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빈곤 ‘권리에 기반한 개발’로 접근

세계시민사회, 각국 정상에 지구적 이슈 제안 김혜경l승인2008.05.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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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정상회의 ‘시민 G8 대화’(Civic G8 Dialogue)

작년 가을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 분이 ‘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GCAP Korea) 사무국을 맡고 있는 경실련을 찾아왔다. 2008년도 G8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개최되는데, 같은 기간에 시민사회가 ‘대안 정상회의’(Alternative Summit)를 개최하니까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일본 NGO들은 작년부터 ‘2008 일본 G8정상회의 NGO 포럼’을 꾸려서 현재 124개 NGO들이 동참하고 있다. ‘대안 정상회의’는 2006년 7월 러시아 G8 정상회의에서 시작되어 작년에는 독일, 내년에는 이태리로 넘어간다. /필자
지난달 23일부터 24일까지 일본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는 ‘시민 G8 대화’(Civil G8 Dialogue)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지난달 23일부터 24일까지 일본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는 ‘시민 G8 대화’(Civil G8 Dialogue)라는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목적은 7월에 홋가이도 도야코에서 개최될 G8 정상회의에 앞서 주요의제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입장을 정리하고, 정상회의 예비교섭을 하는 고위관리들(sherpa)을 라운드테이블에 초청하여 시민사회의 견해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이 회의에는 세계 24 개국에서 160여 명의 NGO 대표들이 참가했다. G8 국가 외에 케냐, 나이지리아, 잠비아, 베닌 등 아프리카 7개국,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7개국, 호주와 레바논 등에서 참석하였다. 한국이 2008 G8 정상회의에 초대되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시민사회는 G8 NGO 포럼에 참여하지 않았다. ‘환경과 개발’이 주제였던 이 회의에는 한국GCAP(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을 대표하여 필자가 참석하였으며,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환경운동연합이 참가하였다.

회의 첫날에는 주요의제에 대한 전체회의를 가졌는데, 첫 세션에서는 G8 정상회의의 경과와 도야코 정상회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해 및 기대, 권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후 세 번의 전체회의를 통해 G8의 주요의제가 될 △빈곤과 개발, △G8국가들과 환경, △평화와 인권에 대한 발제 및 토론이 진행되었다.

‘빈곤과 개발’ 전체회의는 ‘MDG(천년개발목표) 달성, 빈곤퇴치와 사회정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GCAP의 무프티가 MDG 달성의 진도표를 설명하고 식량위기로 빈곤문제가 악화되는 현 상황에서 G8국가들이 MDG 달성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탈리아 ‘액션에이드’의 프레이아는 MDG의 8번째 목표인 ‘개발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이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복잡한 계산수치를 제시해가며 G8 국가들의 구체적인 개발재원 지원을 요구했다.

“선진국 구체적 지원 필요”

나이지리아의 아캐니는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해 G8에게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빈곤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빈곤퇴치를 위한 지원은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주장했다. 에이즈나 말라리아를 퇴치하는데 얼마가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회의마다 계산만 반복할 게 아니라, 이제는 행동에 옮겨서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이나바는 G8 국가들이 개도국에 해가 되는 정책을 중단함으로써 더 이상 나쁜 영향을 끼치지 말고 지구적 과제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제들의 특징은 빈곤문제 해결을 필요에 대한 충족의 개념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의 실현이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뿐만 아니라 선진부국들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권리에 기반한 개발’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평화와 인권’ 세션에서 발표한 이토의 발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MDG를 달성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을 실현하는 것이며, 개도국에 대한 원조에도 반드시 굿거버넌스와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는 역할을 했던 헌법 9조, 소위 평화헌법을 세계적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레바논 패널의 주장과 함께 회의 개최지인 홋가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에 대한 차별을 없애줄 것을 촉구하는 아이누 출신 참가자가 눈길을 끌었다.

‘G8과 환경’ 세션은 주로 기후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일본 환경부의 지구환경고문관인 얏수는 일본이 어떤 회의를 조직했나, 무슨 회의에 참가했나, 절차는 어떻게 되고 누가 참여하는가 등 핵심이 빠진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10분의 발제가 끝났는데 200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 누구 하나도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사회자가 세션 내내 여러 차례 유도질문을 했는데 마지막 멘트는 “질문은 이제 그만”(No more questions)이었다. 유창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을 자신 있게 털어놓을 수 없는 입장이라 진땀을 빼면서 대답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에 반해 기후네트워크의 아사오카는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교토의정서의 본산지인 일본이 온실가스 절감에 대한 명확한 정책도, 방법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온실가스 절감 주요 이슈

