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첩(大捷)과 대전(大戰)

조국대첩과 명량대첩이 다른 ‘대첩’이라고요?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10.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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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강상헌 논설주간) 인터넷 공간이 ‘조국대첩’이란 말로 요란하다. 얼룩진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관련 논쟁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중차대(重且大)하다. 그 싸움의 규모와 소리가 자꾸만 커지는 것은 이 ‘무겁고(重) 또(且) 크다(大)’는 뜻의 반증일 터다.

나라 권력이 ‘검사들’의 손안에서 좌지우지되다시피 했던 지난 시대의 부조리와 폐단을 바로잡아 명실(名實) 공히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자며, 문재인 대통령 정권이 꺼내든 카드다.

수십 년 전통의 ‘검사공동체’에겐 큰 충격일 터, 반발(反撥) 또는 반동(反動)이 어찌 만만하랴? 그걸 셈하지 않고 갑옷 입은 장수(將帥)에게 창칼 씌워 말을 태웠을 리는 없다.

상하좌우 구석구석, 거미줄 같은 검찰 세력 네트워크가 견고한 이 사회에 ‘검찰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역량을 키워온 헌법학자 조국(曺國)이라야 ‘조국(祖國)을 위한 적폐청산’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이 읽히기도 한다. 오죽하면 ‘검찰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당연히 큰 전투가 빚어진다. 용쟁호투(龍爭虎鬪)일세. 이 큰 싸움, 한자로 쓰면 대전(大戰)이다. 세계 제2차 대전(World War Ⅱ)과 같이 쓰인다.

그런데, 같은 말 쓰는 우리들 언중(言衆) 사이에서 ‘대첩’이란 말이 언제부터인가 ‘대전’과 헝클어져 어떤 경우는 서로 비슷한 뜻으로, 심지어는 대전보다 훨씬 더 힘센 의미나 어감(뉘앙스)을 담은 말인 양 쓰이고 있다.

이번 글 주제다. 먼저 해답 또는 결론적인 카드를 제시한다. 대첩은 ‘큰 승리’이지, ‘큰 싸움’이 아니다. 대전에서 크게 이기면 그것이 대첩이다.

해남과 진도 사이 물결 거센 울돌목(명량)에서 충무공이 10여척 허접한 배로 왜적(倭賊)의 전함 133척을 까부수었다는 승전의 이름이 명량대첩(鳴梁大捷)이다. 대첩의 명칭은 수없이 많다.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 살수대첩 청산리대첩 등 역사 빛낸 가슴 벅찬 이름들이다.

‘조국대첩’이란 말은 ‘조국(장관)이 크게(大) 이겼다(捷)’는 뜻이 된다. 조국과 벋선 세력이 한 판 야무지게 조국과 붙는다는 의미로 이 말을 쓰는 기자나 블로거 등 여러 필자(筆者)들이 ‘조국이 이겼다’거나 ‘이겨라’ ‘이겨야 한다’라는 속셈 품고 고의로 이 말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신문이나 SNS 기반 웹미디어의 글에 ‘조국대첩’이 많다. 최근엔 ‘주요 일간지’라고 부르는 신문에서도 보인다. 또 종편(방송)에선 흔하고 최근에는 KBS 기자마저 이 말을 쓴 것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관찰된다. 이렇게 싸움 시작과 동시에 조국(장관)은 크게 이긴 것이 됐다.

한자에 약한 세대들의 혼동이며, 곧 자정(自淨)의 작용을 거쳐 바른 뜻의 말을 찾을 것이지만, 요즘 워낙 이 말의 전파속도가 빨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이런 이들에게 이길 捷자를 풀어 설명함으로써 그 혼동을 지우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요즘 여러 ‘글 쓰는 이’들이 대첩과 대전을 혼동하게 된 주요한 연원(淵源) 또는 계기(契機)를 살펴보자. 3년 전 한 방송사의 히트작인 ‘한식대첩’ 프로그램과, 가까이는 지난 8월 ‘조국대첩’이란 말을 공식 브리핑에서 쓴 여당의 정춘숙 원내대변인 담화를 들 수 있겠다.

이후 ‘**대첩’ 형식의 신조어가 쏟아졌고, 이 ‘대첩’은 거의 다 ‘크게 이김’이 아닌 ‘한판 크게 붙는 싸움이나 경쟁’의 뜻으로 쓰였다. 독자 시청자 등 미디어 수용자들은 자연스럽게 ‘대첩=한판 붙자’는 뜻의 공식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발 없는 말(語 어), 천리 가는 모양새다.

말은 뜻을 가진다. 어떤 말은 속뜻을 품는다. 여러 뜻을 함께 담는 중의적(重義的) 표현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활용한다. 말의 이런 속성을 잘 새기는 것이 지성(知性)의 오솔길 중 하나다.

▲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風俗畵) 속의 베틀, 베 짜는 아낙이 밟고 있는 것이 섭(疌)이다.

토/막/새/김

첩보(捷報)는 승전보(勝戰報)

베를 짜는 전통 베틀의 발판 이름이 섭(疌)이다. 공정(工程)에 맞게 재빨리 疌을 밟아줘야 모시 삼베 무명 명주 같은 고운 베가 지어진다. 이길 첩(捷)은 손 수(手,扌)와 疌을 합친 글자다.

손과 발을 잘 쓰면 민첩(敏捷)한 것이고. 손과 발을 잘 써서 (전투에서) 이기면 민첩하게(재빨리) 후방에 알려야 하는 것이니 여기서 捷 글자에 ‘이긴다’는 뜻이 붙었다. 첩보(捷報)는 그래서 승전보(勝戰報)다. 大捷은 큰 승리인 것이다. 주의, 첩보(諜報)는 스파이(간첩)의 보고다.

영어에서 온 외래어처럼 우리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한자어의 특징 중 하나는 글자 하나하나가 각각 독립된 모양(形 형)과 소리(音 음)와 뜻(義 의)을 갖는다는 점이다.

우리말 ‘무지개’는 세 음절이 합쳐서 영어 레인보우(rainbow)의 뜻을 가리키지만, ‘무, 지, 개’ 각 음절은 뜻이 없다. 문화유산으로 자주 보는 무지개다리 홍교(虹橋)의 무지개 虹글자는 한 단어다. 우리말과, 한자어의 차이다. 우리말 다리(bridge)와 다리 橋 글자의 경우도 같다.

대첩(大捷)이 큰 승리, 대전(大戰)이 큰 싸움이 되는 원리다.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나 위의 두 말에서 하나씩 딴 전첩(戰捷)도 ‘싸움에서 이김’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한자가 바탕이 된 우리말 한국어의 개념(槪念) 어휘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다.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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