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우리글을 부탁해

책 권하는 사회_[2] 이우희l승인2008.04.28 11:5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남의 말 몰입교육’까지 나온 마당
외국어, 알고보면 얼마나 침투했는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서 먼저 ‘김’을 먹었는가에 대해 한일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은 한국이, 김으로 밥을 말아서 먹은 것은 일본이 먼저다. <삼국유사>에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 반면에, 김밥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사실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누가 먼저 먹었든 맛있으면 그만일 테니 김밥 원조 이야기는 여기까지, 오늘은 ‘말言’로 뒤를 잇고자 한다.

말에도 그 시작이 있어서 우리말, 남의 말이 있기 마련인데, 이 또한 김밥처럼 우리 입맛에 맞기만 하면 그만일까. 우리말처럼 생긴 남의 말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한두 가지쯤은 기본으로 배우고 바다를 건너 말들이 오가는 세상이니 무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남의 말 몰입교육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에 뜬금없이 ‘내 말 네 말’은 왜 따지냐고? 남의 말들이 우리말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땡깡’, ‘오케바리’의 기원은?


편집자는 글 뒤에 숨어서 글을 바로잡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활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설레임’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설렘’으로 쓰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참 고민했을 정도다. 오뚜기(오뚝이), 꼬깔콘(고깔콘), 쌍용(쌍룡) 따위도 마찬가지다. 꼬투리를 잡기는 뭣하지만, 그렇다고 <표준 국어대사전>을 바이블처럼 여기는 편집자에게 인정을 기대하지도 마라.

우리말을 맘대로 비틀거나 잘못 쓰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말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들은 더욱 큰일이다. 이런 말들이 결국 우리말을 잡아먹는다. 일본어 ‘나베’(鎬)에서 온 ‘냄비’,‘가마스’(かます)에서 온 ‘가마니’는 우리말에 없는 말들이 들어온 것이니 이것들은 일단 그냥 두자. 일본어에서 왔으되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은 정말 많다.

다진 양념을 가리키는 ‘다대기’,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맑은 생선국 ‘지리’, 간질을 의미한 말에서 나온 ‘뗑깡’, ‘오키마리’(お決まり; 결정)에서 나온 ‘오케바리’, 모조리 쓸어간다는 뜻으로 쓰는 ‘싹쓰리’(‘스리’는 소매치기를 뜻한다), 반짝이는 별을 뜻하는 ‘기라성’(‘기라’는 ‘반짝’이라는 뜻의 일본 고유어)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여기에 일본식 한자어도 우리말을 위협하는 데 한몫한다. 각서(다짐 글), 고수부지(둔치), 고참(선임자), 시말서(경위서), 오지(두메) 따위가 그렇다. 이 말들은 <표준 국어대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괄호 안처럼 우리말로 순화할 것을 함께 적고 있다.

언어는 개념을 만든다


우리말 순화대상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진 어휘가 그대로 들어온 것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민법·형사·민사·소송 등의 법률용어, 사장·과장·계장 등의 조직용어, 시민·사회·권리·개인 등 서구의 근대적 개념, 수소·산소·탄소 등의 원소명. 덧붙여 일본어 관용 표현, 즉 ‘새빨간 거짓말, 종말을 고하다, 흥분의 도가니, 손에 땀을 쥐다, 종지부를 찍다’ 따위도 일본어 표현을 우리말처럼 바꿨을 뿐이다.(이 말들을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말이 바다를 건너간 경우도 정말 많다)

개중에 한자어는 발음이 비슷한 경우도 많으니, 일본어 배우기가 쉬운 것은 어쩌면 수십 년간 나라를 빼앗긴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그렇다 치고 일본은 어떻게 그 말들을 만들어 냈을까? <번역어 성립사정>(야나부 아키라, 일빛)은 ‘사회, 개인, 근대, 연애, 자유’ 등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들이 근대화 과정 속에서 어떤 지적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이들 단어들은 대개 번역의 과정을 통해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생소했던 ‘society, individual, modern, right’ 등의 개념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했던 흔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에겐 한글이 있다


우리말 외에 한글에 대해 길게 쓰고 싶었으나 앞에서 ‘남의 말’들이 너무 많았다. 한글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자라고 한다. 게다가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사업에 공이 많은 세계 각국의 개인이나 단체에게 매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을 수여할 정도로 한글의 우수성은 잘 알려져 있다.(상금은 한국 정부에서 출연한다) 당연히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이 정도로 하고, 우리 편집팀에게도 돌려보게 한 <한국어가 있다>(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팀, 커뮤니케이션), <문장기술>(배상복, 랜덤하우스코리아)을 권하는 것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부탁하고자 한다.


이우희 두리미디어 편집장

이우희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희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아 02638  |  등록일자 : 2013년 5월 8일  |  회장 : 이정우  |  발행인 : 설동본  |  편집인 : 강상헌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