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보듬은 식이요법이 생명력 되살렸다

강건한 ‘제3막 인생’ 출범한 박영출의 여암공생(與癌共生) 강상헌l승인2008.05.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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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 특별기획/암과 더불어 산 내 청춘

시민사회신문은 창간 1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연재물을 선보입니다. 암(癌)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박영출 씨의 이야기입니다. 암의 치유는 물론 건강한 생활과 관련 의료계의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사항이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필자는 전 동아일보 기자, <시민사회신문> 논설위원, 서울여대와 평택대 외래교수인 강상헌 암식이연구원 원장입니다. /편집자

김신옥
암의 고통과 치열한 투쟁을 벌여온 박영출 대표. 그는 우리나라 암치료 환경은 암 환우들의 합리적 선택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산다는 것이 말 그대로 지옥이었답니다. 모진 고통의 낮과 밤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하늘 향해 삿대질하듯 증오심만 키웠습니다.”

1990년 4월 벽력같은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며 ‘암(癌)과 더불어 사는’ 파란만장의 인생 제2막을 시작한 박영출. 당시 그의 나이 34세, 세상도 들어 올릴 것 같은 178cm, 95kg 거구의 열혈 청년이었다. 토목기사로 건축업에 뛰어들어 사업의 재미를 알고 ‘세상살이’에 막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스스로 ‘방탕’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술 담배에 절제 없는 폭식(暴食), 불규칙한 생활 따위를 ‘사업을 위한 기본’ 쯤으로 여겼다.

암이 그에게 왔다. 하고 많은 인고(忍苦)의 나날들, 그러나 그는 끝내 이겨냈다. 최근 목사안수를 받아 신앙의 힘을 보탰다. 박영출은 스스로, 또 주위에서 ‘기적’이라고 일컫는 자신과 암의 공생(共生)의 뜻을 생각한다. 거듭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기 위해’ 박영출이 벌인 치열한 투쟁은 인간의 한계를 훌쩍 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암병원을 모두 섭렵했다. 의사들 중 여럿은 그를 포기했다. 외국의 병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원의 판단으로 인간 박영출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수히 다시 일어섰다. 현대의학의 공덕(功德)에도 간절히 의지했다. 그러나 병원 치료의 한계를 느낀 후로 시작한 자가(自家) 식이 치료는 그 ‘기적’의 출발점이 됐다. 신앙의 힘도 그를 부축해 주었다. 몸서리치게 아플 때마다 그는 소리쳤다. “나를 살려주면 나를 모두 던져 암으로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獻身)하겠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다. 암세포는 씻은 듯 사라졌다.

하지만 방심하고 때때로 그 약속을 잊었을 때 거짓말처럼 암은 다시 왔다. 몸 곳곳에 전이(轉移)됐다. ‘3개월 시한부’ 판정과 비참한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다. 위를 절제했다. 간 일부를 잘랐다. 담낭(膽囊)과 담도(膽道) 일부, 림프절 일부, 십이지장 유문부위도 도려냈다. 갈비뼈 2개, 무릎 연골을 떼어냈다. 집도 세간도 예금통장도 함께 사라졌다.

박영출은 죽지 않았다. 친구인 암 환우들에게 담대한 치유의지와 자신의 ‘기적’의 경험에서 추출(抽出)한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제2의 박영출로 다시 태어났다. 식이요법으로 대표되는 대체의학의 여러 원리들을 직접 겪고 배운 그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 길을 열기로 했다.

서구(西歐)나 일본, 중국의 병원과 달리 서양 의학 범주 이외의 방법은 사술(詐術)로 간주해 버리는 우리나라 암 치료 환경은 암 환우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박영출의 생각이다. 동의보감 등에 기초한 우리 전통의학에 대한 홀대(忽待)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서양과학의 방법론으로 입증된 것만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너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생명’의 큰 원리에 의한 사색의 부재(不在)가 빚은 현상이다.

박영출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병원이, 의사가 포기한 암 환우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남는다. 서양과학 기반의 암 치료 환경은 엄연한 이 현실을 보고 ‘기적’이라 이름 붙이고는 더 이상의 모색을 포기한다. 무책임한 행실이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이유가 있듯, ‘박영출 현상’에는 뜻이 있다. 스스로 그 뜻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암 없는 세상’을 위한 선지식(善知識)을 궁리하기 위함이다.

암이 무엇에서 비롯하였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도 박영출에게는 거대한 궁금증이다. 아픔을 벗어나기에 급급해 암이 어디에서 왜 생겼는지는 논외(論外)로 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암 치료 환경에 대한 이름 모를 공분(公憤) 또한 작지 않은 터다.

2002년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은 후 지금껏 그는 나름대로의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위도 없고 쓸개도 없지만 그는 잘 먹는다. 2개의 갈비뼈와 연골도 떼 낸 육신이지만 자유롭게 움직인다. 암과 함께 미움도 벗어버린 목사 박영출은 이렇게 말한다.

