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우는 지속가능한 미래

10번째 ‘흥부기행’ 동행르포 이재환l승인2008.04.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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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 자본주의’ 극복하고 ‘흥부 자본주의’로
‘생태 르네상스’의 시대는 이제 시대적 과제


흥부마을 입구에 서있는 상징석

“대박을 터트리자.”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유한대 학장), 국악인 강정자, 배병호 생태보상회 사무총장, 이명재 국가인권위 인권연구팀장, 이수일 전 전교조 위원장, 소리꾼 임진택 씨 등 8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10번째 ‘흥부기행’ 길에 올랐다. 흥부 기행의 모토 격인 ‘대박’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지난 19일부터 20일 이틀간의 여정은 물질의 대박이 아닌 정신의 대박, 삶의 대박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기회였다.

#람사르 총회의 딜레마

“근대주의가 팽창하고 부가 그리웠던 시절, 빌어먹는 흥부를 교과서에서 빼자고 가장 먼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생각이 바뀌었지요. 탐욕스럽게 축적하는 놀부가 아닌 나누고 베풀며 잘 사는 흥부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며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지나간 시대가 ‘놀부 자본주의’의 시대였다면 이제 ‘흥부자본주의’가 나와 주변의 삶을 윤택하게 만듭니다. 이미 자본의 영역에서도 세계적 기업들이 ‘Green is Green'(달러의 색이 푸른색임을 염두에 둔)을 외치고 있습니다. CSR(기업사회책임)의 확산, 나아나 전사회적 SR(사회책임)이 강조되며 SRI(사회책임투자)에 주목하거나, 지난해 발리에서 각국이 포스트교토체제에 합의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여정에 나서는 2대의 버스 안에서 김영호 이사장은 참석자들에게 이번 기행의 화두를 던졌다. 첫 기행지는 경남 창녕의 우포늪. 지역 시민사회의 헌신적 노력과 지자체의 참여로 오는 10월 창원 등지에서 열리는 세계적 환경국제회의인 ‘2008람사르총회’ 개최를 성사시킨 곳이다.

우포늪 자연생태관의 전경
우포늪을 탐방하기 앞서 송용철 창녕환경연합 의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흥부기행단.
우포늪에서 조개 등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지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형.

초봄의 늪은 평화로웠다. 봄꽃 위로 날아오르는 철새는 바쁘게 살아온 참석자들의 몸과 마음을 한순간 무장해체시키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되새기게 했다.

“지역내 개발과 보전의 논리가 충돌해 우포늪을 습지보호구역과 자연지구보전지역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포늪이라는 자연과 지역의 선물을 짙키자는데 공감하게 됐죠.

이를 통해 람사르총회를 유치하게 됐지만 주최측인 경남도의 도지사가 운하 개발에 앞장서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람사르총회와 생태보전의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기행객들을 맞이한 송용철 창녕환경연합 의장의 말은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르총회를 단지 ‘컨벤션’ 또는 ‘이벤트’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가 짙게 묻어났다. 생태의 가치를 온전히 지키며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험난해 보였다. “보존이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까요.” 김은혜 한국생협연합회 이사가 화두의 한끝을 붙잡았다.

봄 기운이 완연한 우포늪은 평화로왔다.

우포늪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참석자들은 이틀전 결정된 미 쇠고기 수입 재개를 화제에 올렸다. “대통령 아호 하나 만들어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광우’로.” 한자 의미는 스스로들 알아서 생각키로 했다.

#“진짜 농부가 됐구만”

“어, 자네 여기 있었구만.” “선생님, 이렇게 뵙는군요.” 함안에서 유기농 배 과수원을 일구고 있는 기만서(45) 씨와의 만남은 의도하지 않게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기도 했다. 기 씨의 전직은 배우 겸 스탭. 소리꾼 임진택 씨와 함께 극단 생활을 했었다. 그는 기행객들을 보자마자 신명나게 ‘농부가’를 부르며 맞이했다.

귀농 4년차 기만서 씨(왼쪽)와 작물을 공급하던 식당에서 만나 결혼한 김수진(40) 씨의 모습. 덕분에 ‘결혼이민자’이기도 하다는 기 씨는 17개월된 딸과 함께 함안에서 유기농 배 과수원을 일구고 있다.

귀농 4년차, 쉽지 않았다. 짓는 농사마다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주변 농부들의 도움을 받아 이제 생태농에 눈을 뜨고 있는 참이다. “생태농의 장점은 농작물과 나의 경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수확은 많지 않을지 몰라도 즐겁게 농사짓고 또 좋은 상품으로 내놓으니 더 좋을 수 없겠죠.” 최근에는 인근 학교에 자신이 키운 작물을 직거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농촌의 쇠락을 기정사실화 하는 이 때 다시 땅으로 돌아와 활로를 개척하려는 기 씨에게서 기행객들은 희망을 보고 갔다.

뒤이어 찾아간 곳은 옛날 옛적 흥부와 놀부가 살았다던 남원의 ‘흥부마을’. 전설 속 이야기가 흔적처럼 남아있는 곳이다. “사실관계를 떠나 흥부의 정신을 재해석하려는 이들에겐 의미가 있는 곳이겠지요.” 역사를 가르치는 평교사로 돌아온 이수일 전 전교조 위원장의 말이다.

