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명박, <조선일보>의 어제와 오늘

‘신문’(新聞) 대신 ‘구문’(舊聞)을 꺼내 읽는 까닭 문한별l승인2008.05.2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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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新聞) 읽는 재미보다 더 큰 게 있다. 그게 뭐냐? 바로 '구문'(舊聞) 읽기다. 신문의 앞말.뒷말을 비교해 그 진실성을 추적하는데 구문만한 게 없다. 따끈따끈한 새기사들로 가득한 'news-paper' 대신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먼지 켜켜이 쌓인 한 물 간 'olds-paper'를 찾느라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구문'은 조선일보다. 왜 조선일보인가? 간단하다. 구독자수에서 일등, 영향력과 파워면에서도 대한민국 일등이기 때문이다. 순위를 다투는 다른 신문들도 있지만 신문 만드는 역량과 글 쓰는 재주에서 조선일보에 현저히 뒤진다. 사악함과 간교함에서도 상대가 안된다. 권력의 원근에 따라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이부지자'(二父之子)의 능력에서도. 오늘 내가 구문 읽기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에 관한 것이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노무현 전임 정권 때 조선일보는 자신을 '비판언론''독립언론'이라 칭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게 언론의 본연이요 숙명이라고 떠벌여댔다. 당시 조선일보가 뭐라고 말했는지 같이 읽어 보자.

2005년 8월 24일에 작성한 사설 <대통령과 언론, 어제 오늘 내일>에서 조선일보는, "여기서 기본은 언론의 본질, 언론의 사명,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고 노 전 대통령에게 충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대통령이 오늘의 언론 상황을 편견 없이 살펴본다면, 그 언론이 독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언론일수록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자 없이도 존재하는 신문과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신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조선일보의 어제가 "독자와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하다 못해 잔혹하고 혹독하고 독살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왜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독자와의 관계를 갑자기 경시하는 것일까?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조선일보가 "독자 없이도 존재하는 신문"이 되고 만 것일까?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가 턱없이 약화돼서 하는 소리다.

▲ 2006년 7월 3일자 김대중 칼럼. 조선일보 고문인 김대중은 이 칼럼에서 "비판이 없다면 신문은 죽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나 더. 조선일보가 2006년 3월 4일자 지면에 올린 창간기념 사설 <창간 86년, 無信不立의 발걸음으로>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언론은 국민의 말길을 터서 국민의 뜻이 그 길을 따라 물처럼 흐르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조선일보의 명문을 잠시 감상해 보자.

"언론은 국민의 말길을 터서 국민의 뜻이 그 길을 따라 물처럼 흐르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국민은 본래 물같이 순하지만, 그 말길이 막히면 제방을 넘은 홍수처럼 때론 세상을 휩쓸어 버리고 만다. 예로부터 정치의 근본이 물길을 잘 다스려 천재를 막아내고, 말길에 막힘이 없도록 해 인재가 들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뜻에서다. 요즘 말로 옮기면, 경제를 튼튼히 해 국민의 살림 걱정을 덜게 하고, 민심을 중하게 여겨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구구절절이 옳다. 틀린 말 한 군데가 없다. 감탄이 절로 인다. 조선일보도 이 정도 입바른 말은 할 줄 아는 신문이다. 그런데 왜 행동에 옮기지 않는지 궁금하다. 지금 촛불 든 국민의 민심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하라고 천둥.번개치는데, 그러나 조선일보는 "국민의 뜻이 그 길을 따라 물처럼 흐르도록 하는" 물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말길을 막는 제방노릇을 하고 있다. "믿음이 없으면 바로 서지 못한다"(無信不立)더니 불과 2년 새 신념이 바뀌고 만 것일까?

마지막으로,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을 소재로 한 2007년 1월 24일자 사설 <대통령에게 야당과 언론이 없었더라면>에서,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의 '언론 탓'을 강하게 질타했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등 잘못된 모든 것은 결국 야당과 언론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청와대에서 부동산 문제를 담당했던 측근들조차 정책 실패를 자인했는데도, 대통령은 “언론 때문”이라며 “부동산 신문이 자승자박됐다”고 조롱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초대 정권 때부터 모든 정권이 잘못되면 야당과 언론을 탓해왔지만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야당과 언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일은 없었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만 없었더라면 대성공을 거뒀을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노 전 대통령을 무조건 감쌀 생각은 없다. 부동산문제 등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 죄로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으니까.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의 '언론 탓'은 이해해 줄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그걸 비틀어 왜곡하는 '비난언론' '적대언론'이 깔린 까닭이다. 오죽 하면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되는 신년연설을 통해 “여러분, 내일 아침 일부 언론을 한번 보라. 생방송이라 많이 왜곡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과는 다른 기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겠는가. 사설은 이 말을 소개하면서 "시정에서 멱살잡이 하듯 하는 이 말에서 저주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고 비난했지만, 이런 식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의 고립무원의 심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연민이 치민다.

각설하고, 현재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이명박 정권의 언론환경은 전임 때와는 천양지차다. '비교체험 극과 극'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노 정권을 극렬히 물어 뜯었던 자칭 '비판언론'들은 이 정권 들어서면서 갑자기 온순한 애완견으로 돌변했다. 이 정권이 하는 일을 비판하고 감시하기는 커녕 홍보하고 칭찬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 모양이 너무 '야시시하다'고 해서 네티즌들은 '저널리즘' 대신 '애널리즘'이라는 포르노삘 나는 말까지 새로 만들어 붙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처럼 신문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조중동문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고도 이명박 정부 입에서 "언론 때문"이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정부와 다른 소리를 내는 몇몇 신문들 때문에 민심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문화부 차관이 주재했다는 대책회의에서는 경향신문 등을 지목해 정부광고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치졸한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KBS 사장 때문이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MBC PD수첩을 협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국민일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고 두 번씩이나 압력을 가하고, YTN과 다음 등에 유형무형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정부에서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입바른 조선일보가 한 마디쯤 해야 하지 않을까? 야당과 언론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인수위의 실책은 차치하고라도, '고소영', '강부자'로 시작해서 작금의 소고기 문제에 이르기까지 민심에 불을 지른 것은 이명박 대통령 그 자신이었지 결코 경향, 한겨레 등 마이너신문들의 장난 때문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라고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 탓'을 무참하게 씹어댔던 조선일보의 이빨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좀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권력의 단맛을 너무 빨다 보니 그새 이빨이 충치로 썩고 만 것일까? 모를 일이로고.


문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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