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칼날 벼리니, 자존(自尊) 오리라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극일(克日)의 의지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8.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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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얼굴 가진 섬나라 왜(倭)의 한 얼굴, 아베 정권의 일본을 본다. 역사 속에서 키워온 열등의식의 가면은 때로 괴물로 돌변한다. 침략본능은 열등감을 감추려는 과장된 보상심리일 터다. 역사책에 나오는 이름 왜구(倭寇·도둑 寇)는 해적질이 그들의 바탕임을 보여준다.

다시 ‘전쟁하는 일본’이 되겠다는 이들…. 거짓말에 억지까지, 망측한 이웃과 사는 것은 참 난처하다. 저리 심통을 부려도 이사 가라 할 수도 없다. 무력보다는 덕(德)을 앞세우고 살아온 금도(襟度)의 겨레, 우리는 끝내 저들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품어야 하리라.

▲ 체포돼 압송 되는 녹두장군 전봉준 모습의 동상. 서울 종로, 종각 건너편 길목에서 늘 장군의 눈초리 빛난다. 그는 ‘개벽(開闢)’을 외쳤다.

뉴욕의 한 전자제품 매장, 좋은 자리에 따로 마련된 선반의 삼성 엘지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직원은 ‘상류층은 좀 비싸도 꼭 쌤숭(삼성)을 산다’고 했다. 소니는 다른 일본산(産)이나 필립스 등과 함께 그 옆에 널려 있었다. “클래스가 다르다”고도 했다. 지난 5월의 일이다.

소니는 오랫동안 일본 자체였다. 신화적 제품 워크맨만 해도 지난 세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그 소니를 한국이 추월했다. 상징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아베 등의 선망(羨望)을 넘는 공포를 실감한다. 그들은 한국이 무섭다.

산업뿐만이 아니다. 분단 한국의 상황을 달콤하게 즐겨온 그들에게 최근 김정은의 북한이 선택하는 카드는 일본 존재의 의의를 지우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박정희와 그 딸 등의 친일적 정권의 몰락을 보았다. 그 분단은 애초 왜의 침략 탓이었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인) 식민지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또는 다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했을까? ‘보수’를 표방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서울의 몇 신문, 특히 조선일보의 내용을 보고 아베 일당은 크게 용기를 얻었을 것 같다. 그러나 오판(誤判)일 것이다.

민심이 문재인 정권을 떠났으니 밀어붙이면 한국은 치명상을 입고 (경쟁자의 대열에서) 사라진다. 지금 아니면, 나 아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위대한 과업’이다. 똥개 길들이듯, 이번에 한국을 야무지게 잡자. 그러나, 그럴까? 우리는 답을 안다.

극일(克日), 이번이 되레 우리가 왜를 극복하는 기회다. 아베가 옳지 않아서 그렇다. 한국의 의지와 거대한 에너지를 그들은 셈에서 빠트렸다. 입력의 오류는 출력의 파국이다.

개벽(開闢)의 동학(東學)을 외치며 산화한 녹두장군 전봉준의 매서운 눈초리의 뜻을 어설픈 서구화로 의식 혼미해진 일본은 짐작도 못했다. 그 개벽, 바야흐로 한반도를 휘감기 시작했다.

선의(善意)는 늘 강하다. 그 중 하나인 BTS의 마음은 아베 주장의 치졸함을 감싸버린다. 그들의 안목은 이미 인류를 향해 아시아를 넘었다. 고대로부터 이 겨레는 왜의 큰 스승이었다.

아베의 일본은 이제 자기네 청년들을 더 이상 왜곡(矮曲)하지 말아야 한다. 왜곡(歪曲)된 교육은 인간 지성을 구부정한 난쟁이 꼴로 바꾼다. 그런 인종은 길이 인류사의 암적 존재다. 우리는 우리 청년들이 정정당당한 일본 청년들과 아름답게 경쟁하기를 바란다.

‘뜻’을 나타내는 의(意) 정(情) 지(志) 글자에 마음 심(心, 忄은 心과 같은 글자)자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음을 주목한다. 갑골문의 心은 심장그림이다. 그 그림문자(기호)를 ‘마음’의 이름(푯대)으로 삼은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하트 마크(♡)도 똑같다. 문자인류학의 본보기다.

3000여 년 전 황하 유역. 문명의 새벽을 살던 이들의 심장 그림은 어떤 마음을 담고자 했을까? 심장의 고동처럼, 뜻은 정직하고 착해야 한다. 그래서 크고 강한 것이 사랑일러라.

남 해코지 못하는, 우직(愚直)한 우리는 저 악마적인 망발과 어거지에 때로 당황하고 당하기도 했다. 선량한 이웃의 선의를 약점 삼아 찔러대는, 등 두들기며 간 빼 먹는 식의 행실은 나쁘다. ‘옳다’고 확신하니 우리는 극복한다. 역사도 말한다. 삼성 엘지와 소니의 사례도 그렇다.

▲ 극(克)의 갑골문. 사자 머리 위에 돌도끼가 있는 모양을 그린 글자다. (이락의 著 ‘한자정해’)

토/막/새/김

미워하기 아닌 왜를 이겨 넘어서자는 것

일본은 이겨 넘자는 극일(克日)의 克은 같은 발음의 剋, 勀과도 뜻이 같다. 剋은 克에 칼 도(刀, 刂)자가, 勀은 힘 력(力)자가 들어있다. 이기는 것, 승리(勝利) 또는 대첩(大捷)에는 당연히 모진 칼질이나 거센 힘(무력)이 필요하다. 공짜 승리는 없다.

갑골문의 克은 승리를 위해서는 고생이 꼭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베토벤 합창교향곡 4악장의 ‘고뇌(苦惱)를 넘어 환희로’(원작 F.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 이미지와도 같다.

크게 입 벌린 사자가 저를 공격하는 돌도끼를 씹어 으스러트리는 것으로 푸는가 하면, 맹수를 돌도끼로 내리치는 것이라고도 새긴다. 투구와 갑옷차림의 장수 그림으로 보기도 한다. 해석에 따라 승리의 주체는 다르지만 심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결말이 나는 극적인 상황이다.

싸워 이긴다는 뜻의 단어 克은 극복(克服) 초극(超克) 극첩(克捷) 등의 의미 비슷한 숙어로 활용된다. 극기(克己) 즉 ‘자신을 이긴다’는 동양 사상의 중요한 이미지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큰 고뇌로 이번에야말로 침략 일본을 넘어설 수 있으리. 다만, ‘전쟁’에는 피와 땀이 필요하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 아니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극복의 칼날 벼리니, 진정한 자존(自尊)은 오리라. 그 지점이 동아시아의 원래 질서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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