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에 ‘영혼 보내기’

김소라 숭실대 초빙교수l승인2019.06.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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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 영화 「걸캅스」의 관객이 150만명을 돌파해 개봉 3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3년 전 기획되었음에도 영화는 마치 2019년의 한국사회를 예견이라도 한 듯 신종 약물, 클럽 내 성폭력, 불법촬영과 그것의 유포가 모두 연결된 상황을 보여준다.

▲ 영화 <걸캅스>의 한 장면.

클럽에서 약물을 이용해 여성의 의식을 잃게 만들고, 이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며,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고 유포하는 범죄가 만연한 상황, 그럼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모습은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 올해 초 이른바 ‘버닝썬 카르텔’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이처럼 현실을 환기하는 설정은 영화의 시의성을 높였고, 이로 인해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같은 관심의 일부는 진부할 것이라는 예단과 조롱, 그리고 포털사이트 영화 코너의 별점 테러로 나타났다. 여성 두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이 디지털 성폭력을 해결한다는 영화의 줄거리가 알려지고 예고편 영상이 공개되자, 보지 않아도 뻔한 작법과 내용이 예상된다며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화의 작품성을 깎아내리는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여성은 정의의 수호자로,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이거나 절대 악으로 그리면서 작위적인 구도를 반복하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영화 개봉 후에도 이같은 주장은 지속되었다. ‘나무위키’에서 들고 있는 영화의 문제점 중 하나는 남성 인물들을 무능력한 민폐 남편, 장소 불문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인간쓰레기, 이기적이고 사명감 없는 경찰 등으로만 묘사함으로써 남성을 비하하는 반면, 무능력한 여성 인물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진부함은 실제 현실이기도 하다. 경찰청이 2018년 9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17년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검거된 피의자는 모두 16,802명이었다. 이 가운데 남성이 16,375명으로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피해자 25,896명 가운데 여성은 21,512명으로 전체의 83%였다. 가해자의 대다수가 남성인 반면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인 것이다. 또한 승리와 정준영 등이 속해 있었던 단톡방에서의 대화와 불법촬영물 유포, 단톡방 보도 직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정준영 동영상’, 승리의 3년 전 카톡 내용이 죄라면 대한민국 남성들 모두 죄인이라는 버닝썬 이문호 대표의 말, 기자 단톡방에서 취재를 위해 확보한 불법촬영물이 공유된 사실 등은 디지털 성폭력이 한국 남성들 사이의 일상적인 놀이문화였음을 보여준다. ‘좋아요’ 숫자가 3만이 넘으면 48시간 후 불법촬영물 공개가 이루어진다는 영화 속 설정은 수많은 이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디지털 성폭력에 참여하는 현실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간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은 인식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수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혜화역 시위’를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성별에 따른 불법촬영 편파수사 의혹이었다. 누드 크로키 수업 중 남성 모델이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경찰은 피의자 긴급체포와 구속영장 청구, 포토라인을 통한 피의자 모습 공개, 주거지 압수수색, 불법촬영물의 유포와 2차 가해가 이루어진 워마드에 대한 조사를 포함해 유례없이 신속한 수사를 진행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서버가 해외에 있어 수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디지털 성폭력 사건의 접수 자체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경찰은, 남성이 피해자일 때 ‘정상적’ 수사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150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되었던 클럽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에 대한 수사는 최근 무혐의로 종결되었고, 승리의 구속영장도 기각되었다. 여성들의 비판이 여성의 몸을 교환하고 착취해서 지탱되는 산업뿐만 아니라 공권력 자체를 향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진부하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이에 비하면 클럽 내 성폭력과 불법촬영이 마약판매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여성 주인공이 경찰의 사명감과 존재 이유를 역설하자 태세를 전환하는 영화 속 경찰의 모습이야말로 진부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영상 파일이 든 USB를 들고 해외 도주를 시도하는 피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력이 동원되고, 도심에서 추격전을 벌인 끝에 조직을 일망타진하며, 동영상 유포를 막는 데에도 성공한다는 결말은 악인은 결국 댓가를 치른다는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서사의 작위성과 낮은 작품성을 공격한 남성들은 피해자의 구제와 가해자의 처벌이 비현실적인 판타지라는 데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때 영화 속에서나마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실현하고, 그같은 판타지의 현실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은 ‘걸’도 ‘캅스’도 아닌 여성들의 연대다.

1990년대 여성 형사 기동대에서 활약하다 결혼과 육아 이후 민원실 주무관으로 일하게 된 박미영(라미란), 과잉진압에 따른 징계로 민원실 주무관 보조로 들어온 조지혜(이성경), 카이스트 출신 전 국정원 요원이자 해커인 민원실 주무관 양장미(최수영)는 모두 ‘캅스’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몰래’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사사건건 이들을 감시하던 민원실장(염혜란)의 지원과 교통과의 협조하에 수사는 탄력을 받는다. 그리고 나이를 넘어선 영화 속 여성들의 연대를 뒷받침하는 것은 영화를 재관람하고, 영화관에 가지 못할 때도 표를 예매하는 ‘영혼 보내기’를 통해 지지를 표명하는 현실의 여성들이다.

이는 단순히 영화가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지지, 이 영화의 실패가 여성 서사의 축소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 속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실천은 디지털 성폭력을 다루면서도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성적 피해를 전시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 경찰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떨쳐 이들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함께하고자 하는 연대의 의지다.

그래서 영화의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정치 한가운데 있는 「걸캅스」의 손익분기점 돌파 소식이 반갑다. 영화가 만들어낸 균열이 여성들의 실제 연대 속에서 현실의 균열로 파급되기를 기대한다.

김소라 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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