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만나는 우리는 모두 친구”

내몽고 차깐노르를 가다 이향미l승인2008.05.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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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합, 중국 사막화 방지 프로젝트 추진

“풀이 죽는다. 풀이 죽는다!”
‘풀이 눕는다’며 민중들의 끈끈한 생명력을 노래했던 김수영 시인이 사막화돼가는 내몽고 초원지역을 찾았다면 이렇게 읊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풀들과 함께 희망을!”

지난 1950년대 이후 중국의 변화는 무서운 속도다. 인구가 늘어나고, 개간과 개발이 급격히 이뤄졌다. 초원의 생태시스템에 맞춰져 있던 인간들의 생활방식이 급변하면서 초원이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풀이 죽고 초원이 사라지자 인간들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있다. 극심한 사막화와 황사문제로 중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고 우리나라에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초원을 살리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9일부터 오는 24일까지 현대자동차와 함께 중국 내몽고 시린꺼러 초원의 차깐노르 사막화 방지 프로젝트에 나선다. <시민사회신문>이 첫 파종행사에 동행했다. /편집자


# 차깐노르로 가는 길

황사 발원지인 내몽고의 사막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9일 네이멍구 시린호트에 도착했다. 북경에서 650여km나 떨어진 내몽고자치구 시린꺼러멍 아파까치를 지나 하염없이 펼쳐진 시린꺼러 초원을 자동차로 내달린다. 삼면이 바다이고 산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시린꺼러 초원은 야릇한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지루함 마저 들게 한다.

목적지인 차깐노르(몽골어로 하얀호수)로 가는 길. 초원 사이로 난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달리자 하얀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광활한 초원 곳곳에는 맨살을 드러낸 채 풍화작용에 그대로 노출된 모래언덕이 눈에 가시처럼 박힌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는 유동사구다. 또 하나 이채로운 것은 풀이 난 자리는 어김없이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고정사구다. 이곳에 많이 자라는 ‘사비나’나 ‘떠러스’라는 풀이 보인다. 곳곳에 봉우리진 풀들의 군락지는 마치 공동묘지를 보는 듯하다. 초지가 퇴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스산한 감마저 들었다.

차깐노르로 가는 길의 식물 군락지가 고정사구를 이루고 있다.

어린 풀이 돋아난 초원에는 소와 말이 풀을 뜯고 있다. 24만㎢의 한반도만 한 시린꺼러 대초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소와 양, 말 등의 가축은 약 1천400여만 마리다. 초원에 방목해 키우는 소를 보고 있자니 광우병으로 떠들썩한 한국의 현실이 교차한다.

시린꿔러 초원에는 이따금씩 소와 말, 양들이 풀을 뜯는다.

이따금씩 보이는 목축농가가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증명한다. 시린꺼러의 인구는 약 100만명. 대부분이 목축민이다. 현재는 대다수가 벽돌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고 있다. 농가를 중심으로 초지 곳곳에 쳐진 울타리가 대초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 말라버린 하얀 호수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연간 강수량이 245mm 밖에 되지 않는 이곳에서 비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부인들에겐 고달픈 날씨였지만 현지인들의 얼굴은 선물을 손에 든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의 끝자락에 움푹 패인 넓은 평지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하얀 호수라는 뜻의 차깐노르다. 차깐노르는 30㎢의 담수로 이뤄진 ‘작은 차깐노르’와 80㎢의 염수로 이뤄진 ‘큰 차깐노르’로 나뉜다. 최근 몇 년간 날씨가 건조하고 강우량이 줄면서 서쪽의 염수호는 지난 2002년 완전히 말라버렸다. “집이 호수 바로 옆이라 늘 맑은 물을 보고 살았는데 그렇게 큰 호수가 점차 줄더니 2002년쯤 1년 사이에 완전히 말라버려 너무나 놀라고 상심이 컸지요.” 차깐노르에서 목축을 하고 있는 이떨공 씨의 말이다.

여의도 면적 15배 규모인 80제골킬로미터의 '차깐노르(하얀 호수)'는 지난 2002년 완전히 말라, 허연 배를 드러내고 있다.

차깐노르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쩡바이위 연경대학 북경교우회 생태빈민구제전문위원회(ASED) 비서장은 20여년 전의 차깐노르를 회상하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8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엔 물이 가득했어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동쪽은 완전히 말랐지요. 20여년 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때는 측정도구가 없어서 대나무 작대기로 수심을 확인했는데 약 10m짜리 죽대가 땅에 닿지 않았어요. 주변에는 무릎 높이의 풀이 무성했지요.”

