삷의 화두 던진 친구

내 인생의 첫 수업[41] 권미혁l승인2008.04.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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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청탁받고 다시 한번우리나라 교육이 문제구나를 실감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수업”을 찾아보았지만 정규 수업시간을 통해서는 그런 전환점을 만들지 못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 나오는 마크 색커리나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같은 훌륭한 선생님을 못만나서일까?

아니 그건 아니다. 비록 학교 밖이었지만 내 삶에는 많은 수업이 있었고 많은 스승이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 혹독하고 혹독하게 나를 외면하고 비난함으로써 나를 돌아보게 했던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같이 운동하던 동지였던 K는 내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조그만 몇가지 실수

수업무대는 학교 후문 육교 위, 시간은 오후였던 것 같다. 당시는 군사쿠데타로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고 모두가 암흑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상황이 엄혹했던 만큼 모두와 작은 일까지 소통하고 조심스럽게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일하는 과정에서 나의 판단 때문에 몇 가지 실수가 있었고 반복되었다. 내용적으로 큰 실수가 아니었기에 다른 친구들은 그냥 넘어갔다. 문제는 나 자신도 이런 작은 실수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이 친구는 내 실수의 근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왜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언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학교 뒤 육교 위에서 K는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과 함께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그 뒤로 몇 번 그 친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냉랭한 대답뿐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이라도 갈 용의”가 있을 정도로 사람관계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힘든 시기에 오래 같이 일하고 같이 싸웠던 친구가 돌아섰다는 사실 자체에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 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나는 K가 한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 아이의 마지막 말을 곰곰 되새겼다. 반드시 그 사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병도 얻었다. 물론 금방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정말 선방의 스님들이 일순간에 각(覺)하듯 나는 K가 말하는 게 뭔지 깨닫게 되었다.

K는 가만 두지 못했다

성격적으로 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 중심으로 보고, 자기가 판단하는 것 중심으로 행동하는 일명 ‘주관적’인 소양(?)이 강했다. 지금도 그런 면이 남아있는데,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굳이 변명하자면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그 친구는 내가 사고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고 그 방식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며,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 한 그 방식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그때 그 친구가 매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적당히 무마하면서 나를 참아주었으면 어땠을까? 훨씬 많은 실수(어쩌면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후에 내 약점을 알게 되었을 것 같다. 영영 못 깨달았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진짜 교사는 매를 들어야 할 때 확실히 드는 교사가 아닐까 싶다. 아니, 참고 다독여주는 방식도 필요한 것 같다. K의 외면으로 인해 입은 상처가 아무는데 나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은 성찰

나의 이런 성격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습(習)으로 아직 남아있다. 실수 역시 계속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왜 그러는지 알고 무마하고(!) 예방한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보게 해준 잊을 수 없는 나의 선생님, K. 인생에 이만한 스승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권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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