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이 포착한 태왕의 혼

만주벌판과 산하, 고구려의 혼으로 덮다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9.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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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각 안에 담기기 전 집안 들판에 홀로 우뚝하던 광개토태왕비의 웅장한 자태(국립중앙박물관 사진)

큰 작가의 작품에서 얻은 풍류(風流)를 글로 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몸소 가서 찬찬히 바라보시라.’ 절절히 권할 따름이다. 2년전 ‘태왕의 증언’ 제목의 사진작가 박하선 전시회는 겨레 모든 이의 마음을 흔들 웅혼(雄渾)을 품었다.

<아, 옛날 추모대왕이 이 나라 세우시니...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 이르렀다. 영락대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태왕의 은혜는 하늘까지 가득하고 그 위엄과 힘이 온 나라에 떨쳤다. 옳지 못한 적들을 무찔러 없애시니 나라와 백성은 부유하고 오곡이 풍요롭게 무르익었도다.>

중국 길림(吉林 중국어 지린)성의 집안(集安 지안) 벌판에 홀로 우뚝했던 광개토태왕비 비문 일부다. 이 비석, 지금은 비각(碑閣) 안에 모셔져 있다. 추모(雛牟)대왕은 고구려를 세운 주몽, 호태왕(好太王) 영락대왕(永樂大王)은 정복군주 광개토태왕의 별칭.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은 죽은 후 붙인 이름(諡號 시호)이다. 천하(중국 땅)를 중국과 절반씩 나눠 쟁패(爭霸)할 만큼 영토 크게 넓히고(광개토경),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국강상(영토 위)에 묻힌 훌륭한(好) 태왕(太王)이란 길고도 뜻 벅찬 이름이다. 태(太)는 크다는 뜻.

이 작품들, 하늘의 뜻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세부터 고구려의 광활한 옛 터전에 혼 빼앗겨 15년여 매달린 결과다. 박하선 작가의 빼어난 안신(眼神)은 그 들판에서 씩씩하고도 웅숭깊은 고구려의 마음을 너끈히 퍼 올렸다.

광개토태왕비 등 여러 번 들락거린 유적과 선조들이 말달렸을 거친 산하(山河)는 그의 교과서이자 열정의 과녁이었다. 치우(蚩尤)처럼 우리 겨레 계통의 신으로 알려진 신농(神農)이나 고대 태양의 상징 삼족오(三足烏) 선명한 集安의 5호분 벽화가 중국에 의해 훼손되고, 새로 칠해지는 놀라운 현장도 목격했다.

‘잃어버린 들녘이 아쉽고, 사라진 것도 서럽고, 진실이 가려져 있는 것 또한 분하지만, 잊혀져가는 것이 더욱 애달프다’고 그는 적었다. 1980년부터 오지와 폐허, 역사의 뒤안길을 뒤지고 다니는 속마음이겠다. 후학과 후손을 향하는 애달픈 그 속마음, 사진에서 번져난다.

“역사학이나 고고학을 따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이라는 연모를 든 이 시기 한국의 작가가 우선 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의 그 압도적인 호출에 정직한 시선(視線)을 던지는 것이 저에게는 절실합니다.”

작품만으로 소통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그렇게 해왔다. 독한 작가다. 발표해온 작품들은 진중(鎭重)하다. 언제부터인가 그 사진들은 마주선 이의 혼을 패거나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2007년 다국적 잡지 ‘지오’에 실렸던 ‘천장(天葬)’은 필자에게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였다. 펼쳐지는 장면이 바로 진리이니 언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늘장례’ 천장은 독수리에게 시신을 먹여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티베트의 장례의식이다.

목숨까지 건 그 작업, 단박에 국제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 10년 만에 필자는 이제사 ‘그 박하선’을 만났다. 오녀산성 백암산성 낭낭산성 태왕능묘 태왕비 등과 역사로 텅 빈 들판과 산하의 무게가 실로 만만치 않았다. 따졌더니 ‘그 천장’의 작가였다. 이 놀라움...

대가(大家)의 허허실실(虛虛實實), 다만 내내 춥고, 좀 외로웠단다. 늘 씨익 웃기만 하던 ‘세상 모든 굿의 사진’의 대가 김수남(1949∼2006)의 그림자를 얼핏 그에게서 보았다.

‘우리 조상’이라는 상식과 달리, 중국정부는 ‘(태왕의) 고구려는 중국 역사’라고 결정했다. 현장에서는 그 ‘상식’과 ‘결정’이 늘 어색하게 마주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그 결정은 점점 상식이 될 수 있다. 작가는 그래서 ‘잊혀지는 것’이 더 슬픈 것이다. 그 상식을 박하선의 사진은 또렷이 보여준다.

▲ 달빛에 쌓인 고구려 역사의 ‘지문’ 중의 하나 백암산성(2010년 박하선 사진)

토/막/새/김

“광개토태왕은 우리 역사, 한자도 우리 글자다”

따로 주목할 대목, 광개토태왕의 만주 벌판이 우리 역사임을 잘 아는 우리 시민들이 뜻밖에 한자가 우리 역사임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황당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는 박하선의 발언이다.

‘왜 태왕비 내용이 한자로 적혀 있나’ 불만 토로하는 소년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갑골문의 고향 하남성 안양(安陽)을 그는 꼼꼼히 취재했다. 3000년 전에도 중국과 한국이 있었고 그 사이에 국경이 있었겠느냐는, 좀 터프한 말로 그 충격을 설명했다. 문명에서 역사(성)을 빼면 남는 게 뭐냐는 그의 말, 핵심을 찌른다.

“동이족은 그 곳에 원래 살던 겨레이고 화하족 즉 지금 중국의 주류인 한족(漢族)은 문명 열리던 시기에 서쪽 또는 서남쪽에서 황하 유역으로 동진(東進)해 왔다는 것이 과거의 상식이었다. 동북공정 같은 ‘작전’으로 두들겨 맞춘 역사에 휘둘리지 않아야 문화겨레다.”

중국의 큰 작가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이 했다는 얘기 등 과거의 ‘상식’을 되새겨주는 이런 일화들이 점차 잊히는 것도 그의 말과 맥이 같다. 한국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1902∼1999)가 “당신네 한자 때문에 한국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하자 임어당이 “한자는 당신네 선조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걸 왜 모르느냐?”고 핀잔 섞어 반문했다는 대목이다.

한자의 모체인 갑골문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동이족을 비롯한 당시 동아시아의 여러 겨레들이 비옥한 황하 유역에서 함께 살았고, 찬란한 황하문명을 빚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또 (진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당시의 ‘당국’인 상(商)나라가 동이족 계열이란 설도 있다.

3300년 역사의 한자를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써오다가 세종대왕이 570여 년 전 우리말의 소리를 잘 적으면서 한자를 뜻으로 부리는 표음(表音)문자 훈민정음(訓民正音 한글)을 발명했다.

우리는 문화의 새 전기를 맞는다. 우리말글 한국어에 한자어가 멋지게 스며있는 원리다.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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