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26- 꽁치느리미

지독한 보리고개를 넘겨주던 최고의 국거리 남효선l승인2008.04.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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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미'는 '늘여서 먹는 먹을거리'의 의미


곡우가 지나자 농촌은 다시 부산해졌습니다. 새 농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농민들은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습니다. 수 년 째 WTO다 FTA다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뒤도 돌아보기 싫을 정도로 지긋지긋했던 6~70년대 보리고개 시절보다 요즘이 더 살기 어렵다며 농민들은 고개를 내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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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느리미는 동해안 갯마을 울진지방에서 발달한 국거리의 이름입니다. 느리미는 '늘여먹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많은 식구들이 골고루 먹기위해서 우리의 할미들이 창안한 국거리입니다.

경상도 갯가 울진지방에는 꽁치느리미라는 재미난 이름의 국거리가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퍽도 재미난 먹을거리지만 그 속내를 알면 서러운 이름입니다.

할미가 시집오던 해, 시댁에는 식구가 마구 열다섯이었답니다. 시조부와 시조모,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시숙,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오줌싸개 시누이들을 포함, 모두 열다섯이었답니다. 시집와서 삼년, 지아비와 살림나기 전까지 할미는 삼시 세끼 밥 때만 되면 열다섯 식구 먹을거리 장만에 종일 종종걸음으로 살았답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새 없이 서숙 밭에서 그 지긋한 바랭이풀과 싸우다 종종걸음으로 정지로 들어서면 먼저 쇠죽부터 끓여야했습니다. 쇠죽이 끓는 동안 할미는 열다섯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먹을 저녁을 준비합니다.

할머니의 시집은 인근 고을에서까지 소문난 부자 집이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끼니를 장만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시조부님과 시아버지의 밥상부터 차린 뒤 나머지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챙깁니다. 당시는 유교적 가치가 엄격하게 적용되던 시절이라 항상 밥상은 시조부님과 시부모님의 밥상은 따로 차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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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집이 남들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식구들이 함께 먹을 국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그 중에서도 제일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맞춤한 국거리가 있을 턱이 만무했습니다. 새댁의 이같은 고민을 일거에 풀어 준 것이 바로 ‘꽁치느리미’였습니다.

‘느리미’는 ‘늘여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느리미는 또 생선과 온갖 묵은 나물을 한데 넣어 끓인 국입니다. 특히 느리미는 늘여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한정된 식재료로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그러므로 느리미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간난신고의 세월을 살아 온 우리 할미들의 질긴 삶의 희망과 지혜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꽁치느리미는 싱싱한 꽁치를 끓는 물에 넣은 뒤 뼈다귀는 걸러내고, 나물과 함께 다시 끓여내는 국거리입니다. 여기에 입맛에 따라 고춧가루나 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팔팔 끓는 물에 머리를 쳐 낸 싱싱한 꽁치나 고등어를 집어넣으면 꽁치나 고등어는 뼈다귀만 남은 채 살점이 고스란히 풀어집니다. 여기에 지난 봄에 캐서 말려 놓은 온갖 묵은 나물을 듬뿍 넣어 끓이면 생선맛과 나물맛이 어우러진 최고의 국거리가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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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지방에서는 이렇게 만드는 방식 때문에 이를 ‘꽁치 지풀어 먹는다’고 합니다.

울진지방에서 특히 생선느리미 먹을거리가 발달한 까닭은 바로 울진지방이 동해연안에 발달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울진지역 옛 선인들은 철마다 지천으로 나는 꽁치와 고등어로 영양분이 가득찬 ‘생선느리미’라는 훌륭한, 그러나 할미들이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살림의 지혜가 듬뿍 담긴 국거리를 창조한 것입니다.

최근 지자체는 앞다투어 지역의 특산물을 브랜드화하는데 상당한 자치력을 쏟아붇고 있습니다. 특히 먹을거리의 특화에 거는 기대는 남다릅니다.

갈수록 패스트푸드가 기승을 부리고 이 결과로 어린이 성인병 환자가 급증하는 시대에 할미들이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많은 식구들의 배를 골고루 채워준 꽁치느리미야 말로 최고의 건강먹을거리인 셈입니다.

모자리를 끝내고 식구들이 빙 둘러 앉아 훌훌 소리내며 뜨겁게 속을 뎁혀 주는 꽁치느리미를 먹던 유년의 기억이 유난히 간절합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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