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바다에서 소환된 장보고, 역사 무대에 서다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 향토학자 김정호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6.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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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은 본질의 깃발이다. 그 깃발 또는 상징은 문화의 책갈피일 터다. 우주에 널려있는 일(事 현상)과 물질(物) 즉 사물(事物) 중 ‘어떤 것’들을 골라서 갈래짓고, 제목 달고,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여러 쓸모를 궁리한다. 인간(인류)의 문화 활동이다.

문화는 ‘어떤 것’을 취하고 버리는가 하는 취사(取捨)의 선택에서 비롯한다. 집 안방, 담 바깥 고샅의 우리 주위 이모저모부터 살피기 시작해 동네의 뜻과 지역의 살림, 거기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문화 활동의 방법(론)은 ‘나’와 ‘우리’를 소외시키지 않는 새 연모다.

이제까지 우리는 교과서의 ‘정리된 내용’을 깃발 삼았다. 지금도 대개 그렇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를 능멸하려 만든 논리나 우리 역사의 못생긴 이념인 사대주의가 비틀어놓은 겨레 혼백(魂魄)의 기록이 한 점 의심과 반성 없이 ‘교과서’되어 시민들 마음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역사’다. 학계(學界)나 관계(官界) 등의 주류는 이를 애써 고칠 뜻이 없어 보인다. 그것도 ‘기득권’이라 여기니, 스스로 버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자기를 바보삼고 욕보이는 역사책을 교과서로 섬기며 공부한다. 깨어나는 시민들은 이제야 비로소 목마르다.

▲ 큰 공부는 역사를 바꾼다. 김정호 선생은 산하 골짝골짝, 섬과 나루마다 더께 되어 겹겹 쌓인 시간의 생각들을, 진돗개까지, 캐내서 언어로 앉혀두었다. 이렇게 글로 고정하지 않았으면 꽤 증발해버렸을 우리 마음의 시공간적 지평(地平)이다. 이제는 ‘진짜 역사’로 가야한다.

향토학자 학고(鶴皐) 김정호(金井昊·82) 선생은 평생의 성과로 이 새로운 방법론의 실제를 보여준다. 이는 한반도 해안 등 남서지역 역사를 탐구해온 공주대 이해준 명예교수의 향토사(학)의 뜻과 비교할 만하다. 이런 시도가 새 역사가 되어 겨레의 지성을 정화(淨化)해야 한다.

한국문화재 연구자인 김희태 전남문화재위원은 이 향토학과 향토사학의 맥을 이어 새 틀을 짓는다. 이윤선 남도민속학회 회장의 무속(巫俗) 중심 공부도 이 안에 넣으면 틀이 더 풍요로울 터다. 유·무형 문화재나 역사 못지않게, 이 부문을 세우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숨 쉬는 문화’의 전제다. 이런 언급은 우리가 이 부문의 인적 자원, 성과와 평가 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문화가 숨을 쉬지 않으면, 인류(우리)는 초라하고 비루하다. 인내천(人乃天), 하늘인 사람은 살아 벌떡이는 문화를 숨 쉬고, 새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김정호의 바탕은 언론인의 마음과 방법론이다. 이 지역의 문화자원과 전통을 마치 포도송이나 고구마 결실처럼 줄줄이 엮어냈다. 노기자의 삶과 공부를 정리한 제목들만 톺아봐도 향토학의 뜻은 놀랍고 자명(自明)하다. 이 후학(後學)이 늘 부끄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그를 품어온 지역사회와 언론의 성품도 어지간하다. ‘남도의 얼굴’ 중 하나겠다. 그가 이번에 대동문화재단의 제1회 전통문화대상을 수상(5월 30일)한 것이나, 그의 성과를 다시 밝게 보자는 연속 강연이 마련되고 있는 것도 문화중심으로서의 이 지역의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광주의 인문학당 무등공부방이 6월에 마련하는 4일(김정호의 향토학-전라도의 마음 서설/강사 김희태 전남문화재위원)과 25일(김정호 선생이 설명하는 향토학으로서의 남도) 2회 강연을 시작으로 ‘김정호의 향토학 강연’이 문을 연다. 무등공부방 관계자는 향토학의 의의와 특별한 이 강의의 취지를 ‘인류를 표상(表象)하는 깃발로써의 남도문화의 재정립’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사상가 무위당(無爲堂)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나 ‘한 조각이 전체를 닮는다’는 현대과학의 프렉털 이론으로 남도문화의 보편성과 특이성을 살피자는 것이다. 상징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모래 한 알 속의 세계’와도 같은 맥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코카콜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구미(歐美) 허드레 문화의 범람이 문명세계 대부분을 휩쓸고 획일화하는 마당에 동아지중해의 남도지역이 보존해온 문화체계가 이제는 살아나야 인류의 품격이 산다는 설명이다. 문화가 마땅히 ‘사람의 마음과 넋’을 섬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정호 선생 등이 연찬(硏鑽)해온 향토(사)학의 인류사적 가치겠다. 정작 일상을 살아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은 자신과 선조가 지닌 화려한 자산을 잊기 쉽다. 늘 눈을 비비고 세상을 다시 봐야 할 필요성이다. 전라도가 왜 전라도인지 다시 보자는,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뜻이다.

토막새김

이제는 ‘진짜 역사’로 가야한다

‘동아지중해’와 ‘김정호’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으면 으레 ‘장보고’와 ‘김성훈’이란 검색 결과가 뜬다.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장관을 지냈던 자원경제학자 김성훈 교수가 1880년경 유엔 외교관 신분으로 당시 ‘죽(竹)의 장막’으로 불리던 중국에서 일할 때 그의 고교 선배인 김정호 기자는 동아지중해를 호령하던 장보고의 실체를 찾아낼 것을 당부한다.

신화나 전설 속의 장보고가 ‘해신 장보고’로 우리에게 처음 다가온 순간이다. 충무공 이순신도 쥐락펴락했던 그 바다와 우리 사이의 가슴 벅찬 인연을 한국은 비로소 알게 된다. 김정호와 김성훈, 두 선각자의 ‘장보고 세우기’는 이후 치열하게 전개됐다. 최근 무등공부방 강연에서 김성훈 교수는 “장보고를 찾아내라고 정호 형이 어찌나 다그치던지 경제외교관 신분도 잊은 것처럼 역사학자나 고고학자인 양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대륙의 고대를 헤매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당당함을 찾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금 장보고는 공기와도 같은, ‘우리의 장보고’다. 동태평양을 주름잡은 유전자의 증거다. 긍지는 바른 지식에서 나온다. 맨주먹 삿대질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당신의 깃발은 무엇인가?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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