“암 치료에는 의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사가 전부는 아니지요. 좋은 의사는 이런 진실을 항상 일깨워줍니다. ‘나’를 진실 위에 제대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합니다. 내가 스스로 사려 깊고 용기 있는 연출자가 되어 마라톤과도 같은, 대하소설과도 같은 내 인생 시련의 막(幕)과 장(場)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암(癌)을 거론하는 희망의 대화
연재 시작에 즈음한 박영출과의 인터뷰


식탁을 자연으로 되돌리면 암은 스스로 물러납니다”

김신옥
박영출 한국암환우연대(오른쪽)가 암 없는 세상만들기에 나섰다며 강상헌 논설위원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자연에 기대세요. 암(癌)은 이제껏 자연과 어긋나게 살았기 때문에 생긴 재앙입니다. 환경오염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고요.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환경을 자연의 원리와 맥박에 맞추면 그 재앙은 절로 스러지고 맙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우리 선조의 혜안이 빚은 존귀한 개념이다. 나와 우리, 그 사람 하나하나가 바로 우주의 본체(本體)라니! 암과 더불어 오래 살아온 ‘암의 달인(達人)’ 박영출의 첫 번째 ‘가르침’은 ‘자연’이었다.

그의 말은 ‘스스로(自) 그러하다(然)’는 자연의 뜻을 새삼스레 되뇌게 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들 한다. 그런데 일부가 아니고 자연 그 자체란다. 사람 하나하나가 곧 우주라는 것이다. 더 곱씹으면 ‘만물(萬物)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 은근히 배어난다.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하면 암이 낫는다는 얘기인가요?”

“몸이 아프면 직접 그 아픔을 없애는 대증(對症)치료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왜 아팠는지를 생각하고, 아프지 않게 하는 치료도 필요할 터입니다. 잠시 또는 얼마간 병원의 여러 조치를 받는 것은 전자인 대증치료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24시간, 365일 순간순간을 보내는 방법 즉 생활양식이 암을 무찌르는 것이어야 하지요.”

즉, 암의 뿌리를 캔다는 얘기다. 또 그 근원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암이 싫어하는 환경’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내 몸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을 발본(拔本)하여 색원(塞源)하는 것이라면 어떤 암 환자가 이를 피할 것인가?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를 물었다. “왜 박 선생이 몸소 나서는 건데요?”

“우리나라의 큰 병원들은 암 치료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쥡니다. 그 병원들이 제시하는 첨단의료가 아니면 암 환자들은 절망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있을 정도지요. 환자들 중 부유한 극히 일부만이 ‘을(乙)의 입장’으로 치료를 받습니다. 좋은, 옳은 치료법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낮지요. 또 병원들은 ‘돈 되는’ 치료법을 중심으로 제시하고요. 그런데 병원의 이 ‘제시’는 절대 명령이지요. 하도 오래 병원 문턱 드나들다보니 도사가 다 됐답니다.”

혹 병원의 암 관련 진료가 틀렸다, 또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가 하여 되짚었다. “병원을 피하라는 것인가요?”

“천만의 말씀, 병원을 제대로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소문난 ‘명의(名醫)’와 스케줄 맞추려다, 또 첨단의료 혜택만 믿고 생활을 바꾸지 않아 병을 키우는 등의 이해 못할 상황은 내 몸의 암을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면 내 암은 의사보다 내가 더 잘 알게 됩니다.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도와달라고 주문하는 것이어야지요. 그러면 ‘유명한 그 병원’의 ‘그 선생님’이 아닌 다른 많은 의사들과 그 밖의 다른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지요.”

자연에 기대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좀 더 실질적인 방편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뭘 어떻게 하라는 얘기입니까?”

“가장 가까이는 우리가 몸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물질에 대해 재고(再考)하자는 것입니다. 물 공기 식품이 올바르지 않고는 자연이라 할 수 없지요. 암 진단을 받고서 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 이를 이긴 분들의 얘기는 기적이 아니고 ‘당연(當然)’입니다. 자연에 견주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착한 것인지를 열심히 궁리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과 공기는 웬만큼 알겠는데, 그 많은 식품 중 옳은 것, 착한 것을 가리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모두가 정색을 하며 ‘내 것이 진짜요’ 주장하지 않는가? 또 암에 맞는 식품과 그렇지 않은 식품을 가리는 일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닐 터다. 암을 이겨냈다는 박영출은 어떻게 해왔을까? “어떻게 가립니까?”

“수양하듯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바른 스승의 지도도 필요하겠네요. 하나하나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고 전체를 훑어보는 안목(眼目)도 소중합니다. 주위를 살피면 이런 일에 도움을 줄 모임이나 인사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나에게 맞는 방법인지’에 관한 의문을 가져야 지식과 함께 지혜가 열립니다.”