버짐처럼 허옇게 바닥을 드러낸 차깐노르가 무릎 높이의 풀이 자라는 열길 호수였다니. 갑작스런 우박으로 동쪽의 작은 차깐노르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정말 믿지 못했을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이 일렁이고, 철새들이 날아들어 먹이를 쪼는 작은 차깐노르의 풍경이 차깐노르가 아름다운 대초원의 젖줄이었음을 증언했다.

담수호로 아직 마르지 않은 동쪽 차깐노르 호수에 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 알칼리황사와 그 피해


3~4월경 황사철이 되면 차깐노르 인근 지역은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고 사람이든 가축이든 밖으로 나오지 못해요. 24시간 내내 집밖을 나가지 못한 때도 있었어요. 실내에서도 호흡을 하기가 힘들지요. 눈도 따갑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기도 하고, 호흡기 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요.” 이떨공 씨가 황사로 인한 피해를 전했다.

여의도의 15배 넓이의 차깐노르 염호수의 알칼리 토양은 봄철의 강한 바람과 만나면 황사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이 황사는 ‘화학황사’라고도 불린다. 화학황사는 시린꿔러 초원에도 피해를 주지만 가까이는 베이징, 멀리는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현대자동차는 올해부터 5년간 차깐노르의 사막화방지를 위해 자생식물인 감봉(내염성식물)을 심는다. 지난 9일부터 15일간 첫 파종에 나섰다.

예전에는 알칼리 황사가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지만 최근 사막화지역이 늘어나면서 호흡기, 피부, 심혈관, 안질환 등 건강상의 피해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농축산업, 항공업이나 정밀기계산업 등 산업계에 끼치는 피해가 적지 않다.

최근 베이징사범대학과 중국지리과학원은 베이징에서 나타난 황사물질을 분석한 결과 황사 속에 다량의 알칼리 물질을 함유하고 있음을 알아냈고, 황사의 주요 발원지가 바로 마른 알칼리 호수임을 밝혀냈다. 문제는 차깐노르와 같이 말라가는 알칼리 호수가 중국내에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04년 고갈된 안꾸리노르와 우라가이가오비 등 상당한 수가 분포하고 있다.

#쿤산다크와 차깐노르

다음날인 10일 시린꿔러 초원 남부의 쿤산다크 사지(모래땅)를 찾았다. 2만1천400km㎢의 쿤산다크는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사지이다. 쿤산다크는 물이 있는 사막이다. 차깐노르는 쿤산다크로부터 흘러든 물에 의해 형성된 호수다.

안내를 맡은 박상호 환경운동연합 사막화방지위원회 팀장은 “비가 오면 물이 빠르게 모래 밑으로 흘러듭니다. 모래알이 굵으니까 입자 사이가 넓어 모세관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모래 밑으로 흘러든 물은 지하 저수지를 형성하고, 지형이 움푹 파인 장소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지요. 초원에 갑자기 강이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강은 차깐노르로 흘러듭니다.”

곳곳에 샘이 솟아나는 쿤산다크 사지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랐지만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쿤산다크 사지로부터 물이 흘러드는 특수한 지형은 많은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리나는 샘이란 뜻의 ‘샹췐’이 바로 이러한 지형을 반영하고 있는데, 징기스칸과 관련된 이야기기가 전해지고 있다. 쩡바이위 선생이 소개해준 설화를 하나 전한다.

몽고군이 대륙을 정벌하기 위해 쿤산다크 사지를 지날 때 많은 군사들이 배탈이 났다. 그 때 사막에서 황금말이 한 마리 홀연히 나타났고,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 갑자기 샘이 솟았다. 배탈이 났던 군인들이 그 샘물을 마시자 배앓이가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 뒤 징기스칸이 이 샘물을 ‘샹췐’이라 이름 지었고, 말이 지나왔던 지역을 ‘쿤산다크’라고 했다는 것이다.

초원지대의 호수가 이동하는 것도 이런 지형에서 근거한다. 중국의 옛 문헌에 따르면, 차깐노르는 약 100여년 전엔 지금의 동북방향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에는 하이옌노르라 불렀다고 한다.

