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던 현실과 조우

내 인생의 첫 수업[42] 권영국l승인2008.05.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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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의 전환점은 교실 안도 아니고, 훌륭한 스승님의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전 대학교를 입학한 첫해 경험하게 된 최루탄 냄새와 피 흘리며 끌려가던 선배들의 모습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생애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1981년 포항제철공고를 졸업하고, 당시 실업계 학생들에게 적용되던 동일계 진학의 혜택으로 유수한 대학교의 금속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 선생님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만큼 철저하게 학교에 충실한 모범생(?)이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오로지 대통령은 이 사람 하나뿐인 줄로만 알았고, 그 대통령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국부를 잃었다는 생각 때문에 일주일 동안이나 공황상태에서 생활할 정도로 국가관도 확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국가관 확실했던 학생

그리고 유신정권하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들이 있습니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었습니다. “부모가 소 팔고 논 팔아서 대학 보냈더니 공부는 안하고 맨 날 데모질이야” 혹은 “공부하기 싫으니까 맨 날 데모나 하고 다니지” 등의 비난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생들이 데모나 하고 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전 학교생활에만 충실하였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증된 교과서에 실려 있는 역사와 사회가 우리 사회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위대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1981년 3월 관악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지방 출신이었던 관계로 기숙사 배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로 매우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은 꽉 짜여진 고등학교 생활과는 달라 보였고 모든 것이 신기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학교 내에 대학생 같지 않은, 머리가 짧은 청바지 차림의 청년들이 떼거리로 학교 잔디밭에 늘 죽치고 있었습니다. 누굴까?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학교분위기는 매우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같은 해 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점심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고 잠시 기숙사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갑자기 교정 쪽에서 “펑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매캐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고 눈이 따가워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말로만 듣던 최루탄 냄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저는 불에 덴 듯 용수철처럼 기숙사 밖으로 튀어나가 노래 소리와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교정 쪽으로 한숨에 내달렸습니다. 제가 학교 도서관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그토록 저주했던 “공부하기 싫어 데모를 주동한 선배놈(?)”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늘 잔디밭에 죽치고 있던 청바지 차림의 청년들에게 진압되어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끌려가던 한 대학생의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를 끌고 가던 이상한 청년들은 주변에서 지켜보던 뭇 학생들의 눈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 대학생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쉼 없이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끌려가던 대학생의 입에서는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가라”라는 외침이 그 이상한 청년(우리는 ‘짭새’라고 불렀습니다)들의 폭행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최루탄 냄새 흩날리며

저는 그 살벌하고도 처절한 광경에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알아버렸습니다. 내가 그동안 검증된 교과서에서 배워온 사회와 역사는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공부하기 싫어 데모한다는 비난이 얼마나 악의에 찬 거짓이었는지…. 전 단박에 알아버렸습니다. 공부하기 싫어 데모하는 놈들이 저렇게 매 맞으며 처절하게 끌려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나의 인생은 달라져 버렸습니다. 검증된 교과서를 버리고 전두환 정권이 금지한 금서를 읽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두려웠지만 저도 공부하기 싫어 데모하던 대학생처럼 시위대에 가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놓은 ‘내 인생에 첫 수업’은 교실 안도 아니요, 훌륭한 선생님의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 흘리며 끌려가던 현실과의 조우였습니다.


권영국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

권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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