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계 되돌리지 말라

요즘 들어 나는 한국의 1970년대에 권위주의 독재 정권과 개발연대 시대로 다시 회귀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착각을 하곤 한다. 도대체 이명박 정부는 너무나 상식적인 민주주의 기본원리와 역사의 대세를퇴행시키는 저돌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러한 의혹을 받는 가장 큰 요인은 아마 새 정부의 국정핵심세력이 국정 철학에 대해 깊은 고민을 공유하려는 뼈아픈 개선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새 정부 국정의 확고한 방향성, 철학성, 역사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기본원리와 민족역사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면서 실용주의로 적당하게 포장하려고 강변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의 국정은 무엇을 위한 실용주의인지 그 목표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총론은 있고 각론이 없다.

우선대학의 교수가대운하 반대서명을 하였다고하여 관계 정보기관을 시켜 지식인의 성향분석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행태는 한국의 1970년 초 권위주의 정부시대에 있었던 일로서 국제인권과 헌법에 보장된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적 정치 행태이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 땅에 법제도화시키려고 값비싼 국가적 사회적 희생을 20년 넘게 치루어왔다.

둘째로 남북관계의 모든 창구를 단절, 파탄시키고 한반도 문제 주도권을 미국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반민족, 반역사적 외교 행태를 저질렸다. 이러한 ‘조공외교’ 비판이 거세니까 북한이 미국과 거래하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쓴다고 공을 북측에 넘기는 책임회피정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6·15 남북공동선언이후 북한이 미국보다 남한을 더 신뢰하고 현재 교류협력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알려진 상식이다.

셋째 새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6자 회담 합의 정신의 명백한위반이다. 6자회담은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발전을 병행추진하자는 국제적 합의이다. 그런데 새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선 핵폐기 후 남북관계’ 발전을 연계시킴으로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남북경협을 비롯한 남북관계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6자회담 합의라는 국제적 약속과 정면 모순된다. 우리 스스로 국제적 사안인 핵문제를 민족 내부교류협력과 연계시킴으로써 향후 한반도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지를 자승자박하는 꼴이 된 셈이다.

넷째 북한인권문제에 보편성 원칙 적용과 북한인권문제의 직접 제기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치 않는 미숙한 행태이다.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 및 그 개선요구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해결 접근방식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 체제의 가장 큰 약점이며, 북한 체제유지와 관련된 정치적 민감한 이슈인데, 남한 정부가 직접 선봉에 나서서 북한인권법제정을 서두르고 남북대화에서 상대의 약점을 제기하는 것은 전략상 큰 실수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북한인권문제는 국제사회와 한국정부와의 역할분담을 통한 전략적 접근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한국정부는 인권(Human Rights)보다는 인적 교류(Human Contacts)를 강조하여 북한을 국제사회 개방에 자신감을 갖고 개혁개방에 임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서독도 바로 동독인권문제에 대해 이러한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다섯째 한미동맹 강화라는 명분하에 미국 주도의 요구인 이라크 파병 재연장,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PSI) 전면 참여, 방위비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강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참여 등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가 시작된 지 8년째 중반 그리고 분단체제 60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민족은 제국주의 열강쟁탈전에서 발생한 식민지체제를 극복하고, 냉전시대의 희생양으로서 조국분단이라는 마지막 질곡의 시대를 청산하려는 주요한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그런데 식민지 잔재청산과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역사적 민족 과제가 채 완료하기도 전에 새 정부는 이러한 근본적 역사적 민족적 과제를 모두 팽개치고, 실용주의라는 이름하에 대세에 거역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제발 역사와 민족의 문제를 단기적 정권적 차원에서 보지 말고 장기적 대승적 차원에서 보아 지혜롭게 다루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