명’이 얼마나 무거운 뜻을 보듬고 있는지 절실히 안다.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설명은 가능하다.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납세자에게 세금 낸 이유를 납득(納得)시킬 수 있으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을 포함한, 진지한 여러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공직자 말고도 교직자 언론인 등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할 이들에게 다 해당되는 ‘의무’일 터다. 지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확하고 적확(的確)한 설명’은 촌철살인처럼 세상을 가르친다. 이 총리가 국회에서 보여준 다만 몇 장면에 국민들이 무릎을 치더니, 새삼 눈을 비비고 세상을 다시 보는 원리다.

그러고 보니 설명의 의무는 곧 공부의 의무일세. 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닭이 알 품고 고양이가 쥐 노리듯이/ 굶주린 자 밥 찾고 목마른 자 물 찾듯이/ 어린 아이가 어미 찾듯이>

(切心做工夫 如雞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절심주공부 여계포란 여묘포서 여기사식 여갈사수 여아억모)

임진왜란 때 의병장 승려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이 대목은 공부의 마음을 닭이 알 품듯 살뜰하게 보여준다. 국립기구인 한국고전번역원 손성필 선임연구원이 요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제시한 이 글, 참 아름답다.

간절히, 공부하는 이유를 찾자. 젊은 마음들아, 대학가고 출세해서 국정농단 심부름이 기껏 공부의 이유일 수는 없지 않느냐.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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