남원 흥부마을은 지자체가 ‘관광명소’를 겨냥해 기념표석이나 안내판 등을 설치했지만 불투명한 역사의 현장만을 강조하려 했을 뿐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통한 새로운 가치와 깨달음을 던져주진 못했다. 그나마 관광명소 조성도 더 이상 진전이 없어 보였다.

흥부 마을을 떠나며 임진택 씨는 흥부와 놀부가 형제간이 아니라 소작인과 지주라는 다른 이야기를 바탕으로 1년 뒤 흥부기행에 새 판소리 한마당을 만들어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내년 흥부기행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강은 흐른다

‘한강은 흐른다 마을과 도시를 지나/저마다 생의 등불을 환히 밝히면서/오늘도 은하수로 묵묵히 흐른다.’

흥부기행 첫째날 밤. 기행객들은 숙소인 ‘인산동천’에 모여 ‘생태문학과 음악의 밤’을 열었다. ‘초록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이기영 호서대 교수가 오세영 서울대 교수의 시에 곡을 붙인 ‘한강은 흐른다’를 기타연주와 함께 불렀다.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감상하는 오세영 교수의 곁에서 였다. 성악가 임준식 씨, 국악가 김민경 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생태 르네상스’ 모색이 주제였던 이번 흥부기행은 때마침 사회 이슈로 떠오른 운하 문제와 짝이 맞았다. 16세기 르네상스가 인간을 발견했다면 오늘날의 르네상스는 자연을 발견해야 한다는 기행의 주제에 비춰본다면, 운하 건설은 시대 역행일 수 밖에 없다. 기행객들의 우려 역시 컸다.

“얼마 전 외국의 환경 국제회의 갔더니 ‘환경운동은 끝났다. 이제는 환경전쟁’이란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환경문제는 이제 전 지구적 최우선 과제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국면을 만든 것이 누구일까요. 저는 한정된 자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갈 것을 뺏어 부를 축적하는 놀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 세계자본주의는 놀부 자본주의의 극단에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사회 전체의 부를 일으키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김영호 이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새만금 삼보일배, 운하 반대 종교인 강 순례는 자연에 사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죄를 넘어 자연에게 그동안 빚진 것을 보상하는 ‘생태보상운동’도 고민해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폭주하는 자본의 폐해와 환경문제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밤은 깊어갔다. 대낮처럼 밝은 보름달 밤이었다.

#열정이 지역경제 바꾸다

두 번째 날 흥부기행단이 찾은 곳은 국내 최대 규모 갈대군락지이자 철새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순천만이다. 39.8km의 해안선에 둘러싸인 21.6㎢의 갯벌, 5.4㎢의 갈대밭, 27㎢의 하구 염습지로 이뤄진 순천만 일대는 국제적 희귀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1종의 새들이 날아와 번식을 하는 곳이다. 국내 연안습지로는 최초로 지난 2006년 1월 람사르협약에 등록되기도 했다.

순천만의 모습

순천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용산 전망대에 가기 위해 갈대숲 사이로 조성한 산책길을 따라가다보면 갯벌 위엔 두루미가 무심히 거니는 모습을, 갯벌 아래선 고개 내민 농게를 볼 수 있다.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 조류가 가장 많다는 곳,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터를 잡고 있는지 모르는 순천만은 말 그대로 생명의 땅이었다.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은 굽이굽이 수로를 따라 멀리 어부들이 펼쳐놓은 어장과 형형색색의 염생식물들로 눈이 부셨다. 나지막히 신음처럼 감탄사가 흘렀다.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부와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재산이다.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의 아름다운 모습

순천만을 뒤로 하고 기행객들은 땅을 일구는 열정 하나로 경제적으로도 ‘대박’을 터트린 광양의 청매실농원과 주인 홍쌍리 씨를 만나러 갔다. 전날 하루를 묵은 인산동천이 죽염 등 자연약리 제품을 생산하며 흥부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면 청매실농원은 매실과 함께 홍쌍리 씨의 열정이 흥부 정신과 통했다.

“돌산 뿐이던 이곳에 시집와 처음엔 너무 외로워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러다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시아버지가 심은 매실나무를 더욱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도 예술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 죽을 고생을 하며 자신이 체험하고 개발한 매실요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열정이 대단했다. ‘농사는 내가 지을테니 건강한 밥상을 차리라’는 이야기는 거부감 없는 강권이었다. 홍 씨의 매실 농사는 그의 농장 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확산돼 이제 지역경제의 일등공신이다. 그럼에도 ‘농사꾼이 농사 아닌 돈을 알면 안된다’는 홍 씨는 21세기형 흥부가 틀림없었다.

#더불어 사는 흥부의 길

제비도, 뱀도, 박도 끌어안고 베풀고 나누면서 대박을 터트린 흥부는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한다. 다만 과거형 가치지향에 익숙한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10번째 흥부기행 참석자들의 모습

흥부기행은 각자의 분야에서 주변을 살펴보는 사회책임을 다하고 또 그것이 인간에게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연생태를 향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더 큰 인사를 보내 올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이재환 기자

이재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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