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부역자 이름을 알리는 일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굵직굵직한 이름 가운데 ‘이원수’ 석 자를 봅니다. 그리고 ‘이원수 선생 기념사업을 모두 접으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이원수 선생이 병자리에 누워 세상을 떠난 1981년까지 미처 당신 아픔을 털어놓지 못한 일은 잘못이지만, 이원수 선생이 독재정권과 맞서서 해 왔던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땅속에 파묻히는구나 싶습니다. ‘훌륭한 발자취와 아픈 발자취’를 고이고이 모아 놓고 ‘쓴 가르침’으로 삼는 우리 역사나 문화는 뿌리내리기 힘든가요.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최민지, 김민주 씀, 일월서각, 1978)이라는 책을 꺼내어 펼칩니다. “증면경쟁을 통해 오락이나 부인 문제, 체육, 예술, 문화 등에 치중하고, 또 민족문화의 발굴도 일종의 복고주의로 빠져들며 후진한 생활개선, 윤택한 삶의 추구라는 개인적 차원으로 민중을 끌고 감으로써 일제통치라는 정치 현실과 경제, 도덕, 교육, 문화 등을 분리시켜 적극적인 민족해방 투쟁정신을 둔화시키는 일방 일제의 식민통치에 일익을 담당한 일면도 나타내게 된다 … 신문이 존속하기 위해 스스로 민족언론의 소임을 포기한 이들 민간지에서 일제는 실상 삭제나 압수라는 그들의 전가보도를 휘둘러야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176∼177쪽)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을 가끔 한 권 더 사서 이웃이나 선후배한테 선물해 줍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하면서 놀라는 사람이 있고, ‘뭐야, 옛날 책이잖아’ 하면서 케케묵은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신문들이 어떻게 친일부역을 했는가가 낱낱이 실린 이 책입니다만, 아쉽게도 연구가 보태어지며 고침판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찾는 사람도 사라졌지만, 찾으려는 손길이 없고, 찾아서 새로운 책으로 손질하여 빛을 보도록 하겠다는 마음씀 마저 없습니다. 헌책방 임자만 값어치를 알아봅니다. 눈밝은 책손만 넌지시 집어들어 넘겨볼 뿐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이 아쉬움을 담아내거나 껴안으면서 오래오래 이어갈 역사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쉰 해쯤 지나서, 지금 우리들이 모두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진 다음 우리 뒷사람들은 2008년을 어떤 역사로 뒤돌아볼는지 생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언론’이라고 내세우던 신문들은 하나같이 ‘증면경쟁을 통해 오락이나 부인 문제’ 들에 빠졌다는데, 1990년대와 2000년대 우리 신문들은 똑같은 ‘증면경쟁’을 하면서 ‘스포츠와 연예와 오락과 돈굴리기와 부동산과 외국여행과 고급취미와 자동차’ 들에 빠져 있습니다.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는 언론매체에서도 이와 같은 기사를 손쉽게 찾아봅니다. 오늘날 언론매체는 ‘자본 부역’일까요. ‘황금만능주의 부역’일까요. ‘3S 부역’일까요. 아니면….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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