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치’와 묵자의 ‘안생생’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안민을 통한 안보' 김승국l승인2008.05.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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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子貢問政). 공자가 대답했다. “먹을거리 등 경제를 충족시키는 것이요(子曰 足食) 군사를 튼튼히 하는 것이요, 신의를 쌓는 것이다.(足兵 民信之矣)”(논어 안연 7)

유가의 안민

공자는 정치에 있어서 ‘족식’(足食) ‘족병’(足兵)과 ‘신’(信)이라는 기본 요건을 제시하였다. 세 가지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꼭 버려야만 할 경우 ‘병’(兵)을 먼저 버리고, ‘식’(食)을 포기할망정 ‘신’(信)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이운구, 1995)

공자는 국가의 관건을 첫째가 신의(信)요, 둘째가 경제(食)요, 셋째가 군사(兵)라고 말했다. 만약 이 순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군자(士君子)는 ‘신’(信)을 위해 정사를 돌보는 것이 직분이므로, 소인의 직분인 ‘식’(食)을 위해 경제를 돌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명분을 어기고 식을 중시하여 이(利)를 허용한다면 천하에 원망이 가득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공자가 말했다. 이(利)를 맘대로 행하게 방임한다면 천하에 원망이 많아질 것이다)”(논어 里仁 12)

공자의 이와 같은 경리(輕利)주의는, 또 다른 유학자인 관자(管子)의 부국, 강병, 중리(富國强兵重利)주의와 어긋난다. 관자가 말하듯이 “나라를 다스리고 봉토를 받은 자는 백성을 기르는 목자이니 계절에 따라 생산에 힘쓰며 곡식 창고를 지킨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먼 곳 백성들이 찾아올 것이니 국토의 개간사업을 일으켜 백성이 머물러 살도록 해야 한다. 창고가 실해야 예절을 알고(倉?實則知禮節)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知榮辱).”(관자 권23)

‘창고가 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는 관자의 명언이 안민과 직결됨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의식족’(衣食足)이 안민의 선결조건임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상식이다. 의식이 풍족한(衣食足)한 상태에서 안보도 튼튼해진다는 게 상식이다. 재화가 모여야 안민을 통한 안보가 가능한데도, ‘재화가 모이면 백성은 흩어지고 재화가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는 유가의 설법(대학 10장)은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

안민을 위한 ‘족식’(足食)이 이루어져야 국가안보가 튼튼해지며(足兵), 그래야만 인민의 신뢰(信)가 뒤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신’(信)이 제 1순위의 가치이고, 족식(足食)은 제2순위의 가치이며 안보(兵)는 최하위라고 강조한다. 이는 ‘의식족(衣食足) 안민(安民) 안보(安保)’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국가의 부국강병론과 큰 차이가 있다.

‘의식족 안민 안보’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국가의 부국강병론이 많은 모순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족 안민 안보’의 선순환을 통해 부국강병론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노력에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의식족 안민 안보’의 악순환이든 ‘의식족 안민 안보’의 선순환이든 출발점은 ‘의식족’이며, 이는 안민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에 어긋나는 공자의 경리(輕利)주의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공자가 보기에 관자의 중리주의는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소인배인 노력자(勞力者)들이 이(利)를 얻기 위해 혈투(먹고살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사이에 군왕, 귀족, 유사들과 같은 노심자(勞心者)들은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 타령을 하자는 태도이다. 공자가 이(利)와 신(信)을 나누는 것은, 노력자 계급과 노심자 계급의 사회적 역할을 구분하려는 계급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노심자(지배계급)의 주변부에 배치된 노력자가 이(利)를 추구하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계급사회에서 어떻게 안민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생산과 재용을 중시하는 변법파(變法派)를 ‘소인’이라 비난하고 권력투쟁을 벌인다. 공자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관료파’를 덕치와 인정(仁政)을 배반하는 소인으로 규정했고,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도를 배반한 패도(覇道)라고 비난했다.(기세춘, 2006)

공자의 논리를 따르면 ‘의식족 안민 안보’의 순환을 강조하는 현대국가의 부국강병론은 패도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현대국가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왕도는 무엇인가. 공자가 강조하는 중의경리론(重義輕利論)이 왕도인가. ‘중의경리론’(重義輕利論)에서 ‘중의’(重義)는 패도를 징벌하는 의로운 전쟁을 포함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민사회신문 DB>
공자와 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민중이 죽어가는 난세였다. 이때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기치를 내걸고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지난해 7월 레바논 파병 반대 집회 모습.