NGO포럼은 이날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선진국들이 스스로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의의 클라이맥스는 둘째 날 오후에 있은 G8 고위관리들과의 라운드테이블이었다. 일본의 코노 외무성 차관을 비롯하여 프랑스를 제외한 G8 국가 및 EU의 예비교섭을 위한 고위관리들이 참석하였고, 시민사회에서는 G8국가 및 개도국의 NGO 대표 21명이 패널로 참가하였다. 오후 4시에 시작한 라운드테이블은 참가자의 발언에 대해 분초를 세며 칼같이 자르는 바람에 정확히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케냐 옥스팜의 이룽구는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해 ODA(국제개발원조), 무역, 외채탕감 문제가 다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부국들이 아프리카에 대한 ODA를 약속대로 2배 늘리는 한편 원조효과를 증대해야 하며, 자국 농민들에 대한 농업보조금을 줄이고 개도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아프리카의 빈곤퇴치와 발전을 위해 인프라 및 에너지에 대한 투자, HIV/AIDS, 결핵,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 등 보건분야, 농업과 교육분야에 ODA 및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의 아크테르는 최근의 식량위기로 10억 인구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바이오연료 재배로 곡물경작지와 농업용수가 줄어드는 문제를 지적했다. G8국가들은 종종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식량증산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진짜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지 증명되지 않았고, 자칫 개도국의 농민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곡물들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G8은 개도국은 물론 구미에서의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식량생산을 위해 소규모의 주변화된 농민들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여성들이 직장, 토지, 사회보장이나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측의 정책 제안에 대한 G8 고위관리들의 대답은 상당히 원론적이고 모호하게 들렸다. 일본의 코노 외무성 차관은 오는 5월 요코하마에서개최될 TICAD (아프리카 개발에 관한 도쿄 국제컨퍼런스)를 언급하면서 일본정부가 아프리카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인프라, 무역, 투자를 향상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MDG의 달성 여부도 수적인 평가에 그칠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EITI(자원개발사업 투명성확보선언)가 G8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프라이스 대통령 보좌관은 국가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어떻게 보건관리관계자를 늘릴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주요과제라고강조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제안과는 달리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으며, 폐쇄된 시장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개방된 시장은 비용이 적게 든다면서 시장개방을 주장했다.

영국의 컨리프 수상자문역은 MDG 달성은 G8 논의의 근거가 될 것이라며 교육, 보건, 식수와 위생시설 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ODA를 두 배로 늘리자는 2005년 글렌이글스의 G8 합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OECD/DAC가 2010년까지는 GNI(국민총소득)의 0.56%, 2015년까지는 0.7%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무역 활성화를 위해 정보 제공 및 시스템 구축에 ODA를 사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2005년 영국이 G8 의장국을 맡으면서 대대적인 부채탕감에 대한 합의를 이뤄낸 만큼 영국대표가 가장 뚜렷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대부분 정부대표들은 시민사회의 정책 제안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회피하고, 이러저러한 의제가 중요하다거나 G8 정상회의에서 다루게 될 것이라는 수준으로 대응하였다. 최종적으로 패널에 참가하지 못한 NGO 대표 서너 명에게 1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G8 정상회의마다 합의는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는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주장,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마샬플랜을 통해 유럽 부흥을 이뤄냈듯이 G8 국가들이 ODA를 GNI의 0.7% 제공하자는 합의를 과감하게 이행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본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하면서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NGO들은 작년부터 ‘2008 일본 G8정상회의 NGO 포럼’을 꾸려서 일본국제협력NGO센터(JANIC)이 사무국을 맡고 있다. NGO포럼에는 환경, 빈곤과 개발, 평화와 인권 등 주요한 지구적 과제들을 중심으로 3월 현재 124개 NGO들이 활동하고 있다. 빈곤과 개발 분과의 경우 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NGO들의 검토를 거쳐 A4 73쪽에 달하는 정책방침서(Position Paper)를 발간하였는데, ODA와 혁신적 재정메커니즘, 무역과 투자, 세계보건, 기초교육과 아동노동, 성평등과 여성역량 강화, 기후변화와 빈곤에 대한 정책 제안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는 도카이 G8 정상회의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사업과 정책활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활동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일본의 개발NGO들이 개별적인 단체사업에 치중해 왔지만, 향후에는 환경과 개발 등 국경을 벗어나는 글로벌 이슈들에 대해 보다 강력한 연대활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빈곤과 개발 이슈에 대해서는 일본이 유럽에 비해 후발주자이지만, 기후변화 등 환경분야에서는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민족주의에 대한 우려

최근 세계화를 넘어서 신(新)민족주의가 등장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지구적 과제를 해결해보려는 NGO들에게 신민족주의는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 한 한국의 시민사회가 본격적인 국제연대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민족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까 봐 내심 걱정이 된다. 국경을 넘어선 공공선을 위한 시민사회의 도전은 이러한 세태에 역주행이라도 하면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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