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전쟁을 예고하다
그가 지은 대표적인 책으로 전해오는 것이 <양화소록>이다. 손수 화초를 기르며 알게 된 꽃과 나무의 특성, 품종, 재배법을 정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원예서다. 이 책에서 그는 종자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히 강조한다. 그리고 향후의 ‘종자전쟁’을 예고했다. 예술을 넘어선 그의 실용정신은 수백년 후 실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이를 원조로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화훼론, 이중환은 <택리지>에 주택의 입지를, 그 외 산림경제나 임원 경제지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수목의 종류와 생태적인 특징, 식재의 위치, 등에 대해 연구가 진척되었다.
이런 옛 사람들의 고민을 잊어버린 현대로 돌아오면 아주 기막힌 일들이 펼쳐진다.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종자가 있다. 한 미군 식물채집가가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개회나무 종자 12개를 채집해 미국으로 돌아가 7개를 성공적으로 싹 틔웠다. 이후 이 털개회나무는 조경수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조경수로 수입됐다.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는 이 털개회나무의 우리나라 이름은 ‘수수꽃다리’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서는 당시 이 식물채집가가 붙인 이름인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상품명으로 알려져 있다. ‘미스김’은 당시 그를 도왔던 김 씨성을 가진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국외 유출된 우리 종자
이외에도 사례는 많다. 한라산과 지리산 특산물인 구상나무는 1904년에 유럽으로 반출돼 현재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고 있으며, 1980년대 말 전남 홍도에서 베리잉거가 채집해 간 비비추는 ‘잉거비비추’라는 이름으로 1993년 미국 비비추 협회에 신품종으로 등록됐다. 이외에도 하늘말나리, 털중나리 등 우리 토종을 교배해 얻은 나리들은 우리나라가 해마다 400여만 달러를 지불하고 수입하는 실정이다.
일제시대의 일본, 그리고 미국의 학자들은 수천종의 우리종자를 가져가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1985년과 1989년에는 미국 농무성 산하 국립수목원채취단이 한국 학자들의 안내를 받아가면서 한국산 식물을 대량으로 반출했는데, 설악산의 눈잣나무를 가져갈 때는 헬기까지 동원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반출한 능소화로 ‘모닝캄’을 만들어 지금도 세계에 비싼 값으로 팔고 있다.
농업의 열쇠
올해 1월 환경부는 제2의 미스김 라일락을 막기위해 기존의 528종에 320종을 더해 생물자원을 국외 반출 승인 대상 생물자원으로 추가 지정한다고 밝혔다. 매우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잭 클로펜버그 2세가 쓴 <농업생명공학의 정치경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전개된 이 문제를 역사적, 정치경제적 접근을 통해 고찰함으로써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테마는 바로 ‘씨앗, 또는 종자’(seed)이다. 종자는 농업생산과정의 처음이자 끝이기도 한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농민들에게는 생산수단이기도 하면서 생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농업의 열쇠, 여전히 씨앗이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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