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도를 넘는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부터 공공기관장 사퇴 압력으로 여론의 뭇매를 맡더니 이제 민간단체 인사까지 갈아치울 태세다. 보건복지가족부 당국자가 민간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사무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민간단체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임명권도 없는 민간기구의 인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시민사회단체 인사에도 관여하겠다는 발상인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세중 회장과 신필균 사무총장의 임기는 각각 내년 3월과 5월이다. 당사자에게는 직접 사퇴를 직접 요구하지 않았지만 ‘제2모금회 구성’, ‘특별감사 실시’ 등으로 압력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또한 복지부 추천 인사가 모금회 당연직 이사로 참여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하니 관료주의에 취한 게 다름 아니다. 더욱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은 대통령 부인이 맡게 돼 있다. 복지부가 이런 점을 생각하고 현재의 회장과 사무총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면 이 또한 큰 문제다. 민간기구에 청와대와 정부가 동시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동모금제도는 1873년 영국 리버풀에서 지역 유력인사들이 기부금 모집의 중복과 강제적 권유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기부금을 적립해 자선단체를 만든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지역공동모금은 1887년 미국 덴버로, 특히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자선조직협의회 운동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복지기관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모금을 한다든지, 복지기관 연합단체에서 모금을 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1913년 클리블랜드 상공회의소에서 기부자, 모금활동가, 그리고 기금을 배분받는 기관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자선박애연맹을 만들고 모금캠페인을 전개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공동모금은 개별모금에 비해 효율적인 모금과 형평성 있는 배분이 이뤄지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모금과 배분결과를 공개하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공동모금제는 현재 세계 46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간단체 스스로의 방향감각과 재원을 통해 사회복지의 새로운 이정표를 써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모금회는 철저하게 정치로부터 독립돼 왔다. 민간기관이 정치적 영향력을 받지 않음은 순수성과 투명성으로 국민의 기부금을 갖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간기구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또 다른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들의 성금을 탐낸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누가 여기에 선뜻 성금을 기부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1998년 공동모금회가 만들어진 것도 이렇게 관료사회가 맘대로 쥐락펴락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성금을 거두는 것과 사용처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순수 민간단체로 하여금 독립적으로 나눔운동을 전개해보자는 뜻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7년 제정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에 의해 출범한 이래 지난해 2천670억원을 모금해 소외계층에 지원했다. 지난 10년간 모금액 규모는 10배 이상 늘었고 기부금이 전문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배분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민간단체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복지부의 오만함과 위법행위”라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는 자율성과 투명성이 생명인 공동모금회의 위상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공동모금회 회장과 사무총장은 어떤 사퇴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민간단체의 좋은 선례를 남겨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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