의로운 전쟁의 주창자인 맹자는 ‘천자의 권력에 도전하는 제후들을 징벌하는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격찬한다. 그러므로 앞의 ‘중의’(重義)는 의로운 전쟁을 중요시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의로운 전쟁을 중시하면 할수록, 전쟁에 대비한 자본축적을 해야 하므로 민중복지-안민은 어려워진다. 또 전쟁을 위한 자본축적이 불가피한데, 경리(輕利)하면서 의로운 전쟁을 준비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묵자의 안민

묵자가 말하는 ‘겸애(兼愛)’속에는 ‘안민’이 내재해 있다. 겸애의 ‘겸’(兼)은 인간 내면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유가의 인의(仁義)와는 대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겸’은 곧 서로의 ‘이’(利)라는 노동의 성과를 인정하는 사회적이고 외면적인 규정이기 때문이다.(윤무학, 1999)

겸애, 교리(交利)는 천하의 해(害)를 물리치고 이(利)를 일으키기 위한 최대의 정치이슈였다. 그것만이 인류 모두가 서로의 이익을 옹호해줌으로써 복지증진(안민)을 기대할 길이라고 묵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를 기저로 하여 ‘비공’(非攻)의 논리가 전개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 받아야 하는 직접 피해의 당사자가 그들 민중이었기 때문이다.(이운구, 1995)

겸애의 ‘겸’(兼)은 공자의 ‘별’(別)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공자의 별(別)에 계급사회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별(別)에 따르면 안민(민중들 사이의 상호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묵자의 겸(兼)은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사상을 반영하므로 안민(兼하는 민중들끼리의 안민)을 보장받을 수 있다.

천하에서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것을 따로 이름 붙인다면 겸(兼)과 별(別) 중에서 어느 것인가. 반드시 별(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구별하는 것은 과연 천하의 큰 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별(別)은 그른 것이라고 말한다. 천하에서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따로 이름 붙인다면 별(別)과 겸(兼) 중에서 어느 것인가. 반드시 겸(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겸(兼)하는 것은 과연 천하의 큰 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묵자는 겸(兼)이 옳다고 말한다.(묵자, 兼愛下)

공자와 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민중이 죽어가는 난세였다. 이때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기치를 내걸고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만민이 평등하고 전쟁이 없으며 생명이 안락하게 살아가는 ‘안생생(安生生) 대동사회’였다. 안생생 사회는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공유(共有), 공산(共産), 공생(共生)의 평화공동체 사회였다. 묵자는 그것을 위해 유세했고 스스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생활함으로써 실천했다. 그의 모토는 겸애, 절용, 평화였다.(기세춘, 2006)

묵자의 안생생 공동체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천하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으며, 도둑, 노예, 과부, 고아 등 예수가 말한 이른바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들이며 ‘고난 받는 자’들이었다. 묵자에게 이들은 천하 만민이 다함께 한 가족과 같은 사회(天下無人),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安生生) 공동체의 주인공들이었으며, 예수가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축복했던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안생생’은 바로 만민평등의 ‘대동사상’을 평화 경제적 측면에서 표현한 말이다.(기세춘, 평화 만들기 169호)

겸애로 무장된 천하무인의 안생생 사회야말로 안민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비공(非功), 비전(非戰)의 평화공동체를 통해 민중안보(민중의 평화적인 생존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

전쟁 아닌 평화공존을 말하다
-주역의 안민


‘역경’(주역)은 서주 초기의 저작으로서 국가대사의 결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국가의 군사 운용에 관한 논의가 있다. 여기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간 분쟁을 해결할 것을 강조하면서 강한 힘으로 약자를 능욕하는 행위에 반대하였다.(국방군사연구소, 1996)

주역을 지은 사람은 전쟁이 비록 ‘큰 일’이며 국가와 민족의 생사존망에 관계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시 ‘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대량의 돈과 물자를 소모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것을 주장하지 않고, 호전적이며 병력과 무력을 남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우호적으로 공존하고 서로 평화롭게 기뻐할 것을 주장한다. 주역을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 간의 화목과 우호는 서로의 기쁨이며 좋은 일이며 길한 일이다. 그것에 반하는 것은 곧 나쁜 일이며 흉한 일이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국교 문제와 관련하여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침략을 반대한다. 비(比)괘와 관(觀)괘는 모두 이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태(兌)괘는 더욱 전면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선 평화롭게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주된 뜻을 제시하고, 중간에는 침략하거나 위압하거나 회담을 파괴하는 자는 모두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최후에는 인도적 방법을 사용하여 평화롭게 함께 기뻐함을 실현할 것을 설명한다.(姜國柱, 2004)

이와 같이 주역은 ‘전쟁이 안민(민중의 안전한 삶)을 해치는 흉한 일이므로 전쟁을 반대한다’고 밝히며 평화공존을 주장한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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