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29- 다랭이 마을

"삶이 빚은 한폭의 그림" 남효선l승인2008.05.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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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끝 절벽에 자리잡은 60여 가구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명승지....본 이름은 ‘남해군 가천리’

남효선

다랭이마을을 가 보셨나요? 다랭이 마을은 리아스식 해안의 절정인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이름난 남해군 남면에 있는 자그마한 갯마을입니다.

마을의 이마에 푸른 남해를 이고 있는갯마을이긴 하지만 바다 일과는 무관한 농촌마을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바다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2002년부터 이 마을이 ‘다랭이 마을’로 불리면서 바다는 다랭이 마을의 빼어난 생김새와 형국을 도드라지게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조건입니다.

다랭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천마을’입니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을 지나 수줍은 처녀의 살내음처럼 상큼한 바다길을 돌아 20여분 바다 끝으로 가면 다랭이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랭이’는 다락논을 뜻하는 남해 지방의 방언입니다. 마을이 바다와 맞닿은 해안 절벽에 자리한 까닭에 ‘배를 정박할 곳이 없어’ 순전히 농사일로 가계를 버팀해 온 농촌마을입니다.

그렇다고 농토가 많은 곳도 아닙니다.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해안 절벽 빈터를 헤집어 일군손바닥만한 다랭이 논(다락논)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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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삿갓배미라 부르는 달갱이로부터 봇물이 실한 세마지기 가웃 논까지 100층이 넘는 논배미들이 층계를 이룬 모습은 ‘삶과 노동이 빚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다랭이 마을을 일군 선인들은 누 백년에 걸쳐 바닷가에 널려 있는 몽돌을 주어 층층이 쌓아 초생달처럼 소박하고 소중한, 이쁜 삶의 터전을 만든 것이지요.

이렇듯 다랭이 마을 사람들을 키워낸‘초생달처럼 이쁜 다랭이 논’이 간난신고의 핍진한 삶의 표징에서 이제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마을공동체 협업 노동이 낳은 아름다운 현장예술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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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 우리문화유산연구소 소장은 다랭이 마을 답사기에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예술로 승화된 계단식 다랭이 논, 억겁의 세월 바닷물에 말끔히 씻겨 눈처럼 새하얘진 바위와 쪽빛 바다가 이룬 풍광이 정말 멋스럽다" 다랭이 마을을 노래했습니다.

다랭이 마을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밥 무덤’ 민속입니다. 밥 무덤은 다랭이 마을의 공동체 신이자, 마을과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듬고 어루만지는 마을 수호신입니다. 흔히 농어촌 마을에서 만나는 ‘성황당(서낭당)’인 셈이지요. 다랭이 마을의 성황신 격인 밥 무덤은 그 이름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밥 무덤에 대한 다랭이 마을 사람들의 얘기에서 다랭이 마을 사람들이 엮어 온 삶의 드라마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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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 마을과 이 마을을 지키며 가꿔 온 다랭이 사람들의 핍진한 삶의 드라마를 표징하는 밥 무덤. 밥 무덤은 다랭이 마을공동체를 버팀해 온 마을 지킴이이다.

먹을 양식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 다랭이 마을 사람들은 순전히 손품과 발품으로 쌓아 올린 다랭이 논에 벼농사 대신 보리농사와 밀농사 그리고 콩, 마늘농사를 지었다 합니다. 많은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대기 위해서는 논농사 보다는 보리와 콩을 연작하는 이모작이 우선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요즘처럼 넉넉하게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는 일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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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 마을을 지키는 '밥 무덤'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 이 마을 '유자 막걸리'의 장인인 강재심(82) 할머니
마을사람들은 궁리를 모아 마을 복판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 돌탑을 세우고 해 마다 음력 10월 보름 밤 9시 무렵에 제관을 선출하여 마을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를 올리는 날이면 마을사람들은 집집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이밥'(쌀밥)을 지어 마당에 진설한 뒤 제사를 올렸습니다.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에게 이밥을 차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한 것이지요. 제관은 축관과 제물을 준비하는 제주를 포함 다섯명을 매년 10월 초순 경에 선출합니다.

제례는 강신(降神), 참신(參神),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사신(辭神), 소지(燒紙), 飮福(음복) 등 유교 절차로 행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소지를 다섯 번 올린 뒤, 젯밥을 한지에 싸서 밥 무덤에 묻습니다. 제의가 마무리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나눈 뒤,횃불놀이와 함께 징과 메구를 치며 한바탕 신명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바다로부터 다랭이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의 광장에 ‘암수바위’로 불리는 남근석이 우뚝 서 있습니다. 암수바위의 영험에 대해 마을사람들은 이렇게 전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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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바위 모습. 다랭이 마을 사람들은 이를 미륵불이라 부른다. 민중해방의 현장인 셈이다.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의 꿈에 백발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 꿈에 본 것과 똑 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남자의 성기를 닮은 형상인 높이 5.8m, 둘레 1.5m인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 둘레 2.5m인 암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미륵불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 자정이면 생선이나 육고기 없이 과일만 차려 불교식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이 나은 성기숭배의 대상물에서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 탄압받던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기원하던 미륵불인 가천 암수바위는 다랭이 마을을 지키는 마을신이자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다랭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5월에 ‘소써래질 모내기 축제’를 펼칩니다. 마을 사람들이 축제위원회를 구성하고 마을사람들이 축제의 주창자가 되어 펼치는 마을공동체 축제의 원형입니다. 다랭이 마을을 일군 이 마을 사람들의 핍진한 삶이 신자유주의로 매몰되는 세계화에 쐐기를 박는 소중한 마을공동체 문화운동으로 되살아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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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 마을의 주산인 설흘산 정상에 복원된 '봉수대' 전경


다랭이 마을은 ‘맨발의 기봉이’ 촬영 현장이기도 합니다. 다랭이 논은 2005년도에 국가지정 명승 제 15호로 지정됐습니다.

일상의 틈새를 쪼개 식구들의 손을 잡고 훌쩍 남해의 다랭이 마을로 가 보십시요. 거기서 풋풋한, 그러면서도 비릿한 처녀의 살내음처럼 눈 앞에서 찰랑거리는 남해바다를 보며 다랭이 마을사람들이 오랜 시간 정성들여,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유자 막걸리’와 우리 콩으로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상큼한 유자 막걸리의 향을 날리며 다랭이 마을을 굽어보며 마을을 지키는, 다랭이 마을의 주산인 ‘설흘산’ 봉수대에 오르는 일도 빠트리지 마십시요.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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