“호수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대규모 알칼리 토양을 남긴다는 것이지요. 하이옌노르가 있었던 곳에도 물이 고갈되어 많은 면적의 알칼리 토양이 생겨났습니다.” 쩡바이위 비서장이 호수 이동과 고갈의 반복으로 알칼리 황사의 위험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중국 사막화의 원인

쿤산다크 사지를 벗어나자 도로 옆으로 시멘트 공장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도로 역시 이 공장을 위해 닦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현재 내몽고에도 광산개발, 화력발전 등의 산업화 물결이 밀려들고 있는 추세다.

중국의 ‘사막화’는 지구 온난화와 같은 지구 전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국 내의 과도한 개간과 개발이 가져온 결과라는 게 현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예전(2000년경)에는 겨울철 평균기온이 영하 40℃까지 내려갔지만 현재는 영하 30℃정도까지 밖에 내려가지 않아요. 연간 강우량은 245mm 밖에 안되는데 증발량은 2천900mm로 12배가 넘기 때문에 토지가 점점 척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쓰친투 아파까치 선전부장이 내몽고의 기후변화를 설명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쓰친투 부장은 ‘인구 증가로 인한 인위적인 요인’을 꼽았다. “유입된 사람들이 목축업에 종사하면서 가축수가 늘어나고 과도한 방목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아파까치 당국은 최근 무분별한 방목을 금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중국과학원 지리과학 및 자원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활동을 한 바 있는 이강원 전북대 지리교육학 교수는 ‘사막중국’이라는 책에서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인구증가와 식량증산을 위한 북방 건조지역에서의 농경 확대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토지이용 변화는 중국의 사회 변동과 연동되어 있다”며 “벌목과 산지 개간, 사막과 초지 개간, 불합리한 수자원 이용, 과도한 방목 등의 인위적인 요인이 사막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쩡바이위 비서장도 이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인간의 개발 행위가 사막화를 앞당기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지금처럼 초지를 나누어 한 곳에 정착해 가축을 기르는 목축방식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초원의 생태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1990년대부터 중국은 내몽고 초원지역 초지를 분할해 그 안에서 목축생활을 하도록 하는 ‘승포제’를 시행하면서 지금은 대다수가 정착생활을 하고 있다. 정착생활은 초지의 퇴화를 가져왔다. 이떨공 씨는 “목초지가 넓은 사람은 초지를 옮겨다니며 보호할 수 있지만 면적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의 경우 초지의 파괴가 심각하게 일어났어요.”

# 유목민들의 생활상

쿤산다크 사지를 지나 아까파치에 있는 목축농가로 향하는 길. 눈보라가 치던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어 초원은 5월의 푸른빛을 자랑했지만 바람은 매우 세찼다. 지금은 정착생활을 하지만 예전에는 유목민이었던 몽골인 가정을 방문해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금도 게르에 살고 있는 위칭 하르러(59) 할머니.

“세노우.” 몽골인 할머니 한 분이 몽골 전통집인 게르를 지키다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세노우’는 몽골어로 ‘안녕하세요’란 뜻이다. 환갑 나이의 위칭 하르러 할머니는 낯선 방문객들을 위해 우유와 녹차를 섞어 발효시킨 따끈한 전통차를 내왔다. 3평 남짓되는 게르 안은 살림살이가 모두 들어와 있다. 문간 옆에는 난방을 겸한 부엌이 있는데, 말똥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한다. 5남3녀의 자식을 둔 하르러 할머니네 목초지는 약 1만5천무(1무=200평)로 비교적 넓은 목초지를 소유하고 있어서 사계절 게르를 나눠 지금도 이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가옥 게르 안에 걸린 '늑대'의 초상. 유목민들에게 늑대는 인간과 대결구조가 아닌 상생의 동물로 신성시되고 있다.

일행이 방문한 또 다른 가정은 벽돌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는 아르트와 고화 씨 부부가 사는 집이다. 집 밖 양목장 옆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집안에는 왠만한 가전제품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장작더미처럼 쌓아놓은 양똥을 난방에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유목생활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게르도 한 동 남아 있다. 게르 안에는 늑대 얼굴을 수놓은 양탄자가 걸려 있었다. “늑대와 사람이 서로 대결하는 구조가 아니라 초원을 함께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의미이기 때문에 늑대를 신성시하고 모시고 있어요.” 아까빠치의 가차장(촌장)이 기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했다.

비록 지금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지만 몽골인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 속엔 인간과 동식물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초원의 생태를 유지하는 ‘지혜’가 녹아있음을 엿볼 수 있다.

몽골 전통음식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일행은 전통노래를 들으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도 이 넓은 초원에서 만나는 우리는 모두 친구입니다.”


이향미 기자

이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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