암환자와 가족의 염원은 너무 절실하다. 찢어지듯 아프다.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날카롭다. 이런 ‘가르침’은 이런 아픔에 비하면 너무 여유롭다. 다시 물었다. “낫는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나요?”

“나를 이겨 병을 이기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편입니다. ‘하다 보니 그냥 낫더라’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암도 치료법의 변전(變轉) 또는 발전에 따라 진화(進化)합니다. 암을 속일 수는 더구나 없지요. 암의 존재에 관한 공부와 내 몸 속의 암에 대한 성찰, 자연을 내 안에 끌어들이는 노력 따위와 함께 이길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초조하면 깨집니다. 절망스런 아픔 속에서도 새 봄, 새 싹의 환희를 느끼면 그 에너지는 ‘내 것’이 됩니다.”

박영출은 즐거워야 한다고 거듭 얘기한다. ‘웃어야 산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웃음론’이건 우찾사의 ‘형님뉴스’건, 무엇을 모티브로 하던 간에 웃음과 즐거움이 끊이지 않도록 자신과 주위의 가족 친구들은 항상 사랑을 일으키고 충전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웃기고 웃으란다.

그가 가진 노하우는 우리 사회에 퍽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오랜 병마를 떨치고 우뚝 선 그가 지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동료와 가족들에게 내민 손길이 무색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그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암환우연대라는 작은 자구(自救)모임을 최근 새로 꾸렸다. 이 모임을 중심으로 식이(食餌)동우회, 웃음동우회도 운영할 참이다.


◇박영출, 그는 누구인가?

- 1957년 부산 출생
- 1990~2002년 말기암 수술 4회(삼성병원, 서울대병원) 등 암 치료
-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유럽 등지 치료여행
- 자가(自家) 치료 병행하며 식이요법 심리치료 대체의학 등 국내외 연구과정 수료
- 위 비장 담낭 등 신체장기와 갈비뼈 연골 등이 없음에도 건강하게 생활
- 한국암환우센터 회장 역임 등 암 환우 자구(自救)사업 참여
- 현재 한국암환우연대(www.cancerforum.or.kr) 대표, 암식이연구원 이사, 목사


-미지(未知)의 독자에게
항암 식이요법 전도사 박영출의 편지


그 참담한 옛일 떠올리는 것은 오늘에 와서도 씁쓸하고 삭막합니다. 어떤 황혼에는 그때 그 긴 밤들을 뒤덮었던 심란함과 아픔이 다시 밀려옵니다. 이럴 때는 어떤 인연으로 나와 같은 고통과 번민을 겪는 여러 ‘동료’들을 가슴에 떠올립니다. 이미 저 세상으로 건너가신 분들도 계시지요. 얼굴도 모르는 암 환우와 그 가족의 모습, 그 비할 데 없이 또렷한 아픔의 별빛들에 한없이 속이 아립니다.

문득 주먹을 불끈 쥡니다. 소리치며 응원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잖아. 몸도 마음도 걸레처럼 찢어지고 구겨졌던 나 박영출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 어떻게든 당당하게 살아남으라고! 바보같이 찔찔거리지 말고...”

나는 여러분의 희망의 징표입니다. 내 삶의 궤적은 여러분을 회생(回生)의 자신감과 의욕으로 충만하게 할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하도 감회가 복받쳐 내 얘기를 스스로 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말하기도 그럴진대 글로는 더 어렵지요. 그럴 때마다 “내 이 마음 나같이 아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하늘이 도와 내 마음을 나처럼 열어 여러분께 보여 드릴 분을 얻게 되었으니 이는 가슴 벅찬 내 행운이자, 여러분의 행복일 터입니다. 이제야 마음 놓고 내 마음을 하나하나 까서 보여 드릴게요. 다시 아프고, 적이 부끄럽기도 한 일들입니다. 어떤 부분은 누가 뭐래도 말하기 싫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까지 알려드리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더 용기를 내면 더 많은 동료들, 그 가족들이 웃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이 내게서 앗아간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기겁하며 두려워하는 암(癌)이란 녀석과 맞잡이를 하여 몸으로 얻은 자신감과, 그 과정에서 국내외를 ‘방랑’하며 캐낸 귀한 노하우는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이렇게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흔하지 않은 내 경험과 노하우가 학술적으로도 검증되어 항암(抗癌)의 척도 중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병이 끝난 후에도 이제껏 많이 아팠습니다. 내 가슴에 있는 이 경험과 지식, 자신감이 그대로 썩어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끝내 포기해야 하나 하는 아픔 말입니다. 세상 살만큼 살고도 남긴 것 하나 없이 나를 접는다는 생각은 그때의 고통만큼 아프지요. 이제 그 아픔 스러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글은 같은 처지의 동료와 그 가족을 염두(念頭)에 두고 한 줄 한 줄 새기듯 짜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의도를 이해하시고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박영출 한국암환우연대 대표

*한국암환우연대의 사정에 따라 예고했던 연재를 당분간 연기합니다.(편